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
2018년도 교회 표어를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정해 봤습니다. 한 해 동안, 이 표어가 우리의 기도가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눈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시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바로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 니라’
바울은 비유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이며, ‘사랑’이라는 띠로 옷을 단단하게 묶어주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의 내용과 고전 13장의 말씀과 비교해 보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모두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은 사랑이라는 옷을 입어야 된다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사랑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오래참음’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그리고 7절을 보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라고 하면서 인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참아야 될까요? 그리고 무엇을 참아야 될까요? 그런데 왜 참아야 될까요? 라는 질문들입니다. 모두 쉽지 않은 질문들인 것 같아요. 살다보면 화가 날 일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을 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물이 금방 끓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화가 났습니다. 냄비를 만든 제조사를 욕하기 시작합니다. 화가 나서 불에다도 화를 냅니다. 이번에는 옆에 지나가던 아내가 ‘좀 기다려 보세요’라고 했다고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조급함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하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가 생길 때 참기가 어렵습니다.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 오래 참기가 어렵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볼 때 오래 참기가 어렵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오랫동안 참는 것은 고통 중에 고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은 오래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에 대해 오래 참으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화를 내기 전에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자에게 복수하지 않고 견디어 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쉽게 화내지 말고 참을성 있게 견디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을 수 있으세요? 내 감정을 거슬리는 사람을 참을 수 있으세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저 인간을 참을 수 있으세요? 미숙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참을 수 있으세요? 그 사람이 남편일 때, 아내일 때, 자녀일 때, 교인일 때 말입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사람의 게으름을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이고, 타인의 약점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한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관계이지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관계이고, 사랑이 목적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오래참음이고, 인내고, 인내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3.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누군가 우리를 오래 참아준다면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남편이 아내를 오래 참아줍니다. 아내가 남편을 오래 참아 줍니다. 가능한 일이지요? 부모가 자녀를 오래 참아줍니다. 자녀가 부모를 오래 참아줍니다. 가능한 일이겠지요? 교인과 교인들이 서로를 오래 참아줍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오래 참아줍니다.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오래 참아달라고 요구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빚을 졌을 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졌습니다. 누구한테 진 빚이냐 하면 대통령에게 진 빚입니다. 그것도 수 백억원의 빚을 졌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받는 월급으로는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정도의 액수입니다. 그렇게 많은 빚을 진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요? 포기 상태일 수도 있고,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소원이 있다면 대통령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빚진 사람이 대통령을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 할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일 겁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조금만 인내해 주세요. 그러면 다 빚을 갚을께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것인가요?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라는 말입니다. 나아가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 라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이 사람에게 천천히 빚을 갚으세요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 말 한마디가 감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빚을 갚는 시간을 늦춰주는 것이 바로 참아주는 것이고, 이것이 빚진 사람에게는 은혜로운 말씀이고 복음이고, 사랑인 것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내용을 조금 바꿔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왕이 엄청난 빚을 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3-27)’
천국은 오래 참음을 넘어 용서가 있는 곳입니다. 용서는 사랑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왕이 종에게 오래참음을 넘어 용서를 해 준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왕이 그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래참으면 사람을 얻습니다. 사랑하면 사람을 얻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는 사람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는 왕이 종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구절을 읽어보면 종에게 빚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26-30)’
이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참아주소서’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냅니다. 거기에 분풀이로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왕의 사랑을 받는 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래참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도 사라지고, 천국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감옥 뿐인 것입니다. 얼마나 살벌하고, 얼마나 삭막한 곳이 되어 버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너무나도 큰 빚을 졌습니다.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빚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고, 매일 먹을 것과 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그들을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을 욕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행햐 화 내시지 않고 참았습니다.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한 빚을 진 사람에게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빚 갚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지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 34장 6절)’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참으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심은 오래참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내로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도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금방 회개 기도하고, 죄의 자리로 뛰어가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보고도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춤을 추었던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오늘 부터 잘 할께요.”그렇게 기도하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벌써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가 되어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성인이 모두 되지 못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또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오래참음이 우리에게 작동하지 않았다면 하나님는 모두 감옥행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 빚을 지었습니까? 우리를 오랫동안 참아준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빚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령께 빚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빚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친구와 이웃들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래참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거룩하고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까? 우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심으로 우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나아가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근거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참아야 합니까? 그것은 그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참아주시는 분들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어리숙할 때, 우리의 미숙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려 주셨다면 그 분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어떤 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자녀와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친구과의 관계, 주 안에서 한 형제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닌가요? 그 관계가 견고해지려면, 우리 안에 작동해야 하는 것이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참아준다는 것은 시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기다려 준다는 것입니다.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인내는 헬라어에서 ‘끊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음’이라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인내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견고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래 참기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더욱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많은 빚이 있는지 모릅니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갚으려고 해도 부모님들은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오래 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인 이유입니다. 오래 참음이 작동하는 그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오래참음이, 인내가 작동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들 안에 오래참음이 작동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빚을 갚을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내입니다.
그렇지만 인내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빚진 사람들을 협박하고 화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분풀이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내가 작동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오래참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될 수 없는 것이 오래참음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 우리가 기도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를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이랍니다.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우리에게 빚진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얼마나 참을 수 있으세요? 자녀에게 얼마나 참으실 수 있으세요?
예수님의 비유의 결론을 읽어드리고 오늘 설교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1-24)’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는 분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동일하게 요구하십니다. 오래참음의 옷을 입으라고 말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을 얻으시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천국이 또한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