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복’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년에 두 번씩이나 새해 인사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복 받는 것은 한국 사람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복을 바라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올 한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에서 또한 이 교회 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말씀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풍성한 한 해가 되었다라고 고백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책에서 읽었는데요. 복에는 진짜 복과 가짜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평안은 진짜 복이고, 편안은 가짜 복이라는 말씀하시고, 재미는 가짜 복이고, 기쁨은 진짜 복이라고 말하십니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복은, 당연히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복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무엘하 6장을 여러분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도대체 그 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에,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달은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2.
사무엘하 6장을 읽어보면 두 종류의 예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다윗이 나온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예배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는 점입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이 거절하시는 예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사실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예배라는 주제는 무겁고, 설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너뛸 수 없는 없었던 이유는, 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고, 기도이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아무리 화려하고, 잘 준비된 것처럼 예배라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요소가 담겨져 있는 예배는 하나님께 거절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경험한 것은 ‘두려움’, ‘공포’였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절하신 것 같은 충격과 서운한 마음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결국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자기 성으로 옮기는 것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여기가 지난 주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10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웃사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런 여호와의 궤를 관리하겠다 나타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입니다. 성전 문지기로 알려진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기 그지 않는 사람인데, 우리같은 보통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그의 집에 있게 되면서 사람들이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겁니다.
“어떻게 될까? 웃사처럼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의 진노가 그 집에 임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벧에돔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이 1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하나님이 오벧에돔 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과 그의 친척들 뿐 아니라, 그의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이 한 일은 여호와의 궤를 자기 집에 둔 것 뿐인데,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복을 내리시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벧에돔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오벧에돔은 이런 사람을 대표합니다.
“누군가 해야 하는데, 선뜻 하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입니다. 손해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반드시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오벳에돔 같은 사람 어떠세요?
교회에도 오벧에돔과 같은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힘들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분들입니다. 아무도 주목해 주지도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의 일이라면 하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이 세상도 잘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들을 주목하시고 복을 내리셨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도 오벳에돔 같은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런 분들을 챙져주시고, 또한 복 내려 주심에 감사하나이다”라는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오벳에돔같은 분들에게 복을 정말 많이 내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오벳에돔 같이, 누군가 해야 된다면, 그 일이 설령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하시는 분들입니다. 교회 일이 그런 면이 있어요. 봉사도 그렇지요. 손해 되는 일이라도, 옳은 일이면 하세요. 그리고 여러분도 오벧에돔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많이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오벧에돔을 또한 위로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오벧에돔처럼 사시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주신 복을 한 마디로 요약해 하면, ‘형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형통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다른 면이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요셉하면, 우리는 보통 꿈꾸는 자로 여기지만, 요셉은 사실 형통한 사람입니다.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셨다”
지금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요셉의 기록은 복음입니다.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도록 주님이 복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 나도 요셉같이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요셉의 삶을 보면 ‘형통한 삶’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꺼끄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요셉의 삶의 초반부를 보면 고통의 연속입니다. 형제들에게 팔려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살만 하니까 성범죄자로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요셉에게 남아 있는 것은 깊은 상처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이게 무슨 형통한 삶입니까? 이게 무슨 복 받은 인생입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래요. 사람들 눈에는 요셉의 삶은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에는 요셉의 삶이 형통한 삶이었다고 기록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요셉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은, 결국 그를 애굽의 총리로 훈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이들을 요셉처럼 훈련시키신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요셉처럼 훈련시키신다면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아요?
“그건.. 좀.. 주님 다른 방법으로..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을 만나서 확실하게.’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고 소망일지도 모릅니다.
요셉의 형통 앞에 항상 따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은 그 삶 자체가 형통한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노예의 신분이지만, 그 순간에도 요셉이 형통했습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그 순간에도 요셉은 형통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우리의 모양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삶은 형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수식어가 따라 다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라는 수식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오벳에돔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복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3.
