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41-45
1.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믿겨지지 않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의 제목이 이렇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매우 자극적이었는데요.
“20대 남성 7명과 사랑에 빠진, (아니 우째 이런 일이..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요)
저는 마흔 살 (이런 삼류 소설 같은.. 그 다음을 보면서 무슨 내용인지 알고 좀 허탈해졌습니다) ‘아미(AMRY)’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의 소제목이 이렇습니다.
‘BTS 만난 뒤 삶에 즐거움 생겨, 노래로 위로해 주는 그들이 고맙다’ 였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은 7명의 남자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고요. 아미(ARMY)는 자발적으로 생긴 BTS 팬 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최근 BTS를 통해 믿겨지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BTS는 한국말로 노래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빌보드 차드에서 1년 동안에 세 번이나 1위를 한 엄청난 가수들입니다. 왜 인고 하니, 미국 역사에서 비틀즈가 가진 기록을 BTS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노래로도 확인이 됩니다. 예전에 어쩌다 들리던 싸이의 ‘난 강남 스타일’도 신기하고 반가웠는데, BST의 노래는 더 자주 들려서, 신기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 덕분에 멤피스에도 한글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BTS 팬 층이 매우 두터운데요. 저희 한글학교에 나오는 한 자매는 60세가 넘었는데도 자신을 아미라고 부릅니다.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기사에서 기자는, 방탄소년단을 알면 알수록 이들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말하는데요. 기자의 말인데요. “BTS는 노래도 좋고, 춤도 잘 추고, 퍼포먼스 환상적이고, 잘 생겼고, 타고난 예능인이고, 때론 귀엽고, 때론 섹시하고, 겸손하고, 착하답니다.” 얼핏 들으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 같습니다. 그렇지요? 교회 전문 용어로 하면, 간증 이라고 합니다.
기자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BTS노래의 ‘Tomorrow’ 가사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우니까,
먼 훗날에 넌 지금의 널 절대로 잊지 마.
지금 니가 어디 서 있든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포기하지마 알잖아”
특히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우니까” 이 부분이 제게도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로 들렸냐면, “지금 앞이 깜깜하세요. 새벽이라 그렇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밝은 태양이 비추이는 아침이 올 겁니다. 그러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되셨나요?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가수들이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 반갑지만 믿겨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제게는 그들에 대한 관심도 믿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20대 청년들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 오늘 본문 말씀이 주님의 자녀들에게 위로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2.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제자들의 반응이 이랬습니다.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또한 그의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고서 보였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서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상상도 못하던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놀랬고, 제자들은 주님을 직접 보면서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앞 부분을 보면, 분명 제자들 마음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작은 믿음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뭐냐 하면, 주님이 직접 나타나셨으면 믿음이 더 강해졌다고 해야하는데, 오히려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았음에도 제자들 마음에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드시나요? 믿음이 강한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리다니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의 믿음이 죽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경험 세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놀랍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변할 수 있는 인간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유사한 사례가 창세기에 나옵니다.
