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의 오래된 습관이’ 물건 제자리 놓기’ 라고 합니다. 이 분은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 안에도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놓고 정리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쓰려는 물건을 헤메지 않고 바로 찾아 사용할 때 느끼는 뿌듯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쓰던 물건을 있던 자리에 다시 가져야 놓는 것은 쉬운 일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처럼 습관이 안되어 있으면 그렇습니다. 언젠가 다시 쓰겠다고 던져 두고는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쓰려는 물건을 찾느라 동분서주합니다. 제가 요즘에 절실히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건 제자리 놓기’ 집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를 지켜보겠지요?
사실, 이번에 교회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배운 것이 있는데요. 어떤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공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칼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사다리가 있어야할 자리가 있고, 옷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만 잘 해도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교회도 잘 정돈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제자리에 놓기만 집안 정리가 훨씬 쉽고 정돈된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물건도 자리가 있지만, 사람에게도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목사로서 있어야할 자리가 있습니다. 목사인 제가 술집에 앉아서 술만 먹고 있다면 보기에 좀 그럴 것입니다. 목사가 지켜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어야 할 자리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잘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평안이고 또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신 자리에 우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우리 말에 ‘답다’라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 답다. 목사 답다. 선생님 답다. 아빠 답다. 남편 답다. 아내 답다’ 라는 말입니다. 각자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킬 때, 그 자리에 서 있을 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말이 그립습니다.
목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장로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집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그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2. 회개하라 = 주 안에서 나의 자리를 지키라.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자리를 지키는 일은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셨던 것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한 내용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있으라고 한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은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이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 답지 못하고, 하나님 백성 답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자답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 답지 못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인 것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가 바로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고 주 안에서 새롭게 되라’는 것입니다.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엉망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나 있으면 우리 인생도 엉망이 됩니다.
집은 청소해야 되지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모멸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자리를 향해 가겠다고 고백하는 회개는 용기있는 행동이고, 책임감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목사 답게, 아버지 답게, 아들답게, 남편 답게 또는 아내 답게, 살겠다는 몸부림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욕심의 자리에게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이고, 믿음의 자손들이 해야 하는 일도 회개입니다.
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지키기 못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죄를 짓었다고 해도,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두 팔 벌려 안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는지 아시나요? 하나님을 믿는 주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은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로 돌아오라’. 세상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 우리를 향해 맨발로 달려오셔서 안아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우월감에 빠져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하나님의 계획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망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다시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그의 자녀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 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베드로는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롭게 되었도다’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 성품은 죽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 주님의 성령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코에 성령을 불어넣으셔서 우리가 살아있는 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우리의 욕심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로. 우리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탁하신 일은 그의 악함을 버리고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이 주신 것은 큰 축복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를 믿는 자녀들을 통해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도 주님이 주신 복을 흘러 보내시는 것입니다.
축복 받은 백성들에게 주님이 던지시는 질문은 주님이 주신 축복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4. 악함을 버리고
지난 주에 한국을 강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사업가의 섹스 스캔들이 그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는 한 사람의 추함이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다 얻었지만, 그가 얻은 것은 불명예입니다. 자신은 악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하나님의 자리보다 놓은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해서 생긴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하나님 보다 높은 자리에 앉기 원할 때 생기는 것은 혼란 뿐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바벨탑 사건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를 넘 보았을 때 생긴 일은 언어의 혼란이었습니다. 또한 이 일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짧아도 참 짧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는 사람의 삶과 천지 차이입니다.
한국을 강타한 한 부자 이야기는, 자신은 천년 만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죽음 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행 3:26)’
‘돌이켜 악함을 버리라’는 베드로의 설교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잠언 12:14)”
악함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입니다. 악함을 쓸데 없는 것입니다. 악함은 흠모할 대상이 아니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악함은 쓰레기 통에 버러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물건에게도 자리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자기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세대에 필요한 것도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지킵시다. 어머니의 자리를 지킵시다. 남편의 자리를 지킵시다. 아내의 자리를 지킵시다. 그러면 우리 가정에 질서가 생깁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위안이 우리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앉은뱅이로 평생 살아던 한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은 묵상해 보십시오.
그는 남들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롭게 되었으며, 그에게 자유가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와 축복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복된 일에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주제도 주님의 축복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전해지는 것입니다. 회개한 주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는지를, 매일 매일 우리 스스로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악함을 버리며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