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많이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라는 찬양입니다.
찬양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예수님이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파도가 잔잔해 졌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을 요약한 것입니다.
후렴 부분은 작곡자의 말씀 적용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물이 포도주로, 소경이 눈을 뜨고, 죽은 나사로가 부활하고, 거친 파도가 잔잔해 지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도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이 말씀하셔서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의 질문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여러고성에서 행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예루살렘까지 약 2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역입니다. 이 곳에서 예수님은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고쳐주시기 전에 그에게 물으신 질문이 51절에 나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마가복음10장에 또 한 군데 더 나옵니다. 마가복음 10장 36절인데요.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와서 자신들이 구하는 모든 것을 다 해달라고 하자, 주님이 하신 질문입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물론 주님이 제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주님의 말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주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고,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며,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면 우리는 흥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요구한 대로 주님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제게 더욱 의미있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목사 안수를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3. 영적인 여행기
2009년 10월. 컴벌랜드 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임명 받았던 날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의첫 사역지는 클락스빌 교회입니다. 그곳에서 6개월 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뭔지도 모르면서, 설교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한 주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행복했고, 감사했고, 제 자신도 새롭게 변화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갔습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지금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클락스빌에서의 사역을 끝내고 약 4개월동안 올리브 브랜치(Olive Branch)에 있는 First CP church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사역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은 그곳에서 주 안에서 신실하신 분들과 영적인 멘토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위해 지금까지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겁니다.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2011년 5월부터 오늘까지, 멤피스 한인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 공부와 직장 생활, 그리고 사역을 병행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지 모르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도 없이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부족한 저를 참아주시고, 사랑해 주신 성도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오늘은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마음이 제게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빚진 자입니다.
한편으로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제 집 사람이 농담반 진담반 하는 말이 있어요. ‘예전에는 연구 논문 쓴다고 컴퓨터에 앉아 있더니, 지금은 설교 쓴다고 컴퓨터에 앉아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평생 제 뒤통수만 보면서 산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4개월 동안 제 삶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미루고 못하던 일들을 하느라 바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PAS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되었습니다. 빚진 자의 심정. 주님께 빚을 졌고, 가족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많은 분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간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는 말씀처럼 살고 싶은데, 제 삶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받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주는 속도보다 받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사는 동안 사랑의 빚은 늘어만 갑니다. 그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과 기도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부족한 가 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주님의 질문에 귀가 확 트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고민합니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의 이 질문이 두 번 나옵니다.
첫번째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고, 두 번째는 소경인 바디메오에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물으셨지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왕의 자리에 오르실 때에 저희를 기억해 주십사라는 부탁입니다.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 주세요. 저도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누가 영광의 자리를 싫어하겠습니까? 그것도 주님의 영광이 있는 곳인데 말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질문은 소경이자 거지인 바디메오에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다른 복음 성경에서도 소개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바디메오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의 타이틀은 소경입니다. 이 당시 소경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또 다른 그의 타이틀은 거지입니다. 거지는 얻어 먹으면서 사는 사람이지요. 거지는 받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거지가 나눠주면 뉴스감이 되지요. 사람들이 놀랍니다. 받기만 하던 사람이 나눠주기 때문입니다.
소경이자 거지인 바디메오는 나사렛 예수가 자기가 있는 곳을 지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그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메오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의 절박함이 들리시나요? 그가 겪었던 고통만큼 주님을 향해 소릴 지르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었던 좌절만큼 큰 소리로 주님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그가 주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몇 명의 사람들이 바디메오를 말립니다. 로마 군대들에게 주님의 신분이 들통날까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크게 소릴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소리를 주님이 들이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부르라’
주님의 부름을 받은 바디메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신이 났을 겁니다. 그가 겉옷을 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갔습니다. 겉옷은 바디메오의 전 재산입니다. 그의 전 재산을 버리고 주님을 향해 달려간 것입니다. 겉옷은 또한 신분을 상징합니다. 거지의 신분을 나타내는 겉옷을 버려고 주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왕이 거지에게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말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주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주님 앞에서, 그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제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주님, 제게 입을 것을 주십시오. 주님, 제게 마실 것을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요.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어도,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바디메오는 자신의 눈을 뜨기 원했습니다. ‘랍비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에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절박한 기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시급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는 것입니다.
52절에 보면, 바디메오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메오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길에서 따르다. 이것이 바로 제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길에서 예수을 따라 가는 삶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거지 같은 인생에서 예수의 제자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그가 새롭게 변했습니다. 받는 인생이 아니라 주는 인생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의 내용이 그렇지만, 오늘 본문도 우리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온 제자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었지만, 진짜 예수님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바디메오는 육적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진짜 예수가 누구신지 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 주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거지같은 겉옷은 과감히 내 버리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눈이 밝은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똑바로 볼 수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밝아진 눈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가시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을 위한 주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 간절한 소망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바디메오처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사람들의 이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를 놓고 부르짖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의 문제를놓고 주님께 부르짖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거지 같은 겉옷은 과감히 내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새 옷을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거지 같은 인생이 아니라 왕과 같은 인생이 되기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받기만 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냐고 물으실 때, 가장 시급한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눈이 떠지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떠져서, 우리 삶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떠져야, 우리가 주님을 똑바로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인생 길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따르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나 주의 도움 받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