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본문을 여러분과 살펴보았는데요. 오늘도 동일한 제목을 가지고, 오늘 본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실 때 있었던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많은 이적을 행하셨는데요. 특히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재앙입니다. 애굽에서 난 모든 생명체의 처음 난 것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보여주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 길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준 방법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마련할 짐승은 흠이 없는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라.. 그리고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야 한다.. (출 12:5-8, 새번역).’
그리고 문설주에 양의 피가 있으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산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묻은 집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바 된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착하게 살았든 악하게 살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학식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집에 머물면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었던 특급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린 양의 피 아래 피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날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 아래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던 날인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갈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거절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거절하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해서 그들이 한 말들을 반박하며 비방하는 유대인들에게 한 말입니다. ..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먼저 전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 판정하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로 갑니다..(행 13:46, 새번역)’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다는 의미가 영원한 생명을 거절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 아래 있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라는 찬양이 있는데요. 그 찬양의 가사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라는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렸네
저 어둠의 권세는 이미 없네
주 보혈의 능력으로 원수가 날 정죄할 때도
난 의롭게 설수 있네. 난 더이상 정죄함 없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그 피로 내 죄 사했네. 하나님의 그 긍휼 날 거룩해 하시었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난 원수의 어떠한 공격에도 더 이상 넘어지지 않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의미는 첫번째 유월절 어린 양의 피의 의미를 기억하며 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2.
또한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것은 ‘누룩을 제거하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려면, 우리 삶에 있는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고 맛있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누룩을 제거한 빵은 맛이 없습니다. 무교병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를 의미합니다. 조금만 있어도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누룩이고, 죄의 속성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명하셨던 일이 무교절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어야 한다. 그 첫날에 너희는 집에서 누룩을 말끔히 치워라. 첫날부터 이렛날까지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 (출 12:15, 새번역)’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있기 위해서 해야 일도 영적으로 보면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있으려면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일동안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는 평생을 의미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려면, 우리 삶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죄가 야기하는 타락의 심각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백성들로 생명을 얻어 거룩한 백성으로 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의중이 있으셨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배로 초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려면, 우리 삶 중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의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삭개오가 다시 동족들을 착취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왔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하고, 다시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다시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을 말입니다. 간음하다 잡혀 죽을 뻔 했던 사람이 다시 간음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모두 삶의 누룩을 제거하지 않으면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가 타락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누룩을 제거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월절의 은혜 이후에, 무교절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은, 이 후로 아무렇게나 살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일동안 무교병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주시는 메세지를 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교절에 유교병을 먹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나나 자든지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진다 (출 12:19)’
고린도전서 5장 7-8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룩없는 새 반죽 덩어리가 되기 위해서 죄악의 묵은 누룩을 버리십시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으므로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악의와 죄악의 묵은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의 누룩 없는 빵으로 유월절을 지킵시다”
교회가 왜 타락하나요? 하나님의 은혜를 가운데 있는 곳이 교회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있는 묵은 누룩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악은 누룩처럼 쉽게 번져 나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만듭니다.
따라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는 ‘묵은 누룩’을 평생 제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세번째,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용서하심을 경험하며 살라는 권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임금에게 엄청난 빚을 지었습니다. 100억 정도나 되는 엄청난 빚이었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니, 왕에게 가서 살면서 조금씩 빚을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왕은 이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돈의 일부만 탕감해 줘도 감사한 일인데, 전부라니요. 얼마나 왕의 은혜가 큰지 모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왕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야 되겠지요? 그래야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이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요. 그렇게 좋은 소식이 아니였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에게 만원을 빚진 사람이 있었는데, 빚을 갚지 않는다고 욕하고 어떨때는 구타도 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왕이 이 사람을 불러서 뭐라고 말했을까요. 그 사람에게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겠지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에서 왕에게 빚을 탕감 받은 사람같습니다. 왕의 은혜를 누린 것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왕의 은혜를 이용만 한 것 뿐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라는 분이 쓰신 책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2004년 11월, 마흔 네살의 뉴요커 빅토리아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지나가던 한 소년이 장난 삼아 그녀의 차에 칠면조를 던졌다고 합니다. 9킬로그램짜리 냉동 칠면조 였다고 하는데, 갑자기 운전석에 날아들면서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그녀의 얼굴은 사고로 수 많은 상처가 났습니다.
칠면조를 던져던 청년은 재판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사고 난 후, 9개월이 지난 후에 티타늄으로 덧댄 얼굴을 한 빅토리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 내려진 판결은 겨우 징역 6월, 보호관찰 5년, 상담치료와 사회 봉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게 무슨 판결이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판결은 빅토리아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사와 방청객이 보는 앞에서 그녀는 그를 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흐느끼는 소년에게 말했다. “널 용서할께. 앞으로 잘 살아야 해” 그녀는 은혜를 믿고 결정을 내렸다. “하나님은 나를 살려 주셨다. 나도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녀가 소년을 용서한 이유를 밝혔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 많은 상처들은 보면서 우리는 복수를 꿈꿉니다. 그래야 마음이 좀 시원해지니까 말입니다. 이게 우리의 심성입니다. 그래서 빅토리아 처럼 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인가요?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작은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겠지요.
4.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우리 삶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자 수 천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설교하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바울이 설교를 잘해서 그럴까요? 그의 설교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기심으로 가득찼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구원 받을 사람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해석하는 분도 있지만, 이 말씀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믿음이 좋아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믿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음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는데 사람이 할 일이 있을까요? 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교회 옆 작은 밭에서 참외와 토마토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식물들이 잘 자라게 해 주셔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할 일이 없나요? 아닙니다. 사람이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누군가 아침마다 물을 주고, 벌레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니 물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식물은 말라 죽습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니 거름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식물은 시들시들 병들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지만,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꾸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그리고 우리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은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을 항상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깊이, 풍성하게 경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려면 우리 삶의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도 아니고, 우리의 큰 믿음도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또한 여러분과 제가 깨닫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