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무례한 것이 큰 자랑처럼 보입니다. 힘이 좀 세다고 사람들을 무시하고, 아는 게 조금 많다고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이런 불친절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신문에서만 읽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친절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유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이런 가르침을 주신 것은 우리가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유해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온유해 지는 것이 쉬운 것이었다면 성경이 그렇게 온유를 강조할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온유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온유이기도 합니다. 언제 부터인가 기독교인은 무례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2.
온유하다는 말이 뭘까요? 다른 성경에는 친절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사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래참음은 내적인 것이라면, 온유함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유함은 매우 적극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수정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협박을 하는 것보다 온유하게 사람을 대할 때 더 효과적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정치인들 같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친절을 배풀고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겸손하게 받아들입니다. 선거 기간에는 절대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절을 베푸는 것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절한 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양만 봐도 우리가 감동하는데 진짜 사랑을 만나면 얼마나 감동이겠습니까! 사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도 친절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도 친절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 보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3.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답니다. 그 복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지경이 넒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깨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면 우리 마음에 쉼이 있다고 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온유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죄를 질 때마다 화를 내시고 벌을 내리셨을테니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이 온유하신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가지,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우리가 주님에게서 온유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온유인 것입니다.
3.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구절이 잘 표현된 말씀이 베드로전서 2:23절입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3)’
주님의 오래참음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다’는 내용입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라고 쓰여져 있는 부분은 ‘온유’입니다. 온유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오래참음과 온유가 동시에 나타난 곳이 십자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사랑을 이루는 삶이라면 말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예수님깨서 얼마나 온유하신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 사람의 결혼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식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이야기 해 줍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의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아시죠? 그 잔치에 사용된 어떤 포도주 보다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한 사람에게 베푸신 친절이십니다.
장면이 바뀌었습니다. 흥분한 일단의 사람들이 예수님 발 앞에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람은 죽임을 당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길 바닥에 뭔가를 적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돌을 들고 여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광장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여자에게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떠내 보셨습니다. 주님이 여인에게 큰 친절을 베푼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십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4.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도 주님을 닮아 친절을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친절을 베푸는 데 인색할지 모르지만, 주님을 보고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친절을 경험하고, 그것을 따라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모방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데이비드 R. 해밀턴이 쓴 ‘내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친절과 관련이 실험이 몇 가지 소개 되어 있습니다. 실험의 목적은 ‘친절도 전염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친절도 전염될까요?
용감한 래시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용감한 래시라는 영화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개 래시가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내용입니다.
실험은 어린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다음, 한 집단에게는 래시의 주인이 새끼 강아지를 구해주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영화 전체를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집단에게는 이 장면이 삭제한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를 보여준 다음에 어린이들에게 게임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고 게임 중간에 갑자기 강아지가 끙끙대는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강아지를 도와주러 가면 게임에서 질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선택은 어떠했을까요?
강아지를 구출하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본 아이들은 그 장면을 삭제한 영화를 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신속하게 강아지를 구하려 달려 갔다고 합니다. 친철도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실험을 통해, 데이비드는 친절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하나의 친절이 또 다른 친절을 부른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친절이 다른 사람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보여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 졌습니다. 그것은 친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친절하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친절을 베푸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절은 다른 사람들이 또한 친절을 베풀며 살 수 있도록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먼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도 주님의 본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주님을 따라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한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 있어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힘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매우 구체적으로 사랑이 무엇이라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가 친절을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똑똑한 사람을 존경했지만 지금 나이가 들고 나니 친절한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친절은 감동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로 부터 도움을 받으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여러분들이 어렵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도와주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친절을 넘치도록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친절을 받을 때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토니 로빈스 라는 사람의 고백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니 로빈스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11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그 사람의 집은 너무 가난했다고 합니다. 추수감사절이지만 먹을 것이 집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마침 집 안에서는 부모님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토니가 문 밖에 나가 봤습니다. 문 앞에 어떤 덩치 큰 남자가 음식이 담긴 상자와 칠면조 1마리를 들고 서 있었다고 합니다. 추수감사절 선물로 그 사람이 가져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무 조건없이 가난한 토니 가족에게 베풀어준 친절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토니에게 매우 인상 깊었던 사건으로 기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토니는 ‘이렇게 낯선 사람도 우리 가족을 걱정해 주는데 나도 앞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보살펴줄 것을 스스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17살이 되었을 때 그 약속을 처음으로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토니는 음식 상자를 만들어서 누군가 배달해 주는 것처럼, 음식을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라틴계 여성에게 전해준 음식 상자였는데요. 그 집은 3일전에 남편이 처자식을 버리고 떠나서 당시에 돈도 음식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집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토니가 음식 상자를 누군가 보낸 선물이라고 하면서 전달하자, 그 여인은 기쁨에 넘쳐 소리를 지르고 토니를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토니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군요!’라고 말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토니는 음식 상자를 나눠주는 일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일이 30년이 지난 후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토니는 국제 음식 상자 단체를 만들어 전 세계 수십 개국에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에게 음식 상자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11 세의 토니 가족에게 배푼 한 사람의 작은 친절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입니다.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사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어떤가요? 그 이야기는 강도 만난 사람을 향해 조건없이 베푼 사마리아인의 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이웃 사랑의 예로 들려 주셨습니다.
어떤 이유가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 보이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도 친절하셔야 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여도 좋습니다. 문을 열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그 일로 우리의 주변이 바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친절은 전염됩니다. 우리가 친절하면, 우리의 아이들도 바뀝니다. 우리의 가정도 바뀌고, 우리 교회도 바뀌고, 우리가 사는 사회도 바뀝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을 보고 베우고, 우리도 주님을 모방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 따뜻한 세상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세와 같은 평가가 우리의 평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 12:3)’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의 삶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켰듯이, 우리의 작은 사랑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합니다. 그러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