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개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잘 들어보시고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첫번째 이야기: 한 중년 남자가 점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혼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끓이고 있습니다. 음식을 만든 후에, 중년의 남자는 자기 방에 들어가 식사를 합니다. 이렇게 혼자서 밥을 먹은지도 15년이나 되었다고 그가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방에는 이 분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중년 남자는 자기 어머니와 우연히 맞부딪치기라도 하도, 화가 너무 나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루는 이 중년 남자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마디가 오가지도 않았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국 남성은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여기 청소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제가 할께요. 어머니. .. 제가 40년 넘게 같은 말씀을 드리고 있잖아요.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어머니!!’ 그리고는 화가난 남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두 번째 이야기: 한 부부가 가게 물건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다그치면서 말합니다. ‘여기에 적어놓으라고 했잖아요. 안 적어놓으면 잊어버리고, 그러면 다시 물어봐야 하고.. 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어요.’ 남편은 제대로 대답을 못했습니다. 아내가 계속 말합니다. ‘이렇게 안 적어 놓으니까, 자꾸 퇴근 시간이 늦어지잖아요. 왜 자꾸 나를 화 나게 만들어요. 아이 속상해!’
어딘서가 많이 보신 듯한 장면이실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고, 어쩌면 우리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화’입니다.
이 장면을 본 전문가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옳다’ 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신은 매우 합리적이고, 지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상대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어떤 잘못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너 때문에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중년 남성의 경우 어머니가 자기의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여자 분의 경우도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이유를 남편에게 돌렸습니다. 힘들어서 집에는 가고 싶은데 남편이 게을러서 또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 중에 하나는 화를 내면 일이 쉽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면 사람들이 훨씬 집중을 잘해서 말을 잘 들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화를 냈는데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화가 나서 큰 일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화를 자주 내시나요? 그렇다면 왜 화를 내시나요? 또한 누군가 여러분에게 화를 내면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가만히 있으신가요? 아니면 같이 화를 내시나요?
2. 시기가 가득하여.
여러분께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모습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시면 ‘시기가 가득하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분노가 가득해서’라는 말로 바꿔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 때문에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제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요?
지난 몇 주 동안 살펴본 것처럼, 제자들이 한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성전 미문에 나면서 앉은뱅인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찾아오는 수 많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한 일이 나쁜 일인가요? 이런 일들이 사도들이 죽어야 할만큼 사악한 일이었나요? 아닙니다. 사도들은 했던 일은 착한 일이고, 칭찬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는지 말씀드렸지요?
자신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모든 일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할 때 화를 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화가 난 이유를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사도들의 메세지는 사두개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두개인들은 ‘부활은 없다’라고 믿었고, ‘천사도 없다’라고 믿었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가르치고 전하고 있던 것은 ‘부활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분명히 돌아가셨던 에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들과 성령이 그 일에 증인이라고 사도들이 가르치고 전하고 다녔습니다. 이 뿐 아니라, 성령을 받은 증거로 사도들이 수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두개인들이 화를 내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데, 사도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극심한 분노를 나타내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또 한가지 보여준 것이 있는데, 사두개인들이 믿지 않는 천사가 나타나 사도들을 탈옥시키는 장면입니다. 사두개인의 믿고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천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두개인들을 건드려서 화 날 일만 생기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자신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냉철하다고 생각했으면 사실 이렇게 행동하면 안되지요. 사도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따져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이것과는 반대로 화만 내면서 제대로 재판도 하지 않고 제자들을 감옥에 넣어 버렸습니다.
사두개인들이 화가 난 또 다른 이유는, 사도들처럼 배우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능력을 행하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체면과 명예가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화를 내다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믿지도 못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옛날 사람만의 이야기인가요? 아닙니다. 지금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히려 분노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믿고, 자신의 체면과 명예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화 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때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같이 소리 지르시고 싸우시나요? 아니면 조용히 자리를 뜨시나요?
3. 주님의 반응 –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
화가 많이 난 사두개인들의 반응에 대한 주님의 반응이 19절과 20절에 나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자신의 의가 중요한 사람들, 자신의 권위가 더 중요한 사람들, 자신의 체면이 더 중요한 사람들의 반응이 분노라면, 주님의 반응은 ‘생명의 말씀’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또한 체면보다 중요하고, 권위보다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사도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생명의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죽음이 아닌 생명을, 억압이 아닌 자유를, 슬픔이 아닌 기쁨을 전하는 소식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이야기,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죄를 지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야기,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끝까지 믿고 사랑해주시는 크신 하나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처럼 우리를 대하셨다면,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깨서는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셨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신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화를 더디 내시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게도 하나님께 화를 내기도 하지만, 우리의 지혜가 하나님보다 크다고 우기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시다. 어떤 기회요? 생명의 말씀을 들을 기회입니다.
바라기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들려주시기 원하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서 화를 내고 있는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을 보고 두려워하시지 않기 바랍니다. 1세기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2000년이 흐른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주님의 부탁하신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의롭다고,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그들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뛰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을 더욱 자유롭게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처받기 보다는, 주님의 생명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 한 여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하고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을 보고, 제자들이 무척 화를 냈습니다. 비싼 옥합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낭비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한 일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화를 내시나요? 또한 여러분은 화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주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