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사도들이’ 라는 복수로 쓰여 있다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복음을 설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설교했던 것 같은데요. 이들의 소식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들은 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먼저 제사장들은 6절에 나오는 안나스와 가야바를 말합니다. 한 명이어야 할 대제사장이 두 명인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안나스가 자신의 사위인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사위 뒤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성전 맡은 자들은 성전의 경비와 치안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사두개인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 그 당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실권을 모두 장악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또한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세 그룹의 특징은 로마 지배하에 있던 그 시대에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누렸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종교, 정치, 경제 분야에서 최고의 권력자들입니다. 원래 이들은 제자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죽는 순간 모두 도망가 버렸고, 예수님처럼 어떤 이적을 베푸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듣는 소식은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기적을 베풀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에게 매우 위험한 메세지를 제자들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취한 행동이 3절입니다. 사도들이 더 이상 예수를 전하지 못하도록 잡아서 옥에 가두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풍습 중 하나는 날이 어두워지면 재판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옥에 갇혀서 하루밤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설교를 하던 사람들이 그 당시 정치, 경제, 종교를 장악했던 권력자들의 손에 잡혀간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을 말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되었을까요?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은 신기하고 놀라워 하면서도, 세상의 권력자들의 미움을 받고, 나아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빠진 사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많은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봤자, 그들의 삶은 괴로워질 것이고 힘들어질 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한 무엇이 있는 줄 알고 듣고 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생긴 일을 보면서,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세상의 권력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서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진리는 무엇인지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감옥에 갇힌 자의 말을 들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의외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그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도들을 가두었는데, 그 효과가 미비했다는 것입니다. 아니요.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권력으로 사도들은 효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막은 것 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 밭에 떨어져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이것이 예수를 믿는 삶이라는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한 것 같은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인생 같은데 결코 실패하지 않은 인생이었습니다. 죽은 것 같은데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전이 있는 인생 이야기인 셈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반전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은 갇혔지만, 그들의 메세지를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세상의 그 어떤 권력도, 세상의 그 어떤 지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결코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항상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갇혔지만, 그들이 전한 복음은 남자만 오천명에게 심겨졌습니다.
이런 반전이 우리의 삶에서도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믿어서 가난하게 되어도, 예수 믿어서 곤란에 빠지게 되어도, 예수 믿어서 감옥에 갇혀도, 그 일이 끝이 아니고,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절망스러운 사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일들이 아무리 커도 주님의 복음을 가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둡고, 무서워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작은 믿음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의 반전입니다. 우리 삶에도 예수로 말미암아 생기는 반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런 반전은 성경에서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원래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고, 모욕적인 것이고, 그래서 전혀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세상 권력이 예수를 이긴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십자가 입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망가 버렸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권력자의 털 끝 하나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라는 죽음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의 주님이 되심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도 반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를 전한다고 맞고, 감옥에 갇혔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고, 또한 실제로 제자들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어둠이 그들을 가두는 것처럼 보인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메세지는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겨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처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삶을 살았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그 무엇도 가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도 반전이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적군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곤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그를 가둘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자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의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결국 풀무불에 던져져 죽게 된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풀무불에 던져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한 반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는 이런 반전이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아무리 크고, 무섭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바로 반전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슬픈 일을 당해도, 우리 삶에는 주님이 하시는 반전이 있습니다.
육체는 갇힐 지라도, 진리는 가둘 수 없기 때문이니다.
예수가 진리이십니다. 예수가 길이십니다. 예수가 생명이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예수의 복음은 가둘 수 없습니다.
중국을 생각해 보세요. 또한 북한을 생각해 보세요. 원래 그 곳에는 복음이 전해질 수 없습니다. 통치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다가 걸리면 죽거나 극한 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에도 반전이 있습니다.
얼마전 우연히 보았던 비디오를 통해, 그곳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눈물로 성령이 오심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그들의 육체를 잠시 동안은 가둘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심겨진 예수의 빛은 가둘 수 없음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3절과 4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4:3,4).”
우리 인생에도 예수로 말미암아 반전이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