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천국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비유로 말씀해 주신 예수님의 천국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화려한 천국의 모습도 없고, 정말 알쏭 달쏭한 이야기만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포도원 주인 이야기입니다. 천국이 포도원 같다고 하셨다면, 포도원에서 천국에 대한 힌트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천국이 포도원 주인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포도원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예수님은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우리는 더 미궁 속에 빠져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을 장소로만 생각해 와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지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천국은 장소 개념보다,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님을 더 알게 되면 우리는 천국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품꾼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입니다. 현대에서 품꾼은 일용직 노동자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지금도 그 당시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품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이 하루 일을 못한다는 것은, 그날 먹을 양식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면 그가 가진 삶의 무게가 어떠했을 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니, 품꾼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하는지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 간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무엇보다 애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른 새벽, 인력 시장에 모이면서 벌어진 일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고용주가 나타나고, 그는 자신이 필요한 인력만큼 데리고 일터로 떠나가게 됩니다.
누구부터 일자리를 얻게 될까요? 여러분이 고용주라면 누구를 데리고 가실 것 같으세요?
맞아요. 젊고 힘 깨나 쓰는 사람부터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인력 시장에 남는 사람은 나이가 많고 힘 없는 사람들만 있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 배경을 염두해 두고 읽어야 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비유도 이른 아침에서 시작됩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 포도는, 매우 중요한 과일 중 하나입니다. 건조한 지역이다 보니, 수분을 얻을 수 있는 매체가 포도였습니다. 또한 포도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어째든, 포도를 수확하는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일꾼이 필요했던 집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인력 시장로 향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이 인력 시장에 주인이 직접 나간 점입니다.
그 당시 포도원 주인은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인력 시장에 갈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기 대신 청지기를 보내서, 품꾼을 데려 오라고 지시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8절에 가서야 등장하는 인물이 ‘청지기’입니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시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은 매우 부지런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를 시켜서 포도원에서 일할 품꾼을 데려 와도 되는데, 자신이 직접 이른 아침에 포도원 일꾼을 고르려 갔기 때문입니다. 이 부지런한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 품꾼들에게 약속한 일당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데나리온은 1세기 당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온 가족이 하루 먹을 식량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데나리온은 하루 벌어서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의 금액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 데나리온을 벌기 위해, 품꾼들이 뜨거운 태양과 사막의 모래 바람을 견디면서 12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포도원 품꾼이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 자리라도 얻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행복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주인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오늘 먹을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굶지 않게 되었다는 희망을 가지고, 안도의 한 숨을 쉬면서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좀 특이한 행동을 합니다. 3절에 보면,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또 채용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른 아침에 채용한 품꾼들이 힘깨나 쓰는 품꾼이었다면, 제 삼시(오전 9시)에 나가서 데려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쩌면 이른 아침에 다른 고용주의 선택을 받지 못한 낙오자 같은 사람들입니다. 갈 데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빈둥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포도원 주인이 고용한 것이, 어떻게 보면 이상해 보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주인의 이런 행동들은, 아마도 포도를 추수하는 시기라 사람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또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제 육시와 제구시에도 나가서, 그리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서 포도원 주인은 사람들을 또 채용한 것이 그것입니다. 제 십일시는 오후 5시 정도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일하면 날이 어두워지게 되고, 그래서 일을 못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은 자꾸만 인력 시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 왔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궁금증이 유발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 십일시에 만나 사람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포도원 주인의 이 말은 사람들을 조롱하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자 품꾼이 하는 말이 자기를 쓰는 이가 없어서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품꾼들이 이런 시간에도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누구봐도 힘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당을 주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에 미쳤을 것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이 가슴 아프지요. 이런 일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도 써 주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하는 희망 아닌 희망을 붙잡아야 하는, 슬프디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제 십일시에 포도원 주인이 만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들에게 십일시는 우울하고 힘이 빠져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꼼짝없이 온 가족이 굶어야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집에 들어가 쉬지도 못하고, 괜히 거리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포도원 주인이 제 십일시에 채용한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말합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이 말이 얼마나 반가웠을지 상상이 되시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에게 뭐라고 해야할 지, 어떤 표정을 짓고 집에 가야 할지, 고민했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라고 하는 희망조차 사라진 시간에 서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했던 한 마디.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이 말이 복음입니다. 이 말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뀌는 능력의 말입니다.
‘제 십일시에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하면서 너무나 기뻐서 눈물을 흘릴 사람도 있을 법 합니다. 그날의 마음 고생을 다 녹여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아가 이 말은 제 십일시까지 서성이던 사람들을 배려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 시간 남짓 일하면 하루 일과가 끝나니까, 포도원 주인이 이들에게 선심쓰듯 얼마의 돈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에게 포도원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하루 종일 가슴 아파 했을 그 시간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포도원 주인이, 왜 하루에 다섯 번이나 인력 시장을 방문했는지 짐작하셨을 겁니다. 물론 포도원이 커서,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중들도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과연 이런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포도원 주인 같은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도 제 십일시에 있는 사람들 같기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보았던 사람들의 얼굴은 어떤 것일까요? 품꾼으로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일을 못하면 온 가족이 굶어야 하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도, 경제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 앞에서 실패하고 넘어지고 좌절해야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포도원 주인의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얼굴이 신경 써여서 자꾸만 인력 시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포도원 주인 마음 같은데 은혜와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시는지 아실 겁니다.
