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같이 전도를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한결 같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그러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도할 준비가 안되었다던 그 분들이,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는 고백을 하다가 열정적으로 전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가진 믿음이 무엇인지 고백하는 것이 전도 훈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도 한번 해 보았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게 제 믿음의 고백이 되니까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 보세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그리고 나처럼 해 보라고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을 어떤 곳에서라도 할 수 있으면, 이게 믿음의 고백이자 전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 말을 하는 것도 사실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처럼 살았는지, 그리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크리스챤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에, 과연! 그렇다라는 반응으로 되 돌아 왔으면 합니다.
크리스챤이라는 말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봅니다. 크리스챤이라는 말이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말로 들리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크리스챤이라는 말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로 들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요즘 우리는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핵심이 되는 구절이 1장 1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시고, 복음의 시작이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복음서 중에 짧지만, 강력하게 이 메세지를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믿는 사람들 이야기가 마가복음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도 마가복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3절에 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나옵니다. 어떤 계명인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 자체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이름이 있고 부끄러운 이름이 있습니다. 닮고 싶은 이름이 있고 숨기고 싶은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요? 예수의 이름은 우리에게 어떤 이름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의 모든 것을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여자는, 예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아마도 귀에 잘 들어왔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십 이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았기 때문입니다. 혈루증은 보통 월경과 관계없이 불규칙하게 자궁에서 피가 나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여자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많은 의사를 만났습니다. 가진 것도 다 허비했습니다.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노력했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다는 것이고, 도리어 병이 더 중해졌다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도, 애를 써도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방 팔방 다 뛰어다녀도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혈루병도 지극 지극한데 하는 일마다 안됩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것입니다. 답답하고 힘든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던 여자에게, 십 이년이라는 고통의 무게를 짋어지고 살던 여자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가 답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만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는 믿음입니다.
우리 인생의 답도 예수라는 믿음이 있으신가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예수라는 믿음이 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적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당연히 우리 공동체의 답도 예수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도전해 본다는 것입니다.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도전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도전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외면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만남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두려움이, 십 이년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정하다’고 거절 당하고 외면 당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더럽다고 거절당한 숱한 기억, 이 기억은 주저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한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여인이 예수님이 옷에 손을 댔지만,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여인이 이렇게 한 이유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한 행동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언제 능력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결심하고 용기를 낼 때입니다.
여자의 믿음이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난 시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언제인가 하면, ‘여자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댈 때’였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여자는 두려웠습니다. 여자는 자신을 알아본 사람이 있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자신을 부정하다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사람들의 평판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에게 작은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옷자락이라도 만져 보자!
용기는 두려움에 직면하게 합니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서 실행에 옮기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외적 능력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 삶에 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기적이고, 예수를 믿고 두려움에 직면할 용기가 생기고, 결단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이로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딸이 있으면 부모로서 어떻게 할까요?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전 재산을 잃어도, 건강을 잃어도 딸이 살수만 있으면 다 합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야이로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예수께 달려갔습니다. 예수를 보고 그에게 엎드렸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이고,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답입니다. 예수가 희망입니다. 이 믿음이 생기면 용기가 생깁니다. 살 용기, 살아낼 용기, 살 수 있다는 소망도 생깁니다.이 소망이 꼭 우리 모두에게도 생겼으면 합니다.
야이로라는 사람이 직면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그 두려움에 직면한 야이로는 결심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릴 용기. 주님의 때를 기다릴 용기입니다. 우리에게도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합니다. 주님이 그런 야이로에게 하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무엇을 믿으라는 것일까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이로의 간절함이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두려움에 맞서 싸울 용기로, 또한 예수 앞에 엎드릴 용기로, 결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변하여 부활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가 답이다는 믿음. 그리고 주님을 찾아갈 용기, 주님 앞에 엎드릴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3.
동일하게 우리 삶에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리 모두가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필요한 것도 예수 믿는 사람들의 용기입니다. 죄와 싸울 용기. 불의와 싸울 용기. 악한 것을 대적할 용기. 이 용기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예수가 답이라는 믿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골리앗을 상대할 때 경험하게 된 것이 승리였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로, 그 용기를 가지고 결단할 때, 승리라고 하는 외적능력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갈 때 필요한 것도, 용기과 결단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만이 낼 수 있는 결심과 용기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실 수 있는 예수께 나아와 엎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생겨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용기입니다. 두려움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용기입니다. 기도하는 이들에게는 용기가 생깁니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용기가 여러분에게 생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용기가 생겨야 도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믿음 때문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도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찾자 또 다른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런 여자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
이것이 용기를 낸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구원이고 평안인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건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거친 세상에서 우리가 내야 할 용기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내야 할 용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될 때, 우리 힘으로 도저히 안될 때,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 용기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길 바랍니다. 의사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고, 약에 대한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은 금은 보화로도 살 수 없습니다. 아니요. 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소망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절망하고 앞이 깜깜한 우리 모두에게, 예수에 대한 믿음이 생기길 바랍니다. 죽음의 두려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부활의 소망으로 바뀌는 일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4.
어떻게 살 것인가 묻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부활의 소망으로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이런 결단이 중요합니다.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적입니다. 반복해서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이 바뀝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반복하고 반복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 죄를 짓는 것은 재미있다.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 같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화 속에서 우리가 계속 접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처음에는 거북하지만, 계속 접하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게 무서운 것입니다.
이에 맞서는 대응. 그 대응이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반복해서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은 소망이 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생긴 사람들은 야이로처럼,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처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기회를 잡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결심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물합니다.
안된다고 하기 보다. 해 보고 망하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 결심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물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은혜입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수 많은 무리가 예수를 만졌습니다. 어쩌다 만졌습니다. 밀쳐서 만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예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여자에게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어떤 결심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절박함이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본 것입니다. 두려움이 임할 때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런 소망을 찾을 수 없을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앞이 깜깜할 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절망을 붙잡고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는지, 두려움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믿음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합니다. 예수께 나아갈 용기. 그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