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며
지난 몇 주 동안 한국문화캠프를 준비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드디어 캠프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멤피스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이번 캠프에는 약 30명이 참석했습니다. 캠프에는 한국인 1.5세와 2세, 그리고 한국에서 입양된 1세와 그들의 2세, 그리고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캠프에서는 한국말도 조금 가르쳤구요. 한국 놀이 문화, 한국 전통 음악과 현대 음악도 들려주었습니다. 한국 음식인 김치와 만두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캠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캠프를 진행하면서 처음해 보는 것이라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캠프에는 몇 명이나 참석할 것인지, 어떤 아이들이 올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캠프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어야 하며, 캠프 진행을 매끄럽게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캠프 관련 비용을 산정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들어가며 어떻게 그 비용이 충당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캠프를 진행하는 도중에 날씨는 어떻게 될지 알수 없었습니다. 또한 캠프 중에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캠프 관련해서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캠프를 여러 방면으로 도울 사람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캠프 관련 비용이 채워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진행하는 선생님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이지만, 캠프를 진행하는 선생님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캠프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희의 기도들이 신실하게 응답되었습니다.
캠프에 참석한 사람들이 건강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캠프에 참석한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캠프 관련 비용도 모두 충당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캠프를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캠프를 준비한 선생님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알게 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주님이 보내주신 분들이라고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캠프에 참석한 선생님들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이다 라고 말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순조롭게 모든 일이 시간에 맞추어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했고, 캠프를 위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캠프에서 열심히 놀아준 아이들에게도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캠프를 마치고, 선생님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번 캠프를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실 주님을 기대해 봅니다.
2.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지난 몇 주동안 성전 미문에서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구걸하며 살았던 한 사람의 인생이,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급격하게 변화되었던 순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로 무기력하고 소망없이 살던 한 사람의 인생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소망과 기쁨이 가득찬 삶이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놀라고 기이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고, 또한 믿음의 근원도 예수라고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 보게 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실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치자,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오해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나는 이런 권능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건으로 이 사람을 고칠 수 없다” 라고 말입니다. 대신 베드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향한 믿음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캠프를 예로 들면, ‘우리가 힘이 많아서, 선생님들이 넘쳐 나서 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건해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건강하고 다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백도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진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된 근원이시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는 주님이 이 일을 하시도록 도구가 되어드린 것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큰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일하시는 주님이 크시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크십니다.
그렇다면 앉은뱅이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그의 믿음이 그를 일으켜 세울만큼 강한 믿음이었나요? 아닙니다. 그는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을 알려주기 전까지, 예수의 이름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설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날 어떤 기적을 위해 기도했는지 알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 그가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대단해서 그런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예수의 이름을 듣고, 그 이름이 자신을 구원할 것은 믿은 것 뿐입니다. 비록 작은 믿음 같지만, 그 믿음이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통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앉은뱅이의 믿음은 성경에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조상하면 아브라함을 떠 올립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커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원래 그의 집안은 우상을 섬기는 집안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그가 믿음이 조상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를 먼저 찾아가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혀 없었던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가 주셔서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찾아가 주심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모세가 80세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가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찾아가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시작은 항상 하나님이셨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향한 믿음이 먼저이고,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믿음이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로마서 5장에 나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가 믿음이 강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찾아주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겼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믿어주셨습니다.
앉은뱅이의 믿음은 먼저 예수를 만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전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예수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크심을 우리가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자이지만, 주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을 사용하셔서 우리 안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고백한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말입니다.
3. 믿음의 대상이 중요하다.
믿음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직장, 교회 생활 모두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상실된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고, 불안한 사회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종교적인 열심이 대단합니다. 그는 믿음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무엇이라도 바칠 준비를 되어 있는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해와 달과 별들입니다. 나무와 풀입니다. 그의 믿음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믿는 대상이 잘못되면 헛 것입니다.
노아는 100년 정도의 시간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사회적인 안전 장치를 포기하고 가나안으로 이사갔습니다. 모세는 그 당시 세계 절대 강자인 애굽 왕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훈련이 전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이끌고, 최강의 가나안 땅 사람들과 싸우는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그들의 믿음이 강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은 약했고, 강한 적군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으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군사 훈련 제대로 한 번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내 딛었던 모든 일들을 그들의 강함에 있지 않지 않고, 하나님의 강함에 있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위대하신 분이지, 노아나 아브라함이, 여호수아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크신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이 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강하시고 위대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난 사건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믿었던 하나님, 아브라함이 만났다는 하나님이 가짜 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한 번 뿐인 인생만 낭비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놀림 받아 마땅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무모한 일을 했고, 오기를 부렸던 사람입니다. 성경이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대상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것입니다.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초대해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앉은뱅이는 예수의 이름을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길 바랍니다. 앉은뱅이가 가진 겨자씨 같은 믿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길 바랍니다. 기적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면 나타나는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 매일 삶이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맞보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