부지런히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 힘 깨는 쓰는 일꾼만 부르시는 게 아니라,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제 십일시에 여전히 품꾼을 부르시는 포도원 주인 같은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른 아침에, 제 삼 시에, 제육 시와 제 구시, 그리고 십일시에도, “포도원에 들어가라”는 포도원 주인의 한 마디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환호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도원 주인의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2.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8절과 9절에 나옵니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릅니다.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부터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하면서 일어난 일이 놀랍습니다.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을 받거늘’
이 일은 그 동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통념을 또 한 번 깬 일입니다. 제십일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것도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한 시간 일하고 하루 일당을 받은 것입니다. 다 끝나가는 시간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것도 감사한 일인데, 하루 일당을 모두 받았으니, 정말 꿈 같은 하루를 이들이 선물 받은 것입니다.
혹시 내 인생이 십일시 같다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분들에게 특별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본 먼저 온 사람들이 눈도 커졌습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이라면, 세 시간 일한 나는? 3 데나리온. 12시간 일한 나는? 12데나리온’ 이라는 계산이 바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의 기대가 증폭되고 있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데, 며칠 일해야 버는 돈을 받는다는 설렘이 사람들에게 생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지기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불망을 터 뜨립니다. 기대한 만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과 12시간 일한 사람이 어떻게 똑 같을 수 있냐고 따졌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품꾼들은 포도원 주인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일당을 받은 후에는 집 주인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정의롭지 못하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방금 전까지 천국이었는데, 금새 지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정의롭지 않은 나라. 공정하지 않은 나라. 일해도 일한 만큼 대접 받지 못하고 인정 받지 못하는 나라. 그런 나라는 지옥 같은 나라입니다. 이게 품꾼들의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십일시에 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들은 특혜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주인이 뭔가 캥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품꾼들이 수근거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다시 한 마디 합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포도원 주인이 한 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인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이른 아침에 채용한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했습니다. 제 삼시에 만난 사람에게는 포도원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4절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여기서 말하는 “상당하게” 라는 말은 ‘정의롭게’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품꾼에게는 ‘9시간 일한만큼 줄께’ 라는 말로도 들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인은 12시간 일한 것처럼 한 데나리온을 준 것입니다. 이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냐 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그랬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베푼 은혜를 잊어버리면서 그랬습니다. 포도원 주인을 오해하기 시작하면 그랬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이유가 뭔지 사람들이 헤아려 보지 못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그렇게 한 이유는, 십일시에 일한 사람들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루를 살려면 한 데나리온이 필요한데 그 필요를 채워주고 싶었던 포도원 주인의 마음을 사람들이 오해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긍휼을 잊어버리면, 남들과 비교하면, 하나님을 오해하면,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이 원망입니다. 얼마 전까지 천국이었는데, 지금은 지옥이라면?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 나오는 품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은혜와 긍휼을 베푼 포도원 주인을 악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공정하지 않은 악덕 고용인이라고 품꾼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선하므로 악하게 보느냐’
유사한 일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악함으로 둔갑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일인데, 그런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악한 것일까요?
사실 포도원 주인이 먼저 와서 일한 사람들부터 일당을 주었다면 품꾼들의 원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먼저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 줘서 보내고, 제 삼시에 와서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 줘서 보내고..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십일시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줘서 보냈다면, 모든 일이 평화롭게 그리고 은혜롭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만 바꿨을 뿐인데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어떤지 이 일만 봐도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 있습니다.
천국은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곳이 아니라, 천국은 필요한 만큼 보상 받는 곳임을 보여주십니다.
세상의 공정은 일한 만큼 보상 받는 것이지만, 천국의 공정은 필요한 만큼 보상 받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에서 이 일이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5)’
포도원 주인이 십일시에 온 품꾼들에게 원칙에 따라 일당을 주지 않고,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포도원 주인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품꾼들을 긍휼히 여긴 것처럼, 품꾼들끼리도 서로에게 이런 긍휼의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아시겠지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에수님의 비유에 나온 품꾼들의 내일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여전히 이른 아침에 나와서 가족을 위해 일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십일시에 나와서, 어제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포도원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여전히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자기를 데리고 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같은 포도원 주인을 만났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 어제 십일시에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은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정말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을 사람들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른 아침부터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제 삼시가 되어서야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어도 감사한 일입니다.
동일하게 제육시와 구시에, 심지어는 제십일시에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천국은 포도원 주인 같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가득한 곳, 게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부지런히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