나이가 많이 든 야곱이 경험한 이야긴데요. 그에게 꿈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애굽에 양식을 사러 갔다온 아들들이 해 준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살아 있고,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창 45:26-28). 야곱이 이 말을 듣고 기뻐했을까요? 아니면 놀라기만 했을까요? 야곱은 이 말을 듣고 놀라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요셉은 죽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수 십년 전에 사나운 짐승들에게 찢겨서 죽은 불쌍한 아들이었습니다. 다른 아들들이 동일하게 증언했고, 요셉이 입고 있던 색동옷이 피로 물들어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때문에 야곱은 수 십년 동안, 죽은 요셉 때문에, 가슴에 피 멍이 들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요셉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말은 너무나도 기쁜 말이지만, 절대로 믿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려고 한 거짓말이었다면, 야곱을 두 번 죽이는 소식이 ‘요셉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왜 요셉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만 했는지 이해가 되시지요. 야곱에게 있는 요셉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그로 인해 생긴 잘못된 믿음 때문에 야곱은 놀라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그냥 놀라기만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가 듣는 것 사이의 괴리가 생길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옳다고 여기던 것이 그렇지 않다고 판명될 때 생기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못된 믿음은 버리고 새로운 믿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잘못된 지식은 올바른 지식으로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고, 그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곱의 기쁨이, 여러분의 기쁨이 두 배, 아니 수 백배가 될 수 있습니다. 확대한 기쁨이 여러분과 제게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홀연히 주의 사자가 옥중에 나타나 베드로를 깨워서 그를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교회가 기도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교회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이 기쁜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나왔는데요. 이 여자 아이의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문 밖에 있는 베드로를 위해 먼저 문을 열어야 하는데, 로데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문 여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교회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이 로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미쳤다” 라고 말했습니다.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자 아이가 더욱 힘써서 ‘진짜예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천사’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지만, 그 기도대로 될 것이라고 믿지 않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나는 일은 너무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기도하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셈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기도하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거라고 믿으시나요? 만약 믿겨지지 않는 분이 있다면, 주님의 치료하심이 필요하신 것입니다.
3
예수께서는 너무 기뻐하면서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구운 생선을 달라고 하셔서 드심으로 주님의 부활이 실제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쁨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도 우리가 의심하고 있을 때, 주님이 동일하게 확신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주님과 관련된 내용은 다 이루어졌다고 하시면서 하신 일인데요. 바로 45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제가 간절히 사모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주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 안에 의심이 사라집니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 안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명확해 지면서, 우리의 죽은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경험해서 압니다. 제 안에 근심과 걱정과 의심이 몰려 왔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십중팔구 제가 성경을 읽지 않았거나,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만하다면, 그것 또한 제가 성경을 읽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매에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5-7)’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얼마나 용기를 주셨는지 알 수 있는데요. 이 모든 축복의 비결이 그 다음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랍고 기쁜 이야기들을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의 이야기, 우리를 위로하시는 이야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들이 말입니다. 우리를 꿈꾸게 하는 이야기들이, 성경에 가득합니다.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들이 들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성경을 통해 듣는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기쁜 것들입니다. 방탄소년단이 주는 위로보다, 훨씬 더 큰 위로가 하늘로부터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는 주와 연합되었고 그와 한 영입니다. 우리는 의롭고 거룩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였다면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0)”
하나님이 원수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죽게 하셨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도 원수된 자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내어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측량할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 뿐 만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기쁜 이야기여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이 된다는 것은 너무 기쁜 이야기지만, 쉽게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주님의 임재가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믿음없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수정해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죽은 믿음에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이 진짜일까 라는 의심을 진짜라는 믿음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생겼던 수 많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예수께서 바꿔 주셨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잘못된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잘못된 정보는 삭제해야 합니다. 가짜 뉴스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쓸모없는 믿음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진짜일까?라는 물음표에서 진짜다! 라는 느낌표로 바뀌는 것이 은혜 입니다. 가짜 믿음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죽었다면 주님이 우리의 믿음에 생명을 불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말씀대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사실로, 우리의 믿음이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이 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5
오늘 설교는 시편 126편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꿈 꾸는 것 같다’ 라고 말입니다. 너무 좋다. 너무 기쁘다는 말이지요. 믿겨지지 않는 일이 생긴 것이지요. 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을 받는 것은 꿈 꾸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꿈 꾸는 것 같습니다. 힘든 세상 속에서 평안을 누린다는 것은 꿈 꾸는 것 같습니다. 믿겨지지 않는 일 같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축복 받은 주의 자녀의 입과 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2절.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예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아멘!
3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아멘! 입니다. 우리의 고백이 이것이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가 기쁘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남방 시내들은 이스라엘 남쪽 지역에 ‘네게브’라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 있는 시내들은 비가 오면 큰 강을 이룬다고 합니다. 아직도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 안에만 가두지 말고,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말씀이 여러분과 삶에 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도 믿겨지지 않을 만큼 큰 축복이 우리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있었다 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