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가진 ‘사비네 발(Sabine Ball)’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이 분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잠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비네는 1925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는 2차 세계 대전의 한복판인 독일 드레스덴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그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모가 뛰어났던 그의 꿈은 억만장자와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20대 후반에 억만 장자의 아들의 청혼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혼 10년 후에 그녀의 삶은 방탕과 쾌략, 안일과 허무로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자신도 거의 알콜 중독이 되었고, 삶은 무의미했습니다. 부자로 산다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인줄 알았는데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 항상 따라다녔던 질문이 ‘삶의 목적”과 삶의 가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라는 질문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혼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다른 도시로 떠나 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인생에는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히피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을 도우며 착하게 살게되면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를 만들어 그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고, 도움을 줘도 여전히 삶이 변하지 않는 히피들을 보며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을 찾기 위해 그는 인도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삶의 가치와 목적을 찾지 못햇습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히피들과 살고 있는 공동체에 변화가 일고 있었습니다. 몇 명의 히피들이 성경책을 읽으면서 모임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히피 중 한 명인 ‘토미’라는 사람이 ‘사비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다음은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당신은 아직 어둠 속에 있어요!”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한마디가 그녀를 흔들어 진리를 깨닫게 했다.
‘그 분이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어요. 사비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주셨어요. 하나님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주셨다고요. 이제 당신은 살아야 할 가치와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냥 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마치 저수지 갑문처럼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부숴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통곡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아무 조건없이 모든 것을 주셨구나’
오직 이 생각만이 그녀의 머리와 심장을 채웠다. 하늘의 사랑이 그녀를 소유해 버렸다…
그녀는 ‘아멘’으로 기도를 마치기 전에 하나님께 한 가지 서원을 드렸다.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아무 조건과 머뭇거림없이 오직 당신 만을 전적으로 섬기겠나이다.” 이렇게 그녀의 미래가 정해져 버렸다. 그녀 앞에 펼쳐질 삶은 이 순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멋지고 긴장되고 흥미로운 삶이 될 것이 분명했다. 1972년 4월의 오후였다.
사비네가 예수를 믿고나서, 히피들의 공동체 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공동체 리더가 예수를 믿게 되지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히피들이 사비네의 공동체로 몰려 들었습니다. 리더가 바뀌니까 공동체가 바뀐 것입니다.
사비네는 뉴욕에 가서도 ‘자매의 집’과 ‘호스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사비네는 조국 독일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독일 드레스덴에서 도시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다음 내용을 들어보시면, 사비네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거리의 아이들은 거칠었다. 카페에 계란을 던지기도 하고, 카페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긁거나 부수기도 했다. 단골로 들르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사비네는 형무소를 찾아갔다. 거기에 가면 대부분 있었다. ….. (중략) .. 면회를 가서 자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신이 얼마나 방황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망가졌었는지 모두 말해 주었다. 비록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늘 텅빈 듯한 허무함에 괴롭웠고, 그 허무를 이기기 위해 죄의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어둠과 혼든을 고백했다. 개인 이야기가 끝나면 이어서 친구이야기를 했다. 망가진 자기 대신 죽어준 사랑의 친구 이야기를, 그들과 자신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못 고칠 죄인이 없어. 모두에게 소망이 있는 거야. 나를 봐, 이 할미를 보라고”
사고뭉치 말썽꾸러기들은 사비네에게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들을 듣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든지, 너희들이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눈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녀들이야. 보석같이 정말 귀한 아이들이야”
사비네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돕고 있습니다.
사비네 이야기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 잘 믿는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참 만족을 얻고, 가치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일이 가치있는 있는가? 우리 인생에 참 만족이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을 또한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축복의 통로가 되라.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다른 번역에는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또는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해 일어난 일이 많은 표적과 기사입니다. ‘표적은 초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징후나 신호나 상징을 말합니다. 기사는 징조라는 뜻인데요. 표적처럼 예삿일이 아니라 기적적인 놀라운 일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사도들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나셨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사람들을 돕는 장면인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도 사도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바람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나타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해 흘러간 하나님의 축복은 단순히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12절을 다시 보시면,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민간에’라는 말은 예수를 믿는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예 없지만, 예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장면이고, 성령 충만한 성도들을 통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의 인생은 모습은 이렇게 멋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해 일하시는 장면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도 사도들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응답받는 기도의 삶이 귀하다.
또한 오늘 본문은 응답받는 기도의 삶이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들은 사도행전 4장29-30절에 나오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합니다.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의 핍박을 받았던 예루살렘 성도들이 기도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초대 교회 사람들이 주님께 기도했던 그대로, 오늘 본문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셨을 것입니다. 교회 일도 그렇고,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오늘 본문과 같이 기도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37장을 보면, 앗수르 왕이 유다의 왕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보낸 앗수르 왕의 편지를 하나님의 전에 펼쳐 놓고 히스기야 왕이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가 기도를 마친 후에, 이사야 선지자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사야 37장 21절을 보면, ‘.. 네가 앗스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확인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내용은 히스기야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셨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였더니 기도한 대로 되었더라’
이것이 초대 교회 사람들의 간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삶의 간증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모든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삶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나 난 후에 우리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주님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 가운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삶이 가치 있고 멋진 삶입니다.
4. 참된 삶을 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표적과 기사를 보았던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첫번째 반응은 1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12절을 다시 보세요.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들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무슨 마음으로 그들이 모였을까요? 예수를 믿고 핍박 받을 각오를 하고 모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이야기를 하지도 말라고 했는데, 그것을 어기고 예수를 전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몰래 숨어서 예수를 가르칠수도 있었을 텐데, 사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솔로몬 행각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를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말을 사도들이 용기있게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13절에는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아예 상관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놀랍지만 더이상 깊숙이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반응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 흉내 내다가 죽음을 당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에게 불이익이 닥치는데 굳이 예수를 공개적으로 믿을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삶에 대한 계산이 빠른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내게 이익이 되는지 단번에 알아버리니 말입니다.
12절과 13절에 나오는 상반된 반응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로 말입니다. 한 번 뿐인 이 세상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비네 라는 사람의 삶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 무엇이 우리 인생에 만족을 가져다 주는가? 참된 만족은 어떻게 얻는가? 12절에 나온 사람들처럼, 용기 있는 자들이 얻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확신 속에 거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예수로 인해 참된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5. 비록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자비로우시다.
15절에 보면 사도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나옵니다.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소망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만큼 그들의 병이 깊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도 보여집니다. 베드로 그림자가 뭐라고 그것에 덮이게 되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그런데, 놀라운 기록이 16절에 있습니다.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어떤 면에서는 엉뚱해 보이고, 말도 안되는 믿음 아닌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우리의 믿음이 크던 작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가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기대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게 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에게 ‘주님이 다 나음을 입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입니다.
사비네가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해 주었던 말입니다.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든지, 너희들이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눈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녀들이야. 보석같이 정말 귀한 아이들이야”
사비네의 이 말은, 방황하던 청소년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인생 포기한 아이들 같고 형편없는 아이들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여전히 보석같이 귀한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 같은 인생이 귀합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귀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이루어가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 자녀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아가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사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