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혹시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거나,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하면 자연스럽게 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을까? 라고 질문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목사님 부부가 셋째 아기를 낳았습니다. 축하할 일이지요?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씁니다. 그 목사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즈음에, 목사님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비로소 자신의 기쁨이 예수님 때문이 아니였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기뻤던 것이 좋은 일과 좋은 생활과 좋은 환경 때문이었구나!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내 안의 기쁨이 사라진다면, 아 내가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이것을 회개하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이 아이가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태어날 수도 없고 버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가정을 사랑하셔서 주신 생명이자 선물임을 깨닫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아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보여 정말 감사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읽었습니다. 우리 삶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방식대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무 죄 없는 하늘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더욱 열심히 불러 보기도 합니다.
블레셋 지방에 큰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고민이 그들에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재앙은 7개월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블레셋 땅에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의 궤가 들어온 이후 부터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그들의 섬기는 다곤 신상이 부서셨습니다. 왠지 불길합니다. 그리고 온 마을에 독한 종기가 퍼지고, 쥐들로 온 마을이 덮였습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요?”
물론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가 마을에 들어온 이후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궤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봤습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으로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어가고 쥐들은 창궐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은 끔직한 일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대책 마련이 시급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고민이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이며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울 몇 가지 교훈이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인격이시며,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다곤 신의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궤에 대한 처리 방법을 묻습니다. 지금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영적인 문제로 판단한 것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가 난 여호와의 신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생각해 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화가 나셔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회개할 것이 있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신의 노여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조상신을 대하는 방식이 남다른 이유도 효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조상신을 함부로 대했다가 자신들이 우려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제사장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내 놓은 방법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마리’를 선물로 준비합니다. 이런 선물을 받은 여호와 신은 노여움을 그치실까요?
이런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는 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값진 예물을 헌금으로 드리고, 또한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정말 그런 분이신가요? 우리 하나님이 값진 예물을 좋아하시는 분이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 액수와 봉사 정도로 따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거나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면 부자는 복을 더 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복을 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과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 신은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됩니다.
사실 블레셋 사람들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그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시간일 수록, 우리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참된 신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고백했듯이 말입니다. "주 예수 보다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라고 말이지요.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 방식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겠다면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병도 낫고, 하나님이 노여움도 푸실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셨던 제사는 흠없는 어린 양, 비둘기 또는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성도들의 순결한 삶을 받기 원하셨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다곤 신을 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이유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삼상 2:17절에 읽어 보겠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보겠다고 드린 예물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독종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화를 돌리라..”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드리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그들 생각일 뿐입니다. 혹시 블레셋 사람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대로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는 것이,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셋째. 기적을 보거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지를 시험하기를 원했습니다. 삼상 5장에서 3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우연히 생긴 것인지 아닌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젖나는 암소를 끌어서 수례를 메우고, 송아지들을 떼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새끼가 있는 어미 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하셨음을 확인하려고 한 것입니다.
만일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면, 어미 소는 새끼를 찾느라 갈팡질팡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멍에도 한 번도 메보지 않아서 불편한 기색을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미 소들은 무슨 소명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어떤 미동도 없이 자신의 멍에를 메고 자기가 할 일을 다 해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는 않았습니다.비록 이일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아래 일어난 것을 깨달았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들이 알게 된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바뀌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다곤 신을 버리고, 참된 신인 하나님께 돌아와야 했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다곤 신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신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신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궤는 그들에게 골치 덩어리 였습니다. 그런 신은 싫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더 많은 기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수 많은 일들을 보여주었는데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표적은 십자가 죽음 이후에 있는 부활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셨던 가장 큰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것이 미련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여러분 모두에게 아멘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