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복 됩니다. 아멘!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사야 1:19). 주님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삼상 15: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면 떠 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주님께 바치려고 했던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종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그에게 큰 복을 주시는 장면을 봅니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따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할 때, 그것을 가로 막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어려운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선입관, 고정 관념, 그리고 편견이라는 것들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이들 단어들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선입관 (Preconception) –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하여 실제 체험에 앞서 갖는 주관적 가치 판단.
고정관념 (Stereotype) – 한 문화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널리 퍼져 있는 지식이나 믿음.
편견(Prejudice) -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하여 그것에 적합하지 않는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나 견해 입니다.
선입관과 고정 관념이 합리화되고 고착이 되면 ‘사회적 편견’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편견들은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우리의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선입관, 고정관념, 편견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편견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있는 편견과 선입관과 고정 관념들이 있다면 깨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사울이 가지고 있던 편견.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사울이 가지고 있었던 선입관, 고정 관념이 있었고,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위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잘못된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붙잡아 가두는 것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사회를 보호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관과 고정 관념과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선입관과 고정 관념, 그리고 편견이 한 순간에 무너졌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던 모든 것들, 그가 추구했던 모든 것들, 그가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 무너져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일이 그의 가치이고 목적이었는데, 그의 편견이 무너지자 같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그가 쏟아 부었던 모든 열정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버렸던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일이 있나요? 여러분이 믿고 따르던 모든 가치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 사건 말입니다. 삶의 가치가 바뀌고, 삶의 방향이 바뀌어 버린 사건 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과 편견이 무너지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아요. 삶의 소망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절망스럽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 분명히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빛으로 시력을 잃은 사울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인내하게 하시며, 주님의 새로운 계획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3. 아나니아의 편견
사울에게만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 관념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나니아에게도 사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 관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멀리서나마 사울에 대한 온갖 소문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자신이 믿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입니다. 헛 소문이 아니라 진짜 소문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괴롭혀온 사람, 또한 자신에게도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나니아는 알고 있었습니다.사울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울을 만날 이유도, 그를 도울 이유도 찾지 못했습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사도행전 9:12-14)’
아나니아가 가진 사울에 대한 정보와 판단력은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 순간, 그것들은 아나니아의 편견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유독 자세히 사울이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 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 보다, 주님이 지금 하시고 계신 말씀을 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위험한 인물이고,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인물이라고 믿고 그대로 있거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7절에 보면, 그가 떠나 사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있는 편견이 무너지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정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아나니아와 같은 고정 관념과 선입견과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17년, 우리에게 있었으면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헛된 고정 관념과 선입견과 편견이 있다면, 그것들이 깨지는 경험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일을 또한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나니아를 설득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우리의 고정 관념과 편견을 올바르게 바꿔 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고정 관념은 우리의 삶 가운데 관계에도 깊은 영향을 줍니다.
백인은 어떠어떠하다, 흑인은 어떠 어떠하다 하는 고정 관념들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 편견을 생기게 할 수 있고, 이것이 차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으면 합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항상 그의 귀가 열려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종할 수 있었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계획을 볼 수 있었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경험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복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 선입견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기드온의 300용사 이야기 아시지요?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쟁에서 숫자가 많다는 것은 유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들 중에서 무서운 사람들은 집에 가라고 말합니다. 이만 이천명이 떠나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이 중에서 삼백명을 추스리십니다. 삼 백명으로 미디안 족속을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고정 관념, 나아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전쟁이지만, 이 싸움에서 기드온이 이겼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무너진 날입니다.
4. 우리의 편견도 깨져야 한다
교회에도 많은 편견들이 있고, 잘못 말씀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요 모임 시간에 나누었던 내용이 있습니다. 아프면 병원가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이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론 부터 말씀드리면, 아프시면 병원에 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약사와 의사를 훈련시키시는 이유입니다. 그들을 사용해서 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프면 병원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간단한 병도 기도만 하다가 병을 더 키워서 큰 낭패를 보신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약사도 낫게 할 수 없는 병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했지만, 고칠 수 없는 병들이 많아요.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기도했지만 아무런 차도도 없이 돌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기도함으로 병이 치료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것’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기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입니다.
제게 이번에 2주 정도 아팠습니다. 약을 먹어도 잘 낫지 않아요. 나은 것 같은데 다시 아프고, 기침이 계속나서 밤에 잠자기도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때 아프던 기억이 있어요. 무엇을 먹어도 토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약을 먹어도 토해서, 며칠을 고생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증조 할머님이 집에 오셨어요. 그리고는 약을 하나 주시면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어요. 그 약을 먹고 토하지 않았고, 결국 나았어요.
약을 먹어도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기억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 밤, 약을 먹고 제 목을 잡고 기도했어요. 그제서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약을 드시고, 의사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드세요. 사람이 할 부분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주님의 빛을 보고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의 눈에 어떤 비늘같이 것이 덮고 있었습니다. 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아나니아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이 환상을 통해 사울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메세지를 아나니아에게 해 주십니다. 기도 이외는 그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정보와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경험이 때로는 편견이 되고, 선입견이 되고, 고정 관념이 되어 버려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편견은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근거에 기초하고, 한정된 경험과 감정적인 태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편견을 깨는 방법은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새로운 경험입니다. 예수를 핍박하는 사울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 기회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 그에게 생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셨던 두 가지 사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내리시는 벌이 아닙니다. 특히 사도들에게 고난은 사명입니다. 예수를 믿고, 전파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사도를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사도들이 노력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다가, 예수를 전하다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평안하고, 부자가 되고, 건강해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을 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를 위해 받는 고난, 정의를 위해 받는 고난, 평화를 위해 당하는 고난은 영광스럽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감옥에 갇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0-12).
2017년 많은 계획이 있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에 감동하심을 주시면, 그 말씀을 따라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복되다는 간증이 우리 안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