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기다리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 임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함과 동시에 그들이 방언을 시작했고, 방언의 내용을 알아들었던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향해 ‘새 술에 취했다’라고 조롱하자,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를 시작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베드로의 설교 내용의 일부입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를 살펴보면, 하나님 이야기와 예수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교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항상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나사렛 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곳이고, 무시 당하던 곳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6절에서 나다니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촌동네, 못사는 동네 출신 예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예수와 하나님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약한 자, 비천하고, 쓸데 없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 엎드린 자들을 사용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22절은 나사렛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을 사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 수 있는 구절이 고린도 전서 1장 27-2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
우리가 가진 지혜와 부와 힘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고,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의 지혜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 라는 것을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현대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 교회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어서 다행인가요? 아니면 불행인가요? 우리가 우리의 지혜와 부와 힘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기를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이 땅을 사실 때 성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하라고 하는 일만 하셨고, 아버지가 하라는 말만 하셨습니다. 그 예수를 성부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의지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보다 연약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7월에는 문화캠프가 있습니다. 8월부터는 한글학교가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총회의 미션팀과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할 계획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우리 모습을 보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강하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니다.
우리의 자랑은 우리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통해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나타난 바 됨을 자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2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사망의 고통에서 예수를 풀어주셨듯이, 이제는 예수를 통해 우리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주십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의 고통으로 옭아매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우리를 어려움에 빠뜨려 놓고,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을 즐기시는 분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살리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생명을 주는 일이 어렵지 생명을 앗아가는 일은 쉽습니다. 세우는 일은 쉽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쉽습니다. 생명의 길을 여는 일은 어렵지만 생명의 길을 막는 일은 쉽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세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길을 여시는 분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살리시고 생명을 길을 열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읽으셨던 이사야 말씀에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으니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셨다. 그가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눈먼 사람을 다시 보게 하고 짓눌린 사람을 풀어주며 주께서 은혜 베푸실 때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주시며, 우리를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또한 우리가 성령 충만해지기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일들은 또한 사람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죽어가는 영혼, 상처 받은 영혼, 악한 영에 억눌린 영혼을 살리시고 치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이 26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기를 바랍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우리 삶 가운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오늘 말씀을 빌리면,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은 기쁨, 즐거움, 그리고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생명을 통해서 입니다. 생명을 얻음으로 생기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희망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반면 희망이 없어졌다는 말은 생명의 길이 닫혔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 땅을 살 희망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희망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세요. 생명이 펄펄 살아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덩달아 기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 그 생명이 살아 있는 공동체가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3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이 질문에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높이시는 분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높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시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예수를 성부 하나님이 높이셨습니다. 36절을 보면, 십자가가 못박히신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지 않지 않습니다.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번에 교회 카펫을 깔아보려고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이론은 다 알아요. 그러나 몸으로 그 일을 해 낼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땀이 나고 힘이 들고 무엇보다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는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색하고 땀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되는 것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성령님이 도우시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낮아지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가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높아지려 하고, 섬김을 받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사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사시면, 우리가 성령 충만하게 되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다 하시도록 우리를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여주셨듯이 하나님이 우리도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는데,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사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41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