룻의 사랑과 헌신,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
룻기 1장 15-18절
15.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더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18.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
나오미는 모압에서 살았던 10년 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길은 처음보다 나빠진 상태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에,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설득했습니다. 룻기 1장 7-14절의 내용인데 결국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이 룻이었습니다.
15절에서 나오미는 다시 한 번 룻을 설득합니다. 어떻게 설득하냐 하면, 오르바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합니다. 15절.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 이라는 표현은, 민족 정체성과 종교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민족 정체성과 종교 정체성을 바꾸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사람이 미국사람처럼 살고, 불자가 기독교인이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는 너의 동서처럼 살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렴, 남들 사는 것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대세를 따르라는 말도 됩니다. 남들 다 그렇게 하는데 너도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나오미가 빈 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룻이 걱정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입니다. 물론, 나오미 입장에서는 룻과 함께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룻의 입장에서, 룻을 배려하면서 계속 룻을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룻기서에는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사는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몸에 배여 있는 듯 합니다. 룻을 사랑하고 아끼는 진심어린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나오미의 말에 룻이 드디어 입을 엽니다. 16-17절의 내용인데, 룻의 말을 분석해 보면, 룻의 결심과 신앙고백, 죽음에 이르는 충성 맹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고백은 누구하냐면,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 하는 고백입니다.
16-17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나오미의 결심을 보여줍니다. 돌아가라는 말은 어머니를 버린다고 것과 같다고 룻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이 이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충성하겠다는 맹세). 힘들어도, 즐거워도 함께 하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신앙 고백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엘로힘의 하나님(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인간 역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입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자신의 민족 정체성과 종교 정체성을 바꾸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죽음 가운데서도 충성하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러면서 룻은 자신의 맹세가 확실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니이다. (이게 생명을 걸고 하는 맹세입니다).
이런 고백이 놀라운 것은, 모압 여인인 룻이 한 고백이라는 점. 또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한 사랑 고백이자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딸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도 감동일텐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고백하고 맹세까지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인상 깊다는 것입니다. 비록 짧은 구절이지만, 룻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이 우상을 버리고, 인간의 역사 가운데 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이 장면은,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정말로 듣고 싶은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룻기서의 시대 배경을 사사 시대입니다.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대로 옳은대로 행하던 시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던 시대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보이는 우상을 섬기던 시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헌신 보다는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모압 자손이, 자기의 민족 정체성과 종교 정체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마음도 흡족했을테지만, 하나님 마음에도 흡족한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룻의 이 고백은 그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출애굽기에서 모압 자손은 여호와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롯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포함될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습니다.
룻은 어떻게 이런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나오미가 삶으로 보여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인지, 나오미가 룻에게 보여준 사랑과 헌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이렇게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룻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되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왜 이런 고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는 임하지 않은 걸까요?
분명,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처럼 고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룻에게 임한 것도 맞겠지만, 룻의 고백에는 삶에 대한 헌신과 맹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중요하지만, 롯이 삶으로 증명한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심하고, 결단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삶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룻의 마음이, 그를 구속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인 삶과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룻의 고백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삶으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지만, 우리의 삶은 그 구원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국에 있는 거창고등학교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져야 되는 10가지 기준을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이를 한 마디로 하면, ‘좁은 길로 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했던 고백인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향한 고백이, 룻이 나오미에게 했던 고백인 것입니다.
롬 8장 31-32절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이르는 충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까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죽음에 이르는 충성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로마서 8장 33-39절입니다.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롬 8장 33-39절.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를 깨달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
또한 룻이 시어머니를 향한 이 고백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치유’입니다. 롯은 시어머니가 어디에 가든지 어머니와 함께 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인생이 텅빈 나오미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치료제는, 누군가 그와 함께 해 준다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연대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문제는 연대감으로 치료됩니다.
욥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했을 때, 욥의 세 친구들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고통을 당하는 욥과 함께 슬퍼합니다. ‘큰 소리로 울고,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함께 칠 일을 땅에 앉아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당할 때,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보여준 사랑의 충성 맹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7절에 나오는 죽음에 이르는 충성.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나오미에게 모압 10년의 아픔을 치료해 줄 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이 따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우리와 함께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룻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룻의 죽음에 이르는 맹세는 구속사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룻의 말을 들은 나오미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18절.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나오미의 마음은, 미안하면서도 정말 고마웠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10년 모압에서의 고통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부쉬라는 신학자를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런 전폭적 헌신은 앞으로 룻에게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래의 운명에 대해 나오미가 느끼는 책임감을 덜어주는데 일조를 한 것이다. 이에 나오미는 더 이상 룻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
또한 안드레 라코크 라는 신학자는 나오미의 침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오미의 침묵은 그녀가 기분이 나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도적인 사려 분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나오미가 말을 한다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처럼 모든 것을 버린 룻의 결정으로 격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암시적이더라도, 따라서 이런 희생 앞에서는 침묵만이 적절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룻의 이 말은 감동적이기에 여기에 나오미가 말을 섞는다면, 그야말로 실망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것이 분명하다’
나오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세 번이나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룻이 기어코 같이 가겠다고 한 것이 진심이라고 것을 받아들인 것이 ‘침묵’인 것입니다. 2025년, 우리가 침묵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드디어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19절에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이제 나오미와룻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룻의 사랑의 맹세는 지켜질까요? 돌아온 나오미를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요?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나오미와 롯의 삶도 돌봐 주실까요?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죽음에 이르는 충성 맹세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우리도 하나님께 롯처럼 헌신하고 결심하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사랑 맹세는 잘 지켜 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