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계속해서 성전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며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준 관습을 뜯어 고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모욕했다는 내용입니다. 나아가 스데반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은 대제사장에 질문에 대한 스데반의 답변인데, ‘이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다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이야기와 성전을 지은 솔로몬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대답처럼 보이는데요. 스데반이 이 설교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두 가지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 그의 메세지는 하나님은 어느 곳이든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전에 계신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은 18만명의 사람이 7년 동안 지은 너무나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정도 건물이라면 하나님이 계시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전 안에는 계시지만, 성전 밖에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교회 예배당 안에만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예배당은 하나님이 사시는 거룩한 장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 예배당 밖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가요? 하나님은 교회 예배당 안에서 사시는 분이신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성전을 지은 솔로몬도 이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다 지은 다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열상 8:27,28)”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성전 안에만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성전 건물을 기도와 예배를 위한 특별한 장소로 사용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스데반이 뒤 부분에 가면 대제사장에게 상기시킵니다.
사도행전 7장 48-50절,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님이 말씀하신다. 하늘은 내 보좌이며 땅은 내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 어느 곳이 내 안식처가 되겠느냐? 내가 이 모든 것을 만들지 않았느냐?”
그렇지요.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계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솔로몬이 만든 성전에만 계신다고 믿는다고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성전 밖에서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성전 안과 성전 밖에서의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현대 교회에도 동일한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 거룩하지만, 교회 밖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 사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창조주 이십니다. 교회 예배당은 기도와 예배를 위한 특별한 공간일 뿐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행동이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모두 같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은 성전을 짓지도 않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를 먼저 언급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함께 그들이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없었지만, 하나님과 교제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 자신이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 자신이 성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살 수 있을까요? 우리도 믿음의 조상들처럼 살 수 있을까요? 우리도 교회 안과 밖이 일치하는 삶을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성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 스데반의 설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스데반의 설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다 하셨다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님께 찾으심바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길 원했습니다. 사람이 만든 성전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이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더 중요한 것, 초심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거룩한 곳이라고 간주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은 잊어 버린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볼까요.
오늘 본문에 나온 아브라함은 원래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손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그가 희망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후사를 약속하시고, 희망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사기꾼이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아버지도 속이고, 삼촌도 속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속이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형이 자신을 죽일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와 씨름하십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씨름을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이 져 주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지금 한 나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야곱이 한 일이 무엇인가요?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일까요? 요셉은 어릴 적에 아버지인 야곱의 편애를 받고 자란 인물입니다. 그래서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그를 시기했습니다. 후에 형제들은 그를 애굽이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자집 아들로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면서 살던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노예로 산다는 것을 말입니다.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예가 되어 버린 그의 삶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모릅니다. 소망도 없고, 미래는 어둡기만 할 뿐입니다. 그가 원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고의로 이런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동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집트의 지도자로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사람으로 사용됩니다. 요셉이 한 일이 무엇인가요?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함게 살았습니다.
살 소망이 없으신가요? 미래에 대해 불안하신가요?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의 삶이 변했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 안에 살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처럼 우리를 높이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빛 이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영광의 주님이 여러분을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여러분이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주님은 소망을 주십니다. 남을 속여가며 살았던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하자, 한 나라의 이름으로 남아 영광스런 이름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대제사장들에게 했던 말처럼, 우리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인생은 바뀝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으십니까? 소망이 없으신가요? 우리의 현실이 어둡지만 우리의 미래에는 빛이 비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렇습니다. 우리 삶이 영광의 하나님으로 인해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