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도 소책자로 사용되는 4영리가 있습니다. 4영리는 자연계에 자연 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영적 원리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4가지 영적 원리 중에서, 첫번째 원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복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입니다. 또한 첫 번째 원리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당신)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 10:10)’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깨닫고 누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고백이 이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하심을 깨닫게 되면 될 수록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주님을 핍박하던 다소 사람 사울이, 주님을 전하는 자로 살면서 했을 법한 고백입니다. 예수를 미워하는 자신을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직접 그를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하신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말씀해 주셨고,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그를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귀한 그릇입니다.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명! 사명! 참 멋진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울의 모습이 부럽기도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는 무슨 그릇일까?”, “나는 주님이 어떻게 쓰시는 그릇일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그릇되게 하소서! “
여러분도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니, 주님을 믿는 모든 자녀들은 주님이 이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용하시는 그릇입니다. 어떤 그릇은 화려하고, 어떤 그릇은 투박할 뿐입니다. 어떤 그릇은 크고, 어떤 그릇은 작을 뿐입니다. 모양대로, 용도대로, 주님의 부르심대로, 주님께 사용되는 그릇이 우리입니다. 아멘!
2.
주님이 쓰시는 그릇이 된 사울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보면, 그 속에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았고, 많은 고난도 받았습니다.
사명자 사울. 이방인의 사도,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고난의 사도. 이것이 사울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사울 한 사람만을 위한 계획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그릇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받게 될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예수 잘 믿으면 고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수 믿으면 축복 받아요. 예수 믿으면 건강해요. 예수 믿으면 사업 잘 되고,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 잘 믿으면 고난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다소 사람 사울의 삶도 그랬고,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고난이 있다는 것을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문득 떠 올랐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 궁금하시지요?
그것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셨는데요. 그곳에서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40일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을 향해 마귀가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또한 마귀는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그러면서 마귀는 예수께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것이 되리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으로,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갑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신 내용을 정리하면 이런 것입니다. 마귀가 자신을 섬기면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세상의 온갖 권세와 영광, 그리고 인기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유혹이지요.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보다 마귀를 경배하면 보장되는 너무나도 놀라운 계획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귀의 계획 속에는 고난이 없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인생. 매일 매일이 축제인 인생. 배고픔이 없는 인생. 쾌락이 있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이런 삶을 거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택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3-5).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짠 합니다. “우리가 뭐 길래” 주님이 이런 고난을 당하셨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많은 고난을 받는 삶. 예수께서 선택하시고,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런 험한 길, 고난의 길을 주님이 사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사울이 기도 중에 자신의 삶에 일어날 일을 보았을텐데, 주님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에 대한 불평, 불만도 없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당연하게 주님이 자신에게 보여준 삶을 살아냈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말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사울의 고백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 올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다소 사람 사울이, 사도 바울이 “예수님처럼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계획 속에 있는 고난의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으므로, 우리로, 예수를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고난의 첫번째 이유입니다.
고난을 많이 받은 사울에게서 주님에 대한 원망, 불평, 불만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대신 그에게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세요.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사울의 고백이 ‘약할 때에 곧 강하다고 합니다. 고난을 통해,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주님을 그가 더욱 깊이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두번째로 찾아볼 수 있는 고난의 이유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이 지긋지긋했다면,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자인 디모데에게 해 주는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 1:8)”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며 권면할 수 있을까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왜냐하면, 고난 속에 감춰진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찬양 기도모임 시간에 나누었던 내용 중에 공통된 주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평탄한 길, 넓은 길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나, 그 고난을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되기를, 주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고난 받는 크리스챤을 보면, 사람들이 절대로 예수를 안 믿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지만, 꿋꿋이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게 됩니다. 또한 예수 믿는 지체들에게는 큰 용기가 됩니다. 한 예로, 바울과 실리가 빌립보에게 감옥에 갇히고 때를 맞는 고난을 당했지만, 방중에 그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도했을 대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행 16:25). 그리고 그 일로 나중에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게 된 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는 이사야 말씀처럼, 사울이 고난을 당함으로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누군가를 구원하며, 누군가를 치유하는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약함이 강함입니다.
