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정철의 “쉼표”라는 글이 있는데요. 쉼표라는 평범한 소재로 쓴 글인데요. 짧지만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 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쉼표는 숫자 9를 닮았다.
1에서 9까지 열심히 달려왔다면
10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라는 뜻이다.
9에서도 쉬어 주지 않고 10, 11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은
12는 구경도 못하고 지쳐 주저앉고 만다.
쉼표에 인색하지 마라.
쉼표를 찍을 줄 아는 사람만이
마침표까지 찍을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쉼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줍니다.
쉼표의 중요성은 노래를 부를 때도 알 수 있습니다. 쉼표가 있는데, 안 쉬고 끝까지 부르면 반드시 탈이 나는데요. 쉼표를 무시하고 노래를 불러보면,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겁지겁 달려만 가는 우리에게 주신 삶의 쉼표가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크리스챤에게 안식일은 오늘 바로 주일입니다. 쉼표에 인색하지 마세요. 잠시 쉬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주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좋은 것은 주님이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입니다. 그래서 이 날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봅니다.
‘주님,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옵소서. 지치고 상한 영혼에게 새 힘을 더해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주일은 쉼표예요. 쉼표를 잘 찍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멋지게 삶의 마침표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기도 해요. 또한 남들 도와 주느라 쉬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익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보이신다면, 그 분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또한 이런 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렸으면 합니다.
추수감사절은 일년 중 쉼표 같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달려온 한 해가 끝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쉼표 같은 오늘, 주님이 여러분의 영혼을 만져주시길. 또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올 한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 수첩을 뒤적거려 봤습니다. 연초부터 많은 분들을 만났더라구요. 교회의 어려움으로, 기도하며 만났던 분들입니다.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었던 한 해였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다 하셨습니다. 주님이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고백 밖에는 할 수 없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많은 감사제목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봤습니다.
오랫동안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교회를 지켜주신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오래 참아주신 성도님들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그 분들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롭게 한 식구가 되어주신 분들이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기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해나와 이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 감사 제목은 이것입니다. 오늘도 설교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설교할 것들을 입에 넣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이 설교를 들어주시는 여러분이 있어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주님을 찬양할 수 있어 감사해요. 함께 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웃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함께 밥 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달려가다가 잠시 쉬면서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들이 더욱 넘쳐납니다. 추위도 더위도 감사합니다. 비도 눈도 감사합니다. 심음도 거둠도 감사합니다. 이런 일상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일상을 함께 보내준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잘 자라고 있는 자녀들도 감사합니다. 일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한 해는 어떠셨는지요?
여러분에게도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하는 분도 있었을 겁니다. 질병으로 고생스런 날들을 보내신 분도 있을 겁니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신 분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언지 알지 못하는 두려운 도전들 앞에 놓이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감사 제목을 찾아보시기를 권면드립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우리에게 있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인 것입니다.
감사하면 풍성해 집니다. 감사한 것들을 적어보면 더 풍성해집니다. 적어보세요. 쉼표 같은 추수감사절에, 한 해를 돌아보시면서, 감사가 넘침을 발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제목을 적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감사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된 일에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킴윅스 선교사님이 얼마 전에 이메일을 보내주셨는데요. 그 이메일 안에는 감사제목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선교사님을 향하신 주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선교사님이 여러 번 말씀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김 선교사님이 미국에 오신 것이 1957년 11월 28일, 추수감사절입니다. 올해로 62년째가 되신다고 합니다. 이 숫자만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지켜주셨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킴 선교사님의 삶이 그대로 표현된 말씀이 이사야 42장 16절이지요.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여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김 선교사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지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온 한 인생의 고백이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내가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내 암흑이 내 앞에서 광명이 되었고 굽은 데는 곧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요? 이런 삶은 주님의 사랑하심과 신실하심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모두 다 주님의 은헤입니다. 또한 주님이 수 많은 사람들을 킴 선교사님에게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킴 선교사님이 나누신 감사 제목이며 간증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삶에도 이런 감사와 간증이 있습니다. 제 삶에도 때를 따라 돕는 손길이 있었지요. 부족한 듯 하나 부족한 적이 없습니다. 넘치는 듯 하나 넘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이것이 저의 감사이고, 또한 여러분의 감사이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감사에는 한계가 없다고 했는데요. 하나님을 믿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됩니다. 스데반은 죽음의 현장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준 순교자의 마지막입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도 감사입니다. 내가 사는 오늘 하루가 영원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교회에 닥친 큰 박해도 감사 제목입니다. 교회에 닥친 위기. 우리 삶에 닥친 위기. 우리 삶이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같을지라도,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감사인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말합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망할 것 같습니다.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길이 굽어져 버렸습니다. 암흑이 시작되었어요. 알지 못하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사방이 다 막혔어요. 삶의 구덩이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한숨만 나지요. 심장이 덜컥하고, 머리는 새하얗게 됩니다. 어떻게 하지요?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을까요?
