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중풍병자의 걸린 ‘애니아’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은 ‘칭찬 받는 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부모님이 그의 인생을 축복하면서 지어준 이름일 겁니다. 너는 ‘칭찬 받는 자’로 살아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인생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되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8년간의 병치레라는그를 ‘칭찬받는 자’가 아닌 ‘원망스러운 자’로 바꿔 버렸을 것입니다. 8년 이라는 세월의 무게. 무기력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애니아. 그리고 그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는 가족들. 애니아는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많이 흘렸을 겁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과 싸워야 했을 시간들은 참으로 치열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능력입니다. 애니아에게는 병을 이겨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닌 것이, 중풍병에 걸린 그에게는 대단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런 힘은 노력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애니아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봅니다. 또한 애니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삶에 주님의 자비가 있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베드로의 말은 선포이기도 하지만, 애니아를 향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포한다고 모든 사람에게 힘이 생겼다면, 우리도 그 처럼 선포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풍병자인 애니아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나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봐야 합니다. ‘애니아여!’ ‘칭찬받는 자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이 말이 중풍병자인 애니아가 들었던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힘이 있습니다. 무기력한 그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면 이런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했던 말을 다시 들어보세요. ‘애니아야’ ‘칭찬 받는자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이 말은 칭찬 받는 자여! 이제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았으니, 일어나 너의 삶을 정리하라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로 칭찬 받는 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애니아라는 이름 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애니아는 자신의 자리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쓰레기가 있어도, 냄새가 나도, 그냥 그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파리가 날아다녀도, 바퀴벌레가 지나가도 아무 것도 못하면서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에게 주님이 주신 힘이 생겼고, 자신의 몸을 이기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있었던 곳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의 자리도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많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애니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능력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어나 걸어다닐 수 있는 능력만 있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가기 싫은 곳에는 안 가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또한 내 힘으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이 마저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는 능력도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매일 매일 뛰는 심장도, 주님이 주신 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신 것만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A.W. 토저 라는 분의 ‘임재 체험’이라는 책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국 귀족이 89세로 별세했다는 신문 기사 내용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영국의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에 아무런 어려움 갈 수 있는 더 많은 능력의 소유자 입니다. 그의 삶은 멋지고, 화려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 기사의 내용에는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 반점 있는 쥐를 키우며 살았다 라고 말입니다. 단순히 취미 삼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 동안 한 일이반점 있는 쥐를 키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토저는 이 사람의 기사를 읽으면서 우울해졌다고 합니다. 저런 능력과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 정도의 일을 하다가 삶을 마감한 것이 안타까웠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삶인데도, 그는 무기력하게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토저는 그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을 사용해 보지도 않고, 그냥 썩혀 버린 것 같아서 안타까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삶도 영국 귀족의 삶과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주일 예배 시간, 우리에게도 이 복음이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무한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힘을 주시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악으로 빨리 달려가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선하게 또한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과 저도, 애니아의 이름처럼 칭찬 받는 자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살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능력을 주시는 것은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가 ‘도르가’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도르가’는 세상적으로 보면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이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느질 하는 능력입니다. 나이가 들어 일어날 힘도 없었는지 모르지만, 도르가는 자신의 능력을 과부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도르가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 이것은 한 번하고 그만 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동안 계속해서 해 온 일이라는 것입니다.
도르가가 했던 일은 어찌보면 주목받지 못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한 일이 얼마나 컸는지, 그가 죽자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참으로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베드로를 불러옵니다.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참으로 곤란스러운 부탁이었을 것 같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르가를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의 능력 없음을 탁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도르가가 과부들을 위해 만들어준 옷가지들은 그냥 옷이 아닙니다. 도르가의 사랑과 격려가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고 하시는 겁니다. 도르가처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 이렇게 우리 인생을 요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값진 인생입니다.
어떤 사장님이 출장을 가면서 직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어떤 직원에게는 1억원을, 어떤 직원에는 5천만원을, 어떤 직원에는 천 만원을 줬습니다. 1억을 받은 직원은 사업을 해서 1억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5천만원 받은 직원도 장사를 해서 5천만원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천만원을 받은 직원은 도둑 맞을까봐 집에 숨겨놨습니다. 사장이 여행에서 돌아와서 직원들을 불렀습니다. 1억 받은 직원은 2억원을 내 놓습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참 잘했습니다” 5천만원 직원도 1억원을 내 놓았습니다. 주인이 ‘참 잘했다’고 칭찬해 줍니다. 하지만 도둑 맞을까봐 1천만원을 집에 숨겨둔 직원은 1천만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그 직원을 꾸짖습니다. 은행에 넣어둬서 이자라도 받지 그랬냐고 말합니다.
주님의 달란트 비유를 현대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각자에 맞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힘으로, 우리가 할 일은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들릴 것이고; 주님의 사랑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덤으로 사람들의 칭찬도 받게 될 것입니다.
요양원에 아이들과 간 적이 있습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보면서 언제가 나의 모습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들과 빙고 게임을 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습니다. 제가 한 일은 그곳에서 한 시간, 그 분들과 함께 있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는, 그 일이 그 분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에게는 힘이 되신 것입니다. 저도 그곳에서는 아기입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은 80-90세가 훨씬 넘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함이고 겸손함입니다.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 태도가 그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그 모든 일을 했습니다. 도르가를 살릴 때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더욱 인상 깊습니다.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더욱 구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무릎 꿇고 기도하다’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은 주님의 능력은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믿음이 커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도르가가 믿음이 커서 그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아닙니다. 도르가도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 일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부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사랑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입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멤피스 땅에, 이 미국 땅에, 그리고 우리의 조국의 땅에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중풍병자는 8년이 넘게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삶 속에 느닥없이 닥친 불행 앞에, 그가 얼마나 주님께 부르짖었을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할 때마다, 베드로는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힘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능력의 근원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중풍 병자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죽었던 도르가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기적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네 자리를 정돈하라!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무기력하고, 고통 스럽고,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주님의 은혜로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리기는 우리 예배 중에 임하시는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도 능력을 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힘으로,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우리 삶의 자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리도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게 치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