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이 땅에 태어난 이후, 줄곧 해 왔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그 분께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시간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예배 시간은 우리의 드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시간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두 번째 일은 구제입니다. 봉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봉사의 일을 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수하고 거룩한 일을 하는 곳이 교회이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급한 일을 하다가 진작 중요한 일은 놓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같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리고, 아이가 울고, 부엌에서는 음식물이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마침 집 밖에서는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필 이런 일들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의도는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이 중요하세요, 사랑이 중요하세요? 돈이 중요하세요? 시간이 중요하세요?” 직장이 중요하세요? 이런 질문들을 묻는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에게 중요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결정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이 땅에 교회가 존재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급한 일을 하다가 정말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만의 문제도 아니고,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교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초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처음 초대 교회의 시작은 120명이였습니다. 그러다가 3천명, 5천명,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급기에는 숫자를 셀 수 없을만큼 많아졌습니다. 요즘 말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가장 짧은 시간에 대형 교회가 된 것입니다. 만명 이상이 모이는 큰 교회였습니다. 이것도 놀랐지만, 그 교회 안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을 경험하고, 수 없이 많은 이적과 기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훈련을 직접 받은 제자들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눈으로 보았던 산 증인들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팔아 어려운 성도들을 기끼어 돕는 헌신도 높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 공동체 였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을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 보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교회, 이웃 사랑이 뜨거웠던 교회, 그 교회가 바로 초대의 예루살렘 교회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교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 교회가 그 옛날 그 교회의 모습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처럼 되고 싶다! 이것이 교회의 바람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공동체, 말씀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일본과 필리핀 선교사를 돕고, 동전을 모으고, 비전트리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의 모습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적인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망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6장 1절에 그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니’
초대 교회의 첫번째 문제는 교회 안에 지역주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초대 교회 안에서 끼리 모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유대인들이라, 그 당시 그리스어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 히브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서 히브리어만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생긴 문제는 히브리 유대인들이 히브리 과부들에게만 잘 해주고, 결과적으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은 무시하는것 같은 모양새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구제라는 선한 일을 하다가, 교회 안에 생긴 것은 원망이었습니다. 같은 편만 챙겨주느냐는 원망이었던 것입니다. 구제를 하다가 교회 분열이 가시화 된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구제하는일을 하다가, 사람을 무시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본질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했던 의도와 목적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제는 사람을 위한 일인데, 그 일을 하다가 사람을 무시할 수 있음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원망의 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원망의 소리가 신호입니다. 어떤 신호요? 우리가 본질을 잊어버렸다는 신호입니다. 한글학교를 왜 하려고 하는지 그 본질을 잊어버리면 남는 것은 원망입니다. 선교사를 돕다가 그 본질을 잊어버리면 원망만 남습니다. 구제를 하다가 그 본질을 잊으면 원망의 소리만 남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본질을 잊어버리면 원망만 남습니다. 일이 사람보다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음 가졌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의 소리가 들릴 때,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 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하려고 했던 원래 그 일을 하려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일을 하려고 했지? 라고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런 교회 문제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합니다. 그것이 2절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열두 사도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것입니다. 원래 사도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였지만, 교인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구제하는 일을 하다가 실수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문제의 원인을 자신들에게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고 구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그 자체를 없애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또한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교회 일은 목회자들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협력이 있어야 살아 움직이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사도들이 깨달은 시점이기도 합니다. 일곱 명의 사람들을 뽑은 이유이고, 사도들과 지도자들의 일을 구분한 이유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구절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어야 하느냐는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3절에는 집사나 장로라는 명칭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했던 일을 보면 요즘 교회의 집사와 장로들이 했던 일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성경이 소개하고 있나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집사와 장로님들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들’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이고, 또한 저를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뽑은 일곱 사람 집사 또는 장로의 이름은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인데요.
이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점입니다.
교회 문제가 지역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지도자들을 뽑을 때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적절히 섞여야 할 것 같은데, 초대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구제하는 일과 관련된 모든 일을 전부 맡겼습니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보다 점점 중요한 위치에서 주님의 일을 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성령 충만하고 지혜로우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 문제가 생겼을 때 더욱 분란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고 지혜로운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이들이 칭찬을 받는 이유가 이들이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의 특징은 한결 같이 섬기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대 교회가 보여주었던 모습이 바로 섬기는 삶의 모습입니다.
봉사하는 일은 권력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봉사하는 일이 선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오랫동안 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봉사, 하루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봉사를 일년 이상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평생 봉사하는 일을 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이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고자 했을까요?
섬김을 받고자 하는 세상 원리와 달리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그들이 선택한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교회에게 부탁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7-28)’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고자 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일곱 명의 새로 뽑힌 사람들은 구제하는 일로 과부들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제자들이 주님 가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교회는 서로 섬기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는 서로 서로에게 스스로 하인이 되는 곳입니다. 스스로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서로 망했을까요? 서로 비참해졌을까요? 서로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를까요?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렸을까요? 아닙니다. 그 반대의 현상의 나타났습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자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우리 교회는 봉사의 일을 참으로 열심히 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서로 서로를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구제하는 일로, 기도하는 일로, 물질과 헌금으로, 식사 당번으로, 청소하는 일로, 서로 서로 섬기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 우리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통해서 더욱 성장했던 초대 교회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섬기십니다. 서로에게 스스로 하인이 되십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 안에 생겼던 문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교회가 분열된 것이 아니라 더욱 하나되게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들과 일곱 명의 지도자들, 그리고 성도들이 협력해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잘 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도들이 서로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도 보았습니다. 주님이 먼저 삶으로 보여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 섬기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도 초대 교회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또한 목회자와 직분자 뿐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게 하옵소서. 또한 여기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닮은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서로 서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과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