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에는 첫째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첫째가 못되었다면, 우리 자녀라도 첫째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첫째가 된다는 것은 인정 받는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된다는 것은 영향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된다는 것은 주목 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한 첫째가 된다는 것은 리더가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째가 되기 위해 , 수고하고, 노력하고, 인내합니다.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예수를 따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누가 크냐’라는 제자들의 논쟁은 우리의 논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문화적으로, 영적으로 첫째가 되고 싶어합니다. “첫째가 되어라. 세계 최고가 되어라! 예수를 믿는 것도 최고로 잘해라! 머리가 될지 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 이런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첫째가 되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고, 우리의 긍지이기에 그렇습니다.
주님도 우리가 첫째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보면, 첫째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바로 첫째가 될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첫째가 되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섬기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이 벌어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나와서 무엇하시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무얼하고 싶으신가요? 이것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있다면, ‘공부해서 남 주자’ 라는 구호입니다. 첫째가 되려는 이유, 우리 자녀에게 첫째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를 설명해줘야 합니다.
섬김은 첫째가 되는 자들의 자세입니다. 섬김은 첫째가 되는 사람들의 역할 입니다. 섬김은 또한 첫째가 된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는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선거 때만 되면 사람들의 일꾼이 되어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국회의원이 되면 섬김은 사라지고 섬김을 받는 존재로 바뀌어 버립니다.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집사, 장로, 목사. 이들은 우리는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봅니다. 종종 집사로, 장로로, 또는 목사로 우리가 불리워지면,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 버리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저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은 아닌지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려서 그렇습니다. 왜 첫째가 되려고 했는지, 그리고 첫째의 역할이 무엇인지 잊어버려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주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 9:35)’ 이 말씀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이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진짜 첫째입니다. 우리가 첫째가 되려는 동기에 주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2. 우리 편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욕망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내 편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편은 잘 나눕니다. 우리 편은 좋은 분, 다른 편은 나쁜 놈. 그래서 나쁜 놈은 때려 부셔야 속이 시원합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항상 이렇습니다. ‘누구 편이야’ 우리 편이면 좋은 사람, 정의의 사나이, 내편이 아니면 악당이거나 위험한 사람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안 가르쳐 줘도, 아이들은 ‘편’을 잘 나눕니다. 안 가르쳐 줘도, 우리 아이들은 ‘편’을 잘 나눕니다. 아이들에게 ‘내편’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네 편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아실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도 ‘편’을 나눕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우리 편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이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8절을 다시 보시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제자들과 같은 편이 아닌데, 예수의 이름으로, 제자들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마가복음 9장 초반에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못고치고 논쟁만 했고 있었던 모습을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순간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온 땅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마음에 들었던 생각은 놀라움이 아니라 시기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놀라운 기적일지라도, 그 일이 제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그 일을 싫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 38절 후반부를 읽으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난 놀라운 일이지만, 못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를 따르지 아니했기 때문에, 우리 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고요? 요한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입니다. ‘주님 우리 편도 아닌 사람이 주님의 제자 흉내를 내고 있어서 못하게 했습니다. 잘했지요!’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내가 해야 되는데, 내 편이 해야 되는데”, 내 편이 아닌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것을 제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내 편이 다른 편 보다 더 잘되는 것이 좋으시나요? 아니면 반대이신가요? 보통은 우리 편이 잘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편을 나눈 것도 아닌데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렇습니다. 사람이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냥 사람의 본능입니다. 교인수가 많아도 그렇고, 교인수가 적어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본능은 편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을 해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잘 해내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따르지 않으므로 금하였나이다!’ 라는 요한의 말은 우리의 본능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자신들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 ?아낸 사람에게 말했을까요?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했을 까요? 아니면, ‘하지 마’ 라며, 사납고 위협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을까요? 험상 궂게 말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비슷한 일이 구약 성경에도 나옵니다. 민수기 1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일로 모세가 머리가 아팠습니다. 매일 불평만 하는 백성들이 다스리는 일이, 모세에게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민수기 11:16-17절 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게 이르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명을 모아 내게 데려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민 11:16-17)’
하나님이 모세의 짐을 덜어주고자 백성 중에서 칠십명의 장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백성의 장로 칠십인이 장막에 둘러서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장로들에게 임하고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민 11:25)’ 모세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일어난기적입니다. 그런데 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막에 있지 않았고, 자기 집에 머물러 있었던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 일이었습니다 (민 11:26). 모세의 편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세와 함께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영이 임했고, 이들이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일인가요? 나쁜 일인가요?
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가 이 일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가 말합니다.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민 11:28)’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는 말과 비슷하지요. ‘우리 편이 아니니 금하자’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모세에게만 임해야 하고, 모세와 함께 서 있는 사람에게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제자들만, 큰자 들만, 교회 직분자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민 11:28)”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자기 편 들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이야기 합니까? “여호와께서” 모세는 내 편, 네 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는 것도 좋은 일지만,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편, 네 편, 우리 편 이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편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절,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한 자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편에 서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편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은 같은 편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지 말라고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내 편, 네 편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한 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자연스럽게 편을 만드는데 어떻게 주님 편이 됩니까? 이런 질문이 우리에게 생겨야 할 것입니다.
3. 물 한 그릇이라도
그것에 대한 답이 41절입니다. 그리고 편을 나누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신 실천 사항입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물 한 그릇을 주는 모습은 별 것 아니지만, 주님은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작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위대하신 주님이 별 것 아닌 일이라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반드시 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그 사람에게 물 한 잔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일을 기뻐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곤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물 한 잔을 누구에게 주느냐는 질문입니다. 물 한잔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쉽게 줄 수 있는 것이지만, 내 편이 아닌 사람에게는 주기 어려운 것이 물 한잔 입니다. 맞나요? 우리 편이 아닌 사람에게 물 한 잔 주실 있으세요?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 사람’ 그 사람에게 물 한잔의 배려를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우리 편이거나 아니거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니더라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면, 교인이라면,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면, 작은 배려로 상징되는 물 한 잔은 주라는 것입니다. 모두 주님 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능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의 이름으로 이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도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이 아닌 그 이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도전하시는 것은, 별 것 아니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은 사람에게 배푸는 작은 배려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물 한잔을 주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본능을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전 재산을 우리 편이 아닌 사람에게 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물 한잔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사람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우리 편인가요? 아닌가요?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물 한잔을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 일을 칭찬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우리 삶에 실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