어렵겠지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작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시련이 쉼표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시련은 앞만 보며 달리던 우리에게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아닌,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재물인가? 명예인가? 사랑인가?”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채점해 보는 쉼표 같은 시간이 시련의 시간입니다.
사도행전의 쉼표는 8장 1절입니다. 앞으로 전개된 이야기는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역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익숙한 리듬이 끝나고, 전혀 새로운 리듬으로 노래가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 부분에서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부르는 승리와 기쁨의 노래였습니다. 앞으로 전개된 내용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힘찬 행진곡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행진하는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노래 말입니다. 주님이 지휘를 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큰 핍박도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새롭고 힘찬 노래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주님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따라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본문이 주님이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희망의 메시지로, 희망의 노래로 들려지게 되시길 바랍니다. 큰 핍박으로 그들의 삶의 리듬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큰 핍박이 있으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더욱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유정옥 이라는 분의 글에 군에 간 아들 면회했을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고백합니다. ‘엄마! 사실은 저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요. 저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상관이 저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한 번 대판 붙고 말 거예요. 매일 연병장(군대 안에 있는 운동장)을 뛰고 자기에게 와서 보고한 뒤 밥을 먹으래요. 제가 천식이 있어서 아침 일찍 뛰는 것이 고통스럽고 다 뛰고 가면 식사 시간이 끝나서 밥도 못 먹어요”
이 말을 들은 엄마는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온 것 같았다고 합니다. 심장이 딱 멎을 것 같았는데, 이 엄마가 아들에게 심호흡을 하고 말합니다.
“그 상관이 아무래도 자기가 졸병일 때에 비해 네가 편해 보여서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연병장을 더 잘 돌아라. 괴로워하며 억지로 돌지 말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며 돌아라. 다 돌거든 상관에게 고맙다고 해라. 어째듯 많은 사람들 중에서 너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고마운 것 아니냐. 그 어떤 것보다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이잖니?”
아들이 큰 핍박을 받고 있는데, 엄마도 대단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어머니의 아들도 착합니다.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그대로 했네요. 한 달 후에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니까 그렇습니다.
“어머니! 저는 오늘에서야 하나님의 축복이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동안 연병장을 뛰면서 때로는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 날로 단번에 끝장을 낼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 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면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 번 구보 때는 천식으로 숨이 막혀 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뜬히 다 뛸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상관을 통하여 저의 지병인 천식을 다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상관이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고 경례를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부터는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내일부터는 저 스스로 뛰겠습니다 어머니께 이 기쁨을 할렐루야! 소리쳐 보내드립니다”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아들이 망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이 아들이 강해졌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의 감사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감사하면 그 일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못된 상사도 고마운 존재로 바뀝니다. 저를 못살게 했던 그 상사도 하나님이 저를 훈련시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게 된 일도, 제 삶에 있었던 긴 쉼표 였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쉼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쉼표였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할 때, 우리는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숨을 깊게 들여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가르쳐 주신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큰 핍박이 있으세요?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신가요? 그래서 암흑 같으세요? 길이 굽어져 버렸나요? 알지 못하는 길고 가고 있나요? 맹인과 다름없이 되어버렸나요?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망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서 그래요. 모든 음악을 총감독하시는 그 분을 보지 못해서 그래요. 그렇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음을.
광명이 있을 거예요. 곧은 길이 될 거예요. 지름길이예요.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고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큰 핍박이 와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감사에서 한계를 없앴으면 합니다. 잘된 것은 감사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감사의 지경을 우리가 넓혀 갔으면 해요.
사도행전 8장 1절은 쉼표입니다. 끝난 것 같은데,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쉼표입니다.
사울은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주님의 사역을 끝장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지혜가 도리어 그의 어리석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울을 예수께서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 대적하기를 멈추지 않고 달려가던 그를 주님이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이 그의 인생에 쉼표를 찍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멈춰 섰습니다. 사울은 주님을 깊이 있게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노래를 뱅우고 부르게 됩니다. 주님을 핍박하던 노래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말입니다. 쉼표 덕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보게 될 앞으로의 사도행전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너무 낙심하지 마시길 바래요. 그리고 주님의 약속과 주님의 신실하심.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요.
우리에게 고난은 쉼표입니다. 바쁜 일상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는 순간입니다.
제대로 가고 있나? 제대로 믿고 있나? 그렇게 심호흡을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게 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심을 말입니다.
주님이 길을 여실 겁니다.
주님이 우리의 길을 곧게 하실 것입니다.
암흑이 광명으로 바뀔 것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