3.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시고 계시는 분의 책을 읽었습니다. 최 복이 님의 [한 그릇 사명]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본죽 그룹 경영자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본죽이라는 회사를 어떻게 세워졌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에필로그인데요. 들어보세요. “하나님은 한 없이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택해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귀한 그 축복 위에서 주님은 빌립보서 말씀처럼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내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다. 담아 주신 꿈을 이루도록 연약한 나를 훈련하고 이끄시며 쓸만한 그릇으로 준비시키셨다. 돌아보니 하나님은 네게 선한 부자의 꿈을 주시고 담금질하신 후에 ‘본죽’이라는 브랜드와 기업을 선물로 주셨다. 선한 부자 소원을 품고 행동하도록 노숙인들과 소외된 이웃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이루어 가고 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모두 주님의 세심한 이끄심 덕분이었음을 고백한다.
본죽 그룹, 본월드 미션, 본사랑재단, 본죽&도시락.. 들을 통해 전세계 수 백명의 아이들과 선교사님들을 돕고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자가, 지금의 자기를 있게 해 준 일들이라면서 3가지 일을 소개하는데요. 그 일은 숙대 앞에서 호떡 장사한 이야기. 본죽 장사하던 때, 요리학원 보조 최 대리로 일할 때의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때를 자기 생애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가 축복을 준비한 찬란한 시기였다고 고백합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약함이 곧 강함이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이 먹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음식인 죽이 우리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부족한 나를 하나님이 택하셔서 그룹 경영자로 세우셨다. 이미 서너 명이 망해 나간 최악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역전을 일으키셨다. 화려한 스펙의 사람, 그럴듯한 장소가 아니라 약하고 부족한 사물과 사람을 택해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는 역전과 역설의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해 주셨다.
.. 고난이 내게 유익이다. 어떤 고난이든 내게 무가치하지 않았다. 단지 속이 쓰릴 뿐이지, 나쁜 수업은 없다. 고난은 내 인생에 더 값지게 작용했다. 고난이 축복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사명으로까지 연결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고난이 가장된 축복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또한 그가 자기 삶에 있는 고난을 묵상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 ‘아 고난은 인생을 유익하게 하는구나. 고난은 인생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마련된 하나님의 장치구나!’
이 분이 기억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진주 조개 이야기입니다.
‘….조개의 살에 상처가 나면 조개는 몸에 있는 진액을 내어 계속 상처를 감싼다. 그러다 보면 상처가 변해 진주로, 흉터가 변해 무늬가 된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내 상처도 훗날에는 진주가 되지 않을까? 진주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 걱정 없이, 고난도 없이, 평탄한 길, 넓은 길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에는 고난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상처 같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면 진주가 됩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받은 고난은, 우리 몸에 생기는 진주입니다. 예수의 흔적입니다. 또한 그 고난의 끝에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난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지체들에게는 용기와 위로가 됩니다. 주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증거가 됩니다. 주를 믿는 증거, 예수의 사랑이 나타난 증거. 예수의 흔적이 우리에게 남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난없이 맺히는 열매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기에, 분명한 것은 주님이 사울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의 인생 가운데 허락하신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그는 그 고난을 통해 예수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를 경험하는 삶을 살면서 예수처럼 살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봐도, 고난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백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한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큰 민족을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고난이라는 도구가 사용되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요셉이 몇 십년이 지난 후에, 형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요셉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고난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 속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사명은 고난입니다.
고난의 폭풍 가운데 계신 여러분에게 주님의 십자가가 위로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최 복이 님의 “그 자리에서” 라는 시로 오늘 설교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주를 경외하며 살면 된다.
특별히 멀리 갈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말씀하신 대로
뜻과 계획대로 순종하며
빛을 비추면 좋다
빛이신 주께 집중하면
우리는 반사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온 땅을 비추면 된다
더도 덜도 아닌
주가 말씀하신대로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말고
동행하며 손잡고 가면 된다
어려워하지도 말고
호들갑 떨지도 말고
일희일비하지도 말고
잠잠히 좁은 길 따라가면
그 끝에서
주가 기다리실 것이다
[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빛으로 세상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