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대답도 같은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 안에 내적, 외적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권능을 받고 주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겁쟁이 베드로가 용사가 되었습니다. 무식한 베드로가 지혜자가 되었습니다. 무능했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능력자로 거듭남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베드로가 설교하고 , 3천명이라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일입니다. 1분에 한 명씩 세례를 준다고 한다면, 3천분, 즉 50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12명의 사도들이 세례를 주었다면 약 5시간 정도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양적인 변화 뿐 아니라,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구제하고 서로 돕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어느새 한 가족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생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인데요. 현대 교회들이 본받고 싶은 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주여! 이런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 공동체가 했던 일들은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도 하고 있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우리도 성경을 공부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성찬식을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식사도 합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세상 모든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교회에서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교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43-45절에 나오는 내용이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말씀은 사람들의 삶이 질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의 필요를 위해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렇게 살라고 강요하거나, 이렇게 살지 않으면 망한다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자연스럽게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그리고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매일이 예배였습니다. 성령이 임한 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내적, 외적 변화인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사도행전 4장까지 지속되다가, 그 이후에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났던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또한 현대 교회에서 문자 그대로 실행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이런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원리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원리가 무엇일까요? 또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가 이상적이고, 좋은 교회이며, 나아가 건강한 교회의 모범 답안이라면, 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것은 ‘사랑하기’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요?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요?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시거나 들으셨을 것입니다. 성경 공부 많이 하고, 성경에 나오는 은사를 많이 받고, 봉사 많이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비춰보면, 사랑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나아가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명령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 성경 읽기 모임 시간에 마태복음 22장에을 읽었습니다. 내용 중에 율법학자가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초대 교회에서 보여주여지고 있는 현상을 잘 살펴보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 이런 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성
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주와 하나님 되심을 배우고,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우리의 입술로 찬양하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고’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 이런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어렵게 모은 재산을 남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든 일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억지로 조금은 할 수 있지만, 오랫 동안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재산과 소유물을 팔았다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돌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힘이 있는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약자를 돕는 교회의 모습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호감입니다. “나도 저런 교회 다니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결과가 47절입니다. ‘주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 중에 고린도 교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1:5-7)’
새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멋진 교회, 성장하는 교회, 성숙한 교회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넘쳤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교회 안에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었던 시기와 분쟁이었습니다.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걷고 있는 길이, 사실은 고린도 교회이 갔던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났던 교회들이 분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편이다’라고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시기하고 분쟁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
‘같은 마음으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친교를 하던’ 예루살렘 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어린애 같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들을 젖먹이 취급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1-2)
교회 안에 성령의 은사는 많이 나타났지만, 그들 안에 부족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던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이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일어났던 일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 교회 안에 얼마나 사랑이 흘러 넘쳤는지 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쳤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쳤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요? 전문 요리사가 밥 해주는 교회. 최첨단 시설과 쾌적한 시설을 갖춘 교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교회. 온갖 프로그램으로 가득한 교회.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상한 교회일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내려 놓고,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교회, 내 몸같이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초대 교회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가장 큰 은사이기도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사랑할 힘을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사랑은 때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것과 같아보입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낭비고,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도 소용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콩나물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콩나물을 키울 때는 어두운 곳에 두고 계속 물만 주면 됩니다. 물은 자꾸 흘러 내려가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콩나물이은 쑥쑥 자라납니다.
교회에는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우리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주세요. 물 빠지는 독 같을지라도, 사랑의 물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콩나물 자라듯이 우리의 교회에도, 우리의 가정도 어느새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과 제가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더 큰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좋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약한 자들이 도우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글학교를 해도, 선교사들을 도와도, 사랑으로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강도만난 사람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로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면 말입니다.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