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3:42,43
1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더 듣고 싶다고 모여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사람들은 바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그 때 바울이 사람들을 권면하면서 했던 내용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해 주었던 말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세요’는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일고 묵상하면서,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새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권면이 아닐까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권면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아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권면입니다. ‘아들아 (딸아), 어디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입니다.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도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의 은혜를 알아가고, 주님의 은혜를 따라 이 땅을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2
교회에서 “은혜”라는 말은 매우 익숙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은혜 받으셨나요?’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덕담 삼아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은혜 받았다는 말을 쓸 때는 설교 내용에 공감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정도로 사용합니다. 또는 감동적이었다. 느낌이 있었다 이런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은혜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됩니다. ‘은혜 갚은 사람들’ 이야기도 있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만큼 중요한 단어가 ‘은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의외로 알지 못하는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그들의 행동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변화되고, 성장하고, 강해지고, 대범해지고, 온유해 지고, 거룩해지고, 순종적이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은혜를 받고 변화되셨나요? 성장하셨나요? 강해지셨나요? 용기를 내셨나요? 온유해 지셨나요? 거룩해지셨나요? 순종하는 사람이 되셨나요? 베푸는 사람이 되셨나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면,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변화되고 성장하고, 강해지고 용기가 나고, 온유해지고, 거룩해지며, 순종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직업은 세리장입니다. 지금으로 봐도 세금을 다루는 일이니 괜찮은 직업입니다. 실제로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명품 옷과 좋은 음식, 어쩌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동족의 피를 빨어먹고 사는 매국노라는 명칭이 붙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의 삶에 폭풍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의 집을 방문하시면서 그랬습니다.
어느날 삭개오는 그가 사는 동네에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도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바가 있어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수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주옥같은 메세지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선뜻 예수님을 보러 나갈 수가 없었던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이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서나마 예수님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삭개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그를 예수님이 주목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고 만나길 싫어하는 사람인 자신에게 지금 예수께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도시에 있는 수 백, 또는 수 천개의 집 중에서 하필 다른 사람들에게 욕 먹는 자신의 집에 예수께서 방문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삭개오는 무척 기뻤했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은혜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 자신,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받는 자신을 찾아와 주신 예수님에게 삭개오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삭개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이렇게 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예전의 삭개오는 다른 사람들이 욕해도 그는 열심히 재산을 모았을 것입니다. 매국노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죽기 살기로 돈을 모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예수님이 직접 찾아와 주시고, 그와 함께 식사를 해 주신 것을 경험하고는 그의 마음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바뀌신 적이 있으신가요? 은혜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삭개오는 나중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다시 옛날처럼 살았을까요? 아니면 예수님께 고백했던 것처럼 살았을까요? 분명한 것은 삭개오는 그가 말한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그 은혜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라는 말은, 주님의 은혜를 알기 원하며, 경험하기 원하면,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임재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라는 권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3.
또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난 군중들이 한 여인이 잡아 왔습니다.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힌 여인입니다. 사람들이 여인을 욕하고 저주합니다. 이렇게 불결한 여자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냅니다. 인간 쓰레기고 사회를 더럽히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여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자신을 향해 돌을 집어들고 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여인은 공포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고 싶어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여인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자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땅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요 8:6). 흥분해 있던 사람들은 예수의 이런 행동을 호기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쓰는 걸까요? 죽음의 공포 떨고 있는 사람과 자신의 의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은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뭔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하냐에 따라 여자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재판관이 되신 예수는 몸을 굽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몸을 다시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소동하던 사람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죄 없다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던 여인이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에게 날아왔어야 했을 돌맹이들이 광장 가득히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여자와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으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 8:10,11)’
여자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여자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가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그녀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바 되었습니다. 죽어 마땅했던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하심을 경험했던 여자는 주님의 은혜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여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하나님께 평생 감사하며, 다시는 같은 죄를 범하지 않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은혜는 몸을 낮추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정죄하실 수 있으나 죄 없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경험한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전의 삶은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다도록//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나로 그 십자가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갚을 길 없는 은혜//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사도바울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찬양에 들어 있는 메세지도 우리의 삶 전체를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지금의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지으시고, 이 땅에 보내시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보내시는 하나님.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세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세요. 성령 충만하세요.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사실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도 생기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도 참 많이 생깁니다. 사고도 있고, 아프기도 하고, 직장을 잃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순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우리 안에 생기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앞으로 살아갈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다 “ 이런 찬양이 있으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가벼울 것입니다.
40대의 제가 20대의 제게 뭐라고 이야기 할까요? 60대의 제가 40대의 저에게 뭐라고 조언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이야기 하시겠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간들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라고 권면해 줄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시간이니 그 시간도 감사하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가 마르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또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 시키고,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용기를 줍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해도, 방금 손님과 한바탕 싸움을 했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미리 유산을 받아서 타국에 가서 그 돈을 다 탕진해 버린 아들이 있습니다. 거지된 둘째 아들이 돼지 죽엄 열매를 먹다가 아버지의 집 생각이 나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두 팔 벌려 안아주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여준 자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 일이 있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벌려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의 크기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아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좋은 옷을 입히고 큰 잔치를 벌여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런 잔치를 많이 벌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둘째 아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며칠 후,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다시 머나먼 나라로 떠날까요? 아니면 아버지의 종처럼 살까요? 아버지의 은혜를 깊이 있게 깨달은 아들이라면, 성실하게 열심히 예전과는 전혀 다른 아들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5.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사람들이 또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법입니다. 은혜를 경험하며 살았으면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를 가치 있다고 부르십니다. 주님을 배반했고, 주님을 오해했고, 주님을 원망했고,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우리를 향해 주님이 그렇게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커서 마를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성장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도 주님 닮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또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은혜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더욱 깨달아 알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