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이만 때쯤이 되면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벌써~~ ‘ 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벌써 2015년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2015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마지막 주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멤피스 한인교회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두 분의 장로님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두 분의 새로운 장로님이 세워졌습니다. 저도 하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15년,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한 해 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말해 줍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쓰담쓰담). 여러분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5년에 여러분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참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해를 뒤 돌아보면서, 드는 생각이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라는 것입니다. 2015년은 특히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필요했던 한 해 였습니다. 이번 주는 특히 2015년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2016년에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2. 예수께서 끌려가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재판 중에서 가장 불공정하고, 가장 몰 상식해 보이는 재판이 오늘 본문입니다. 정의는 죽고, 사람들의 욕심과 편견으로 가득찬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새벽에 ‘ 입니다. 재판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시간에 급하게 이루어진 재판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재판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이시라는 점입니다. 하늘의 천사를 호령할 수 있으신 분이, 아무런 힘이 쓰지 않고 불의한 재판장에 끌려 가셨다는 것에 우리가 놀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 가는 양처럼 되셨습니다.
만일 우리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그 곳은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 의지대로, 내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이끌고 싶어합니다. 내 자신이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참기 어려워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힘을 다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에, 가장 위대한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우리가 실패했을 때, 우리 삶에 역설적으로 더 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도 예수님처럼 어딘가로 끌려가는 인생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서 살아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가 계획 세우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가 끌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우리가 스스로 하려고 했던 일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재판장에 있는 예수의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패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 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되는 시간입니다. 예수께서 실패의 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인류 구원이라는 더 큰 일을 하신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무런 힘도 쓰시지 않았을 때, 더 위대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큰 계획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황당하고, 억울한 시간일지 모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우리에게 있는 이 시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시간이 되기를 말입니다.
우리 삶이 내 뜻대로 안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고, 내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고, 내 죄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면,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그 때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일들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3. 잘못된 대답들, 그러나
오늘 본문의 2-5절을 보면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와 있습니다.
빌라도가 물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리고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 그리고 대 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합니다. 빌라도가 다시 물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대답을 하실 때와 대답을 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인생에 결박 당해 힘들 때, 끌려 가서 힘들 때에 우리가 대답해야 할 것이 있고, 대답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소리내서 대답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살기 위해 침묵하고, 살기 위해 우리는 대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반응하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총독인 빌라도가 물었던 질문에 예수님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셔야 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반역 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제사장들의 여러 가지 고발 내용도 하나 씩 반박하면서 논론을 하셨다면 모두 이길 수 있었던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변론에 능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번에는 가만히 계셨습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국의 어떤 코미디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변론합니다. 아마도 그 코미디언은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가만히 계시면 가마니가 되십니다’ 라고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가마니가 되셨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예수께서 죽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결박당하고 악한 사람들의 손에 끌려가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침묵해야 할까요? 대답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꾸며 대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떠 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일일이 변론해야 할까요? 침묵해야 할까요? 어려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어떻게 하면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선택은 살 길이 아닌 죽을 길이었습니다. 나는 죽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사는 길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기도로 마음에 결단하셨기 때문에 하실 수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의 고백이 떠 올랐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예수님의 대답은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살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주님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대답은 자신을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자신을 부인하면서 살았던 사도 바울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2015년 한 해 어떠셨나요?
예수께서 결박을 받으시고 끌려 가신 것처럼, 여러분의 삶도 누군가에게 끌려 가셔야 했던 삶이셨나요?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하는 사업이, 우리의 학업이, 우리의 직장이 우리를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점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절망하지 마시고, 오늘 본문이 떠 오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때에,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크신 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기대를 가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안에 이런 기도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두움의 시간들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말입니다.
또한 우리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합니다.
예수님처럼,나는 죽고 하나님의 뜻은 살아나게 되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처럼,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게 되는 대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큰 일을 이루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죽고 하나님이 내 안에 사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여러분과 제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