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열왕기상 3장은 한국 교회에서 자주 설교되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마치 어마 어마한 헌금을 했더니, 하나님이 감동하시어 엄청난 물질적, 영적인 축복을 주신 것 같은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과 같이 왕도 아니고, 재산도 없는 사람들이 기죽기 좋은 그런 내용처럼 읽혀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열왕기상 1장과 2장을 읽어보면, 솔로몬이 열왕기상 3장에서 보여주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 밧세바의 입김도 있었지만, 표면상으로는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아도니야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요즘 말로 말하면 반사 효과입니다. 아도니야가 다윗 왕이 기력을 잃어버리자 그 기회를 틈타 자기 힘으로 왕좌를 차지하려는 준비를 했는데, 이 일로 솔로몬이 급하고 갑작스럽게 왕이 된 것입니다. 왜 아도니야가 왕이 되지 못했냐 하면, 자기 힘을 의지했기에 거만했고, 아버지의 연약함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시도가 악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그래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 분명 아도니야는 솔로몬에 비해 월등히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능력도 뛰어났고, 출신 배경도 좋았고, 가진 게 많았으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진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그는 왕이 되지 못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도니야는 자기를 너무 사랑하고, 자기의 것을 너무 의지하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런 아도니야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니길 바랍니다.
열왕기상 1-2장에 나오는 긴박한 순간들, 그리고 다윗 왕이 죽음과 또한 서로 왕이 되려고 하는 권력 암투가 심도 깊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 속에서 온갖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있는 솔로몬 왕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출생의 비밀 때문입니다.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다윗 왕 사이에 태어난 두 번째 아이가 솔로몬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왕이 되기에 약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을 지지하는 세력도 미미했을 것입니다. 갑가지 왕이 되는 바람에 준비 기간도 부족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사십년 동안 통치한 위대한 다윗 왕의 계승자라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솔로몬 왕처럼, 우리 인생에는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 준비가 덜 되고,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상태, 삶에 대한 지혜도 부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거대한 산 같은 아버지도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상태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하는 삶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2.
솔로몬 왕은 하나님 밖에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 중에 하나는 애굽이라는 나라와 정력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왜 애굽 나라일까요? 강대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지지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국외에서 찾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열왕기상 3장 1절.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 두고..’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지하는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있는 3장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남긴 법도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솔로몬은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도 했습니다. 그때산당은 여호와의 성전이 없기 때문에 임시로 성전처럼 사용되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은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솔로몬의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과 그러면서도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부서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솔로몬 왕은 강대국의 힘을 빌려 나라의 안정을 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지 세력을 모으고, 이를 통해 나라를 빠르게 안정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또한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왜 그랬냐 하면, 솔로몬 왕도 다윗처럼 두려운 날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사방에서 자시을 주기려는 사람들, 왕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솔로몬 왕이 느껴진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 왕이 할 수 있는 것은 예배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진심이었는지가 4절에 가면 나옵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 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규모의 제사인데,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이 절대로 거절하지 못하실 정도의 규모 아닌가요? 어쩌면 하나님도 놀라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4절에 나온 일천 번제는 한국 교회에서 두 가지로 의견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천 번제는 일천 일 동안 드린 제사라는 의견이고, 두 번째는일천 마리 번제물을 한꺼번에 드렸다는 의견입니다. 첫 번째 의견은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일 예배를 드려야 가능한 것입니다. 정성을 다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일천 번제는 한 번에 드린 제사인데, 규모가 어마 어마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솔로몬이 드린 엄청난 규모의 제사에 놀래서 이를 기뻐하셨다고 믿지 않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하나님이 어마 어머한 헌금을 낸 성도를 기뻐하시고 그래서 더 많은 복을 주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단지 솔로몬의 제사 이후에 하나님이 반응하신 것은, 하나님이 솔로몬 왕의 마음의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 사랑을 알아보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 성도의 예배, 그 예배를 하나님이 찾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열왕기상 3장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솔로몬이 엄청난 규모의 제사를 드려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우상을 버리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3절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솔로몬 왕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보여주신 것이 열왕기상 3장의 내용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솔로몬 왕이 대단해서, 엄청난 규모의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이 다윗도 사랑하시고, 솔로몬도 사랑하시고, 우리도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내용들은 하나님이 꿈 속에 나타나서 솔로몬과 대화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선물을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5절에 보면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이 솔로몬이 무엇을 구하든지 다 해 줄께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꿈에도 나타나셨으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고민이 되는 게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라고 말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절대로 오지 을 기회일텐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 고민스러웠던 것입니다.
‘글쎄요? 너무 갑작스럽게 물어보셔서 당혹스럽습니다. 시간을 조금 주시면 안될까요?’이게 저의 반응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예배 드리고 집에 돌아가서 주무시는데 하나님이 꿈으로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하나님, 저에게 부귀와 영광을 주시옵소서. 건강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대답할까요? 아니면 솔로몬 왕처럼 대답할까요?
솔로몬은 하나님이 물으실 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요구한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분인 왕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간절했던 것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은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자 했냐면, 솔로몬은 백성들의 말을 듣는 마음을 가지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듣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 그 마음을 통해 핵심을 꿰뚫고,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일들을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앗시스의 성자인 프란시스는 성 다미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프란시스야, 너는 내 집을 수리하라. 내 집이 무너져 가고 있느니라’ 처음에 프란시스는 이 말을 듣고 성당을 수리하라는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을 가져다가 성당을 수리했습니다. 그런데 거듭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 집을 수리하라’ 비로소 프란시스는 그 음성이 성당 건물이 아니라, 자신을 수리해서 무너져 가는 교회를 세우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듣는 마음을 달라는 기도는 말 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듣는 마음’이 생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듣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 주신 직분을 잘 감당케 하옵소서. 라고 말ㅇ비니다. 실제로, 솔로몬 왕에게는 하나님이 듣는 마음을 주셨음을 열왕기상 3장 16-28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자의 이야기인데, 솔로몬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고 정의롭고 지혜롭게 판결했습니다. 솔로몬 왕이 했던 명판결이 나옵니다. 듣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듣는 마음. 이게 지혜의 시작입니다. 이런 솔로몬의 대답에,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 그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타날 때, 하나님이 보여주신 반응입니다. ‘주님이 물으실 때,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린 고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