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년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주위 분들에게 서로 인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배우자가 옆에 계시다면, ‘사랑한다’고 고백도 해 보시길 바랍니다. 당신 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한 해 였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한 해를 잘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제가 마음에 담고 있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물론 우리 삶에 기쁜 일만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고달프고 외롭기도 합니다. 인생의 무게가 우리를 짓 누를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자세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떤 자세냐 하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우리 인생이 풍성해지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풍성하다!’ 라는 말이 저는 좋습니다. 여러분의 인간 관계도 풍성해 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풍성해 졌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풍성했으면 합니다. 하는 일마다 풍성해 지시길 기도합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는 이 말을 뒤집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항상 원망하고 무슨 일이든지 시비 걸고, 모든 일에 불평하라’ 어떠신가요? 멋지시나요? 있어 보이세요? 아니면 없어 보이세요? 행복해 보이세요? 불행해 보이세요?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아니면 꼴도 보기 싫으세요? 계속 이렇게 사실래요? 아니면 다르게 살고 싶으세요?
항상 원망하고 무슨 일이든 시비 걸고, 모든 일에 불평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짜증 납니다. 본인은 모르지만, 상대방은 잔뜩 짜증난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봤으면 합니다. 우리가 원망이나 시비없이 살아봤으면 합니다.
2023년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비법은, 감사입니다. 감사하면 떠 오르는 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대충 들어봐도 모두 원망거리고 시비거리고, 불평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차도 없고, 직장도 없고, 집도 없고, 오늘 먹을 것도 없고..’
마음이 무너지는 말들 뿐이지만, 하박국에게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 반전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겠다. 나는 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라’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하박국이 멋지지 않나요? 아니면 궁상 맞나요?
여러분의 귀에도, 하박국 선지가의 고백이 멋지게 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없는 것, 가지지 못한 것, 소비할 수 없는 것, 이것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 삶에는 원망과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누리는 것, 그것에 초점을 맞추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보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쁨이고, 감사이고 또한 우리의 찬양인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우리가 멋지게 살아봤으면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 처럼 고백해 보았으면 합니다. ‘대궐같은 집이 없고, 반짝거리는 차가 없고, 명품백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기뻐하리라’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후회가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2.
그리고, 우리 안생에 후회가 없으려면,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3절입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걸 우리가 모르면 생기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14절에서 나오는 두 단어, “원망과 시비”입니다.
그런데, 13절을 읽고 나서 14절을 읽는데, 앞뒤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소원을 두시는데, 어떻게 원망과 시비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두시면 기쁜 일이 아닌가요?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라면 우리가 설레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원망과 시비라니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우리 삶에 일어나더라구요.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10가지 기적을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끄집어 내십니다. 이 때 하나님이 이들에게 주신 소원은 하나님의 산에 가서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노예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갈 소원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가슴 뛰고 설레이는 순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챙겨서,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이동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얼마 있지 않아서 애굽 군사들이 쫒아왔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인데, 그 일 중간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분명히 백성들이 기도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하셔서 일어난 일이 출애굽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 앞과 뒤에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항복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홍해에 집단으로 빠져 죽든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인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원망과 시비입니다.
‘너 때문이다. 너는 그르고 내가 옳다’
이렇게 말하기 쉬운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원망하고 시비를 가리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 망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인데, 결국 망해 버리는 허망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시작은 창대하고 거창해도, 범사에 원망하고, 시비를 걸고, 항상 불평하면,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혹시, 원망과 시비가 생길 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일을 행하신 분이 누구인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 일의 시작이 하나님이셨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인가요? 이것을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저희 공동체가 2015년 부터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이 2023년말이니까, 8년째 하고 있는 일인데요. 바로 ‘선교사의 밥상’ 사역입니다. 이 일의 취지는, 일본에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한달에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자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랫동안 할지 몰랐습니다. 어째든 지금도 매달 일정량의 음식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올해 있었던 입니다. 보내드린 음식 중에, ‘한국 김치’와 ‘삼결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을 받고서 감동 받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선교 훈련을 받으러 오신 분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분이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신 지 얼마 안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이 그렇게 먹고 싶으셨나 봅니다. 선교 훈련생이신 분이 이렇게 남 몰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한국 김치 먹고 싶어요’
선교사님 기도치고는, 참 소박하지 않나요? 하나님이 이 소박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누구를 통해, 저희 공동체를 통해서 말입니다. 한국 김치가 뭐라고, 그렇게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감사한 일이 분명합니다.
없는 살림에 누군가 도와준다는 것이 원망이고 시비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상황이 좀 나아지면 그 때가서 좋은 일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돌아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안되는데, 하나님이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정말 가난했던 과부가 선지자에게 밥을 해 준 기록이 성경에 나옵니다. 마지막 한끼 식사였는데 그것을 선지자가 자기 달라고 말합니다. 원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행하신 일이라고 믿어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혹시 원망거리와 시비 거리가 솓구칠 때, 우리는 이 말씀이 생각나야 할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는 가난하나, 하나님은 부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공동체가 2024년도에 하기로 한 일이 있습니다. 내년에 한 분의 선교사님을 더 후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2024년도에는 세 분의 선교사님을 후원할 것입니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작은 도움은 될 것입니다. 재정으로, 기도로 후원할 것입니다. 기도로 후원한다는 뜻은 우리가 그들을 생각한다는 것이고,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지치지 않기를,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기도했으면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경험하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을 하고 있지만, 지칠 수 있고, 원망과 시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위로하심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우리에게도 감사 제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것을 한해 동안 느끼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천국 시민으로 이 땅을 사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모두 이방인입니다. 고향의 음식이 그립고, 고향의 향취가 그립습니다. 먹는 음식도 입맛에 안 맞고, 풍습도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했던 원망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부추나 고기를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내 팽기치고, 다시 노예로 살고 싶어하는 본능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원망과 시비는 우리가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빛으로 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믿음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 원망과 시비만 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원망과 시비 후에 남는 것은 ‘후회와 허전함’ 뿐입니다.
그 동안 했던 모든 일들을 허망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두도 행하신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시비로 나의 존재감을 나타내지 마시고, 기도로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냈으면 합니다.
홍해 앞에서도, 애굽 군대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홍해가 갈라지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면 다릅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이라면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 분이 인도하실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24년, 하나님이 제게 주신 소원은 ‘절제’입니다. 오늘은 그 맛있는 음식 앞에서, 제가 절제를 잘 할 수 있을까요? ㅎㅎ 벌써 궁금해 지지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잘 할 수 있게 기도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소원을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