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만 보고 자란 사람과 나쁜 것만 보고 자란 사람의 인생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듣느냐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싶어하시나요? 또 무엇을 듣고 싶어하십니까? 라고 다시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고 계신가요? 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가끔이라도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현재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6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라는 물음입니다.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도안 하셨던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쳐 주시고 계셨습니다. 복음에 대해, 천국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의도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기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 머리 속에는 온통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만이 가득차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듣고 싶은대로 해석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랬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고 싶은대로,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하는지, 주님의 생각대로 하는지 말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은 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지금 그들의 현실이 어둡고 힘들기 때문에, 언제쯤이면 밝은 세상이 올지, 그 때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제자들과 같은 질문이 주님에게 있습니다. 우리 힘든 인생길이 끝나고 언제 쯤 평안한 길이 열릴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차가운 겨울이 끝나고 언제쯤이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우리 인생의 깜깜한 어둠 같은 시간이 끝나고 밝고 찬란한 시간이 언제쯤이나 올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알게 되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잘 극복해 낼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추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날이 온다면, 그 날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은 부정적인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회복의 시기를 말씀해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기에 대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제자들이 실망했을 대답입니다. 그 날을 알려만 주시면 좋겠는데, 그 때를 알려만 주시면 좋겠는데, 그 날에 대해 주님이 침묵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왜 미래의 때를 알고 싶어했을까요? 우리는 제자들과 미래의 때를 알고 싶어할까요?
먼저는 미래의 때를 알게 되면 우리가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싶은 미래의 때는 희망찬 미래의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너무나도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싶은 미래의 때는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그런 미래의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가 올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갈 힘이 좀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동안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우리가 미래의 때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 동안 그 시간을 위해 견디고 버텨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알려주신 미래는 매우 끔찍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에게 주신 심판의 메세지가 사람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홍수가 일어났지만, 그것을 준비하고 대비한 사람은 노아의 가족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아처럼 홍수를 대비하고 배를 만들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세지를 들어지만,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미래에 대한 메세지를 들었지만, 자신들이 알아서 듣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 있는 그 미래의 어느 때와 시기는 알아도 우리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와 시기를 알아도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항상 깨어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미래의 때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대답하십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 라고 말입니다. 또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살라는 메세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가 가장 좋다라고 우리가 고백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아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소식입니다.
미래의 때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질 일들 때문인데요. 본문은 두 가지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삶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령의 권능을 받게 되는 일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성령의 권능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를 이길 힘을 주십니다.
우리의 현재가 어떠하든지, 우리의 미래가 어떠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떤 어렵고, 힘들고, 차가운 현실도 성령의 권능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일은 밝은 미래의 시기보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미래의 시기를 아는 것이 우리 삶에 일시적인 처방전을 주는 것이라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증인이 됩니다.
증인이라고 하는 것은 보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꾸며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만약 내가 보지도 못한 것, 내가 듣지도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은 들은 척 하는 것이고, 본 척 하는 것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본 척하면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들은 척 하면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증인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증거를 주시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고 듣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우리가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잘 담겨 있는 찬양 곡이라고 믿습니다. 함께 불러불까요!
"성령이여 임하소서. 메 마른 나의 심령 위에
주님의 은혜의 단비 내려 날 흠뻑 적셔 주옵소서.
주의권세 주의 능력 지금 이 시간 임하셔서.
악한 권세 모두 깨뜨리고 주님 나라 임하소서.
영광 할렐루야.
예수의 그 피가 내게 승리주네. 구원이 되시네.
영광 할렐루야.
예수의 이름이 능력되네. 소망이 되시네."
성령은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주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요? 먼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려지는 그곳 성전에도,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이 곳, 교회에도 주님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루살렘을 우리의 가정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주님의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장소입니다.
그 다음은 온 유대입니다. 유대는 우리의 일터, 우리가 속해 있는 그 어떤 곳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곳에도 주님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장소가 사마리아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같이 여기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마리아는 나랑 덜 친한 사람들이 사는 곳, 아니면 내가 만나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곳에도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땅 끝. 그곳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어쩌면 짐승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일 수도 있고, 미지의 세상에도 주님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런 곳까지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 모르겠습니다.
‘나는 예루살렘, 유대까지는 갈 수 있지만,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기는 힘들 것 같다’라고 고백하실 분이 있을 겁니다. 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기는 힘이 듭니다. 아니 예루살렘과 온 유대로 가는 것초자 힘이 든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정직한 우리의 대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예루살렘도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필요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해 집니다. 그것을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령의 권능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인생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의 우선 수위가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보고 싶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게 되면 우리 삶에 가장 큰 변화는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1장 8절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미래의 때와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심으로 얻게 되는 권능입니다. 악하고 어두운 세상을 충분히 이기게 하시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진실만을 말하는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우리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말씀이 1장 8절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그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루어 주님의 증인이 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법칙에 끌러다니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이 임하시는 교회. 성령의 권능을 받는 교회. 주님이 증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임하는 우리, 성령의 권능을 받아 이 땅의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이기며 살아가는 우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 성령이여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