오벳에돔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복은 사람들의 부러움이 되었습니다. 오벳에돔 뿐 아니라 그의 온 집안이 여호와의 복을 받았습니다.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오벳에돔의 집에 임한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임한 그 집은 매일 매일이 축제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주시는 복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마음의 기쁨이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오벧에돔의 소식은 다윗의 마음에 있었을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두려움도 사라지게 할 만큼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유진피터슨의 메세지 라는 책을 보면, 오늘 본문의 12절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궤 때문에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이 다윗 왕에게 들어갔다” 그리고 다윗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 들어보세요.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입니다.
“그 복을 내가 받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오벧에돔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복을 내가 받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가서,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이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복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하나님의 복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이 다윗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간증처럼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분 제가,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군대 훈련을 한 달 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소에서 근무했지만 말입니다. 어째든 제가 받은 한달 동안의 군대 훈련은 제게 잊지 못할 추억을 주었습니다. 특히 군대 훈련가서 드렸던 첫번째 예배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요. 훈련을 받고 처음 맞이하는 주일에, 찾아간 예배당은 훈련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초코파이 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온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지만, 사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설레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찬양도 좋았고, 목사님의 설교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배 시간 내내 펑펑 울었습니다.
그 당시 어떤 분이 설교하셨는지 이름도 얼굴도 기억에 없지만, 그 분의 설교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경제, 문화, 사회, 스포츠, 연예 기사들을 죽 열거 하시면서, 훈련 받는 중이지만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지 궁금할 거라고 하면서 들려주신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하시는 목사님께 불평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들으러 왔는데, 왠 세상 이야기만 몽땅하시나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하나님이 말씀을 들려 주세요! 세상 이야기 말고!” 라고 혼자 징징거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사님은 많은 시간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마 1 분정도는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신 것 같아요.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힘들지, 그렇지만 한 달 금방 가니까 건강하게 지내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을 기억해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셔.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셔’라고 말입니다. 이 짧은 메세지에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데.. 엉엉.. ‘
그리고 이 설교가 제 인생에서 들었던 최고의 설교가 되었어요. 수 없이 많은 설교자들 중에서 이름도 모르는 이 분에게 많은 점수를 주는 제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어떤 환경에서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삼십 세에 군대가서 훈련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참 가난해 졌던 것 같아요.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그 자체,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그 한 마디에 마음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 때 일을 자꾸 묵상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복은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벳에돔에게 주신 복은 ‘기쁨’으로 나타냈습니다. 다윗도 그런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14절과 15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다윗이 삼하 6장 전반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나님의 복이 내렸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즐거이 환호하며”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24:50-53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냐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사랑하는 스승이자, 주님을 떠나 보낸 제자들에게 슬픔보다 더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주님이 복을 주셔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뛰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왕의 체면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체면이 있지.. ‘ 그래요. 목사에게도 체면이 있고, 체통이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목사 일을 몇 년 하고서야 가끔 손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윗처럼 힘을 다해 춤을 추지는 못합니다. 아직도 제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는 체면을 지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서 지켜야할 예절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즐거워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다윗이 체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다윗이 하나님이 주신 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 그 분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만으로 즐거워하고 만족해 하는 다윗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배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해. 나의 영원한 생명되신 예수님. 목소리 높여 찬양해”
이것이 다윗이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감동하는 것도 이런 것 아닙니까!
“나는 니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와서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남편이 어떤 모습이든지 아내가 좋아해주면 더 행복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사람을 볼 때 기능이 아닌, 그 사람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그런 교회가 되어야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도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나는 정말 좋단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하나님, 그 분만으로 우리가 만족한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한 목소리로 불러 보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해. 나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목소리 높여 찬양해. 주님의 크신 사랑 찬양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신 주. 나의 모든 삶 변화 되었네. 크신 주의 사랑 찬양해.’
그래서 시편의 고백처럼,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 이시니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형통’함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은 또한 기쁨입니다. 내 마음에 두신 기쁨! 그 기쁨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복보다는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 보다 주님을 더욱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이 찬양을 불렀는데요. 이 찬양의 고백이 오늘 설교의 요약 같습니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오벳에돔이 경험한 하나님의 축복이고, 다윗이 경험한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재 대신 화관을, 다윗의 삶에 임했던 축복이고, 요셉에 삶에 임했던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근심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우리의 삶의 근심을 찬송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올 한 해에도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이곳에 모인 주님의 자녀들에게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