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 오늘은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멤피스 한인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6년이 넘었더라구요. 세월이 참 빠르지요?!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여러분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제게 하신 일들을 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역사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5년 3월, 미국와서 13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 의지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일하던 연구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자동으로 직장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처음에 연구실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참 많이 놀랬습니다.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들어서 였습니다. 예상하던 것이 아니라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신학 공부를 마쳐야 했기에 무척 바빠졌습니다. 그리고는 신학 공부를 마치자 마자, 2015년 7월 마지막 주일에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연구소 직장을 잃었지만, 새로운 직장이 생긴 셈입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또 다른 직장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때문에 걱정해 주셨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당사자인 저보다 더 걱정해 주신 분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그렇지만 많은 동료와 믿음의 선배들이 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빚진 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저희 가족이 무사히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분들의 기도와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함께 해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2.
비록 갑자기 다니던 직장을 잃었지만, 그 덕분에 밀렸던 신학 공부를 마쳤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무슨 계획표가 있어서 그런 것처럼 착착 들어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목사가 되면서 교회에 대한 책임과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이 뒤 따랐습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한 직장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이력서를 냈고 인터뷰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다 떨어졌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주시나 보다 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은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제가 했던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과 같은 능력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더욱 힘있게 목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은사가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바울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지요? 그는 루스드라에 살던 앉은뱅이를 한 마디 말로 고쳤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제게 그런 능력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능력을 잘 사용할 만한 그릇이 아직도 안되었기 때문이지요. 어째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직장은 잡히질 않았고, 또한 하나님의 능력도 제게서 나타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속으로 놀라고 속상하고 당황했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욱 당황시킨 것은, 제 모습을 보게 되면서 입니다.
바울인 줄 알았는데, 루스드라에 살고 있던 앉은뱅이 같은 모습이 제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지 마자, 남을 돕기는 커녕 제가 도움을 받아야만 되는 모양새를 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흉년에 과부에게 얹혀서 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제 모습은 루스디아에 살던 앉은뱅이 같았습니다. 물론 그가 그런 삶을 살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지요. 태어나 보니 몸이 불편했고,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루스디아에 살던 그에게는 도울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그가 바울을 만난 것 아닌가요. 그리고 나아가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또한 주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루스디아의 앉은뱅이가 된 제가 2년 동안 배운 것이 있습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로 필요한 존재가 바로 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없으면 금방 숨이 막혀 죽는 존재가 바로 저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실 저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뛰어나서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을 때조차도 말입니다.
바울이 루스디아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세요.
“지나간 세대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이 자기 방식대로 살게 내 버려 두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도 자신이 어떤 분인지 알리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등 여러분에게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을 풍성히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행 14:16,17)”
하나님께서는 제 삶에도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셨고, 먹을 것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증인입니다.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2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필요도 여러 가지 방법과 경로로 채워졌습니다. 어느날 누군가 연락해서 화학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1년 전에 콘코드에서 화학을 가르칠 때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이력서를 많이 내도 연락이 없었는데, 콘코드에서는 무작정 와서 강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이 바빠지면, 다른 일들은 다 사라지고 교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계획을 짜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훈련되어 지고 실전에 배치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쉬운 일부터 어려운 일로 한단계씩 이동하는 느낌입니다. 운이 억수로 좋아서 생기는 일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생기는 일일까요? 하나님이 저희에게 선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등 여러분에게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을 풍성히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행 14:16,17)”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3.
지난 2년 동안 많은 분들이 제 삶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의아해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항상 궁금했습니다. 사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신 걸까요? 궁금하시지요. 사실은 저도 궁금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년동안 저는 제가 살던 삶의 패턴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항상 친절했고, 배려심이 깊으신 분들이었고, 남을 도우면서 선하게 사셨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실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등학교에서 잠깐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목사로서 경험하게 될 세상을 보여주신 것일까요? 주님은 제게 거칠고 무례하고 속고 속이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신 세상의 모습이랍니다. 그리고 사실은 주님이 사랑하신다는 저의 벌거벗은 모습도 너무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루스드라에 살던 앉은뱅이 처럼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멋진 것 같은데, 삶으로 살려니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4.
루스드라에 살던 앉은뱅이의 모습은 제 모습이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도 루스드라에 살던 앉은뱅이가 받았던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제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여러분에게도 주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면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또한 우리 아버지 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너무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루스드라에 살던 사람처럼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입니다. 주님의 때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무기력한 삶을 이겨낼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힘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우울한 삶이 아닌 기쁨이 넘치는 삶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이 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울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를 내려 주셨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을 풍성히 주셨고, 우리 안에 기쁨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아멘! 입니다.
5.
마지막으로, 지난 2년 동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배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연약해서 쉽게 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말을 잘못해서 하나님께 누를 끼칠까봐서 그랬습니다. 그 만큼 믿음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 살던 앉은뱅이 에게서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 발로 똑바로 일어나 서시오” 라고 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뭘까요? 우리는 그것을 확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존 라일이라는 분이 믿음과 확신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뿌리라고 한다면 확신은 꽃과 같다. 뿌리 없는 꽃은 있을 수 없지만 꽃이 없는 뿌리는 있을 수 있다.
믿음이 군중을 비집고 들어가 살그머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과 같다고 한다면, 확신은 자신을 돌로 치려는 사람들 앞에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고백했던 스데반과 같다.
믿음이 십자가상에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생각해 달라’고 간청했던 강도와 같다면, 확신은 온몸이 다 헐어서 먼지더미에 앉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도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신다’고 고백했던 욥과 같다.
믿음이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할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었던 베드로와 같다면 확신은 훗날 그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었다’고 외쳤던 것과 같다.
믿음이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떨리는 음성과 같다면 확신은 ‘누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담대하게 외치는 음성과 같다.
믿음이 다메섹의 유다 집에서 눈이 먼 채 홀로 외롭고 충격과 슬픔에 잠겨 기도하던 사울과 같다면 확신은 연로한 죄수의 몸으로 자신의 무덤을 생각하며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 믿음을 지켰으니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고백했던 바울과 같다.
우리에게도 루스드라에 살던 앉은뱅이와 같은 믿음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나아가 바울과 같은 확신이 우리에게 생길까요?
우리 삶에 가운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주님을 기대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실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힘이요. 주님 만이 홀로 영광 받으실 분임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바울과 바나바 처럼 말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 것은 ‘헛된 일들에서 돌이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루스디아에 살던 앉은뱅이와 같이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바울과 같은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 발로 똑바로 일어나 서시오” 다른 사람의 팔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두 다리에 힘이 생겨 똑바로 일어나 서실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