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자랑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도 자랑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자랑입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혼자만 풀 수 있어도 자랑이 됩니다. 우리의 옷도 자랑하고, 우리가 가진 가방도 자랑합니다. 컴퓨터도 자랑하고, 스마트폰도 자랑합니다. 차도 자랑하고 집도 자랑합니다. 자녀도 자랑하고, 남편도 자랑하고, 아내도 자랑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나아가 우리의 학벌도 자랑하고 싶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좋은 곳에 여행갔다 온 것도 자랑하고, 자신의 인기도 자랑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이 땅을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랑을 통해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도 나름 훌륭한 사람이다.”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랑 받기에 충분한 가치를 갖춘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만큼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껏 자랑하며 살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자랑할 것이 넘쳤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2. 왜 자랑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을까요?
오늘 성경 본문 말씀만을 봐도, 우리 마음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자랑하라’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자랑할지, 또한 무엇을 자랑하지 말아야 될지도 매우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자랑하지 말라고 하신 것들을 보면, 우리의 지혜와 용맹과 부요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있으면, 우리가 정말로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들입니다. 학자는 지혜가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용사는 용맹을 자랑해야 합니다. 부자는 자신의 부요함을 과시하고 자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런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정말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인 듯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정말 힘든 일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입은 근질 거리는데 그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보면,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과, 사랑은 또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랑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잘되고 복을 받는 것을 같이 기뻐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자랑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일까요? 사랑과 자랑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런 질문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함께 묵상해 보길 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 받을만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랑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사랑받을 존재이고, 존경 받을 수 있는 존재이며, 나아가 영광 받을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 받고 싶은데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과 성경의 가르침이 충돌하고 있는 현장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본성을 거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님은 왜 우리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어하는데도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 라고 사랑에 대한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이 바울을 통해 알려주신 이 가르침의 배경에는 고린도교회 안에 차고 넘쳤던 성령의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고린도교회에는 성령의 선물이 넘쳤습니다. “방언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믿음의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신도들 사이에서 나타났습니다. 모두 신령한 능력들이고, 신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성령의 일하심을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것들입니다. 이런 은사가 나타난 고린도교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은 서로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더욱 평안하고, 더욱 기쁨에 차고, 더욱 서로를 사랑했을까요?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영적인 선물을 많이 받은 이 교회는 전쟁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로 편을 나누고, 서로 잘난 척하느라 바빴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교회 안이 전쟁터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것은 자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방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신도들이 받게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들의 자랑 뒤에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 안에 생기는 시기심입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교회도 조금 다니고, 기도도 덜하고, 헌금도 안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방언의 은사는 나보다 먼저 받지?” 이런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생겼습니다. 한 사람의 자랑이 여러 사람의 시기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던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이라는 녀석입니다. “난 방언의 은사가 있는데, 너는 아직도 없어?” 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누가 더 큰 지, 누가 진짜인지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자랑하다가, 선을 넘어 버린 것입니다. 영적인 것들을 자랑하다가 타락의 길로 들어서 버린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다른 사람의 시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자랑은 자신을 교만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구소에서 일할 때 이런 현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는 게 많은데 너는 그것도 모르니?” 라면서 자기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현상 말입니다. 유치한 것 같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 더 아는 것을 자랑하면서 자신보다 조금 모르는 누군가를 깔 봅니다. 모두 사랑 결핍에 빠진 사람마냥 말입니다.
뉴스의 사회면에서도 흔히 보는 현상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요함을 자랑하면서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이야기가 사회 문제시 되고 있습니다. 돈을 많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느라 내면에는 사랑이 결핍된 환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유를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자랑을 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이지만, 자랑을 해서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자랑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가져오게 하고, 나아가 시기심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자랑하다가 교만하게 되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음을 주님이 경고하신 것입니다. 공동체에 치면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자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의 글에서도 사랑과 자랑하는 것과의 상관 관계를 소개해 놓은 내용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내 보이는 자랑질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결핍감을 선사하고, 결핍감은 즉각 그들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시기심을 촉발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랑, 박탈감, 시기심, 분노, 공격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얼마나 빈틈없이 작동하는지 일상에서 목격할 때마다 놀라웠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라는 주님의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깨닫고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주 안에서 자랑하라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랑을 잘못하면 사랑을 얻기는 커녕, 다른 사람들의 시기만 받게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처방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자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라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용기와 부요함이 우리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지혜를 주신 주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원리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주신 많은 선물이 자신이 잘나서, 사랑받기에 충반한 존재이기에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 그의 삶에 많은 자랑이 있었습니다. 좋은 가문과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학벌과 젊음이 있었습니다. 모두 그의 자랑입니다. 그렇지만, 사울은 주님을 만난 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은 자신의 죄를 위해 피 흘러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이 주님이 주신 것이고, 주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 자신의 자랑은 주님의 자랑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두번째 치료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이 가르침도 쉽지는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기에 우리가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보다 남을 높이는 것은 우리 본성과는 너무나도 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낫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주님이 먼저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우리 주님은 한 없이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탄생도 마굿간의 누추한 곳이었습니다. 왕이 태어나기에는 너무나도 누추한 곳입니다. 주님이 몸소 우리보다 낮아지실 용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높아지려는 용기보다는 낮아질 용기, 낮추어질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주님의 말씀이 도전이 되었을 때가 있다면 그가 고백했습니다.
‘해롤드는 뇌성마비였다. 그는 혼자 걷지도, 옷을 입지도, 밥을 먹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했다. 내게 그를 돌보는 일이 주어졌다. 몰론 내가 그 일을 반겼을 리가 없다. 나는 영성 훈련을 위해 세인트 루이스로 이사를 했다. 대학을 막 졸업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착각했다. 설교할 준비도되었고, 먼 곳으로 초청 강연을 다닐 준비도 되었고, 역사를 바꿀 준비도 되었다. 그러나 단 하나, 해롤드를 도울 준비는 되지 않았었다. ..’
이런 해롤드를 만나고, 또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는 말씀을 접했을 때, 목사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가 아니였습니다. 대신 목사님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해롤드가 나보다 낫다고? 나는 건강하고, 말도 잘하고.. 으흠! 대학원에도 다니는데.. 이런 내가 어떻게 저 해롤드를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목사님의 마음을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해롤드를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해롤드와 그 목사님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목사님이 헤롤드를 만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해롤드를 나의 좋은 교사로 만나게 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해롤드를 사용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사랑은 자랑하니 아니하는 것이며, 사랑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