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변신은 무죄” 라는 화장품 광고 문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변화는 죄가 아니다 이런 뜻이겠지요. 사람은 변합니다. 그렇지요?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사는 곳이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얼굴이 바뀌어 갑니다. 곱디 곱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인 주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떤 분들은 선하고 평안한 얼굴로 바뀌기도 하고, 반대로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면서 살았느냐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기분 좋은 놀람도 있지만, 당황스러운 변화도 있습니다.물론 사람들의 반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같은 변화에도 사람들이 다르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좋은 예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던 사울이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사울의 변화에 제자들은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반응했지요. 그러나 다메섹 유대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의 변화에도 사람들은 다양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즐거운 놀라움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리의 변화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할 듯 합니다.
많은 사람은 변하기를 원합니다. 외모가 아릅답게 변화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변화는 우리의 속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방향이었으면 합니다. 물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변화는 변질과 타락일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가지는 것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너희들이 나를 비웃지만, 앞으로 10년이 흐른 후에는 나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거야’라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변화는 좋은 변화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모님과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지우지 합니다.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맺으려 이 땅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만남은 우리가 선택한 것도 있지만,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만남도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만남은 선택 사항이 아니지요. 가족과의 만남은 필연입니다. 그렇지만 배우자와 친구의 만남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만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만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2. 사울의 인생을 바꾼 사건
오늘 본문의 사울의 인생을 바꾼 사건 이후의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었습니다. 열심히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은 주님을 만났다는 사실로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가 성경을 많이 읽었고, 신학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닙니다. 그의 변화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 만나려는 사람들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또한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사울의 삶의 우선 순위, 세상을 보는 가치관의 변화,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그가 주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고 핍박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남으로 그는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버렸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주님이 그를 향한 계획이 무엇인지 다 알아버렸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 삶에 있음을 다 알아 버렸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을 만난 후, 사울이 가진 능력, 사울이 경험한 세상은 예전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역동적인 삶, 새로운 삶이 그가 누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에 고난이 있어도, 핍박을 당해도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어도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덤에서도 세상을 움직이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요?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 사건이 그의 삶을 바뀌어 놓았습니다. 그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즐거운 변화. 그 변화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자신의 변화를 세례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증합니다. “내가 주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행위가 바로 세례입니다.
사울의 변화를 보면서, 여러분에게도 같은 소망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릅니다. 한 뜻 차이. 뭔가 달라도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변화는 기분 좋은 삶입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변화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을 흘려 보내는 삶입니다. 그런 변화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바로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울을 예로 살펴봤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만남을 가졌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신약에 나오는 몇 명의 사람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키가 작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눅 19:1-8). 그래서 뽕나무(돌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삭개오에게 주님이 오셔서 그를 만나 주십니다. 삭개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이 부르시자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면서 예수님과 그의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의 평생의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그렇게 아끼던 재물을 나눠주고, 정직하게 살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삭개오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또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삶이 변화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죄에서 구원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본성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주님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그 만남을 보고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5명이나 되었던 사람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한나절에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변화는 더 이상 사람들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인의 이런 변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 그 대화를 통해 여인은 기쁨을 누렸고, 평안을 누렸으며, 담대해 졌습니다. 자신의 과거나 현재의 일들이 더 이상 여인의 삶을 지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경험,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입니다.
구약에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예입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궁핍하게 산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부를 누리고, 자녀는 없었지만 아내와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75세에 새로운 변화의 삶을 시작합니다. 자기가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변화는 그가 스스로 결심해서 된 것이 아니고, 자기 계발이나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의 결정은 위험한 것일수도, 고생길의 시작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를 움직였고, 그의 삶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했습니다. 자손에 대한 꿈, 민족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은 그에게 비전을 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알게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만남을 통해 아브리함은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복을 누리게 되었고, 그의 자손을 통해 인류가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의 삶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은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모태 신앙을 가진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릴 적 모습은 철이 없어 보여요. 왜냐하면 그는 누군가를 속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 속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야곱이 이삭에서 축복 기도를 받을 때 나옵니다.
나이 들어 앞이 보이지 않는 이삭이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 사냥을 해서 맛있는 요리를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먼저 이삭에게 가서, 자신이 에서인 것 처럼 하면서 축복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상보다 사냥을 빨리 끝내고 돌아온 아들이 이상해서 이삭이 묻습니다. ‘니가 진짜 에서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했던 말입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창 27:20)’
야곱은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진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야곱의 인생에 변화가 시작된 때가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도망갈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에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3,14)’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며 살았던 야곱의 변화는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곳을 ‘벧엘’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전에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벧엘에서 드렸던 예배는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주님의 임재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야곱의 삶은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모세는 40세까지 애굽의 궁전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우며 지도자의 꿈을 키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교육과 배경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려다가, 애굽의 군인을 죽인 살인자라는 타이틀만 얻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을살아야 했습니다. 모세가 80세 되던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무를 태우지 않는 불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의 모세의 인생은 달려졌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그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온 위대한 지도자라는 영광도 주셨습니다. 모세의 삶에 있었던 변화의 시작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수 많은 설교를 들고, 많은 시간 성경 공부를 하고, 제자 훈련을 받아도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주님을 만나면 그들의 삶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예과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사울처럼, 야곱처럼, 아브라함처럼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곳에, 우리의 삶에 터전에 주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예수를 만났던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사울처럼, 우리 삶의 목적이 바뀌는 그런 사건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경험, 우리의 가치관이 변하는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를 만난 경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이렇게 주님을 만난 간증이 여러분과 제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은 간절히 찾는 자에게 오십니다. 주님은 인격적이십니다. 주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여! 우리와도 만나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에게도 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도 주님을 만난 감격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 주님이 주신 것이길 원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만난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야곱처럼 꿈에서 만나시고, 바울처럼 환상 중에서 만나야겠습니다. 기도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자연을 보면서 주님을 만나시는 분도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다가 주님을 만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예배 중에 임하신 주님을 만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귀한 것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남입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사울의 삶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님을 만난 감격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삶이 사울처럼, 삭개오처럼, 사마리아 여인처럼 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기대하시고, 이를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