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9장은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를 믿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울이 또한 얼마나 열심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의 평생의 간증이지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합니다.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으며, 그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기록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9장은 주님을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주님이 그 사람들에 대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사도 바울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삶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2.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주님이 사울을 부르실 때 그를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1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주님은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일어날 일들을 또한 말씀해 주십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사울의 삶을 고난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계획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하신 것이라면 어떤 기분이 드릴 것 같으세요? 주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가도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게 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좋다는 것도 말입니다.
예수님의 계획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예수님은 혁명으로 세상의 지도자가 되시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요셉에게도 있었습니다 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일어났던 일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것입니다. 노예로 살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몇 십년 만에 만난 형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요셉은 자신이 고난을 받았던 삶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지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많은 분들이 암송하는 성경 구절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선을 이룬다는 말은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우리가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편안하게 산다는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써 우리가 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로 모든 족속으로 하나님을 믿게 하시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통해 여러분과 봐야 할 것은 사울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일 것입니다. 사울이 노력했던 부분이 있었지만, 그를 만나주시고, 그를 훈련시키고, 그를 인도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우리가 또한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3.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
오늘 본문에 나온 사울의 삶을 잠시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러 가던 다메섹에서 사울은 빛 되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에게 생긴 일은 눈이 멀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의 충격으로 사울은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날 일어난 일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느닷없이 생긴 일에 당황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주님은 사울을 위해 준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겠습니다. 아나니아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사울의 제자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사울의 삶 속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에게 죽음이 엄습했지만, 사울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주님은 사울을 사람들을 통해 위로해 주셨습니다. 사울에게 필요했던 것이 위로 였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일 때가 있습니다. 사울에게는 위로자인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를 맞아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사울을 의심했습니다. 사울이 예수를 믿는 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사울이 제자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행 9:27)”
사울을 믿어준 사람, 바나바가 사울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는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사울은 제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더욱 힘있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했습니다.
사울이 복음을 전한 곳은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처럼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고, 사람들은 이 일로 사울을 죽이고자 힘썼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을 그를 사울의 고향인 다소로 보냅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이 무엇인가요? 고난 중에 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인생의 폭풍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고,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도울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지난 시간동안 경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로해 주셨습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이웃 중국 교회 목사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점심 먹자며 약속을 잡자고 하셨습니다. 수 년 동안 뵈었지만 개인적으로 밥 먹자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점심을 먹을 이유가 없지요. 약속을 잡고 점심을 먹으면서, 중국 목사님은 자신이 젊을 때 어떠했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고,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일에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뭐라고 말씀드린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를 점심 시간내내 들려주셨습니다. 그 말씀들이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4. 주를 믿는 자들에게 위로가 된 사울
사울의 삶을 어떠한가요? 그리고 그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31절에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31절은 ‘그리하여’ 로 시작됩니다. 사울이 예수를 전하다가 도망갔다. 그리하여 교회는 어떻게 되었지 이런 내용이 적혀져 있습니다. 교회가 망했을까요? 아니면 흥했을까요?
31절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람들이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 밖입니다. 도망가는 사울을 보면서, 교회가 더 흥했다고 되어 있기때문입니다. 교회가 안정을 되찾고 교인 수는 늘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에 대한 힌트가 두 가지 나와 있습니다.
첫번째 힌트는 ‘주를 경외함’이 입니다. 사람들이 사울의 바뀐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주님은 두려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본 것은 ‘저런 인간도 180도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다’ 라는 것을 본 것입니다. 예수 믿는사람을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를 힘껏 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울의 설교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삶을 본 다른 사람들은 ‘주를 경외함’이라는 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주를 경외함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울이 도망가는 장면을 보고, 교회가 더욱 흥했던 이유에 대한 두 번째 힌트는 성령의 위로하심입니다. 사람들이 사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위로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링크해 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고 있는 한 여자 분을 위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여드릴 텐데요. 사람들의 위로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위로하심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세상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온갖 위협과 위험이 있어도,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고치실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면서 위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고,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위로자 입니다. 그가 있었기에 사울이 주님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은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길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손길을 주시고, 죽을 고비마다 살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요셉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가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할 것은 주님의 위로하심입니다. 주님의 격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실 선은 또한 우리가 거룩해져서,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을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의 모습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우리의 모습에서도, 소원하기는, 주님의 모습이 보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31절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