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몸짓인데도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한데 잘 알아듣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미국 살면서 가장 절실히 깨닫고 배우는 것이 언어 문제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민족의 언어로 자기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어려운 일은 나는 열심히 이야기 했는데, 상대방이 전혀 그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머리를 갸우뚱 거릴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항상 부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성령의 말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기록 때문입니다. ‘주님 저도 이렇게 되게 해 주세요. 될수 있으면 영어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있었던 오늘 본문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언어를 말할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은, 성령이 각자에게 주셨던 선물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성령이 각자에게 임하면 성령님이 각자에게 선물로 다른 언어를 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방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들이 가득합니다. 그 말 중에서 하나를 제자들이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하기 시작한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성전에 있습니다. 안식일 다음 날 성전에 모여서 형제, 자매들과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성령이 강하게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배워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입니다. 이것이 방언의 특징입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당사자도 많이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을 알아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알아들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 같은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성령 충만을 기대하라.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시작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을 따라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의 가장 큰 변화는 언어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투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 하는 말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다른 언어입니다. 우리가 못 알아듣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그런 말을 우리가 하게 됩니다. 그것도 우리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의지에 따라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8)’
술 취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해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말합니다. 그런데 술에 취한 것과 성령의 충만해서 말하는 것은 격이 다릅니다. 술의 취한 것은 자신의 욕심에 따라 말하지만,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의 격이 얼마나 다른지 아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모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도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언어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이 자신들도 모르면서 말했던 ‘하나님의 큰 일’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고, 이 땅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으면 승천하셨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일이,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교회, 우리의 직장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말이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입술을 통해 나오는 고백이,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의 큰 일을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향하실 주님의 크신 계획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일을 말할 수 있다면 또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성령 충만하기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바람이 우리에게도 불어와서 우리 가정에도, 우리 직장에도, 우리 지역 사회에도, 우리 교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 충만함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다른 언어를 말하는 것이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창세기 11장을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였던 언어가 수 백가지 수 천가지 언어로 나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따라, 자기 의지로, 자기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보다 더 높아질려고 하는 교만의 결과로 생긴 사건입니다. 따라서 원래 다른 언어는 하나님을 멀리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할 수도록 생기는 현상이 언어 소통의 부재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와질수록 하나님과 가까지 하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면 생기는 현상이 소통의 단절임을 보여준 사건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서로 말은 하지만 서로 못 알아들는 세상을 향한 성령의 치유하심. 그것이 오순절의 사건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언어가 바뀝니다. 우리 가정에서 사용되어지는 다른 언어들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원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소통이 안되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 각 사람의 마음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교훈은 성령의 말씀하심이 얼마나 적절한 때에 이루어졌는지 아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언제 오실지 몰랐습니다. 그냥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일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성전에 모여서 찬양하다가 생긴 일이었습니다. 오순절 축제로 예루살렘에는 각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성전에 모였을 것입니다. 그 때에 일어난 사건이 오순절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시기가 매우 정확했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알아 듣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마침 다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자들이 주의 복음을 들고 다른 나라로 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가기도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때에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 때가 가장 효과적인지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셨다가, 하나님의 때에 제자들을 사용하신 사건이 오순절 사건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삶도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때에 주님의 말씀을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하나님의 때에,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이 오순절입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때에 일어난 일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울 교훈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의 언어가 바뀌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때에 적절한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말하자,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시자만, 그것을 들을 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말해질 때, 그 말이 들리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성경의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한 쉽게 믿을 수 있는 성격의 내용도 아닙니다. 처녀가 잉태한 이야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낸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 그것이 들리고 또한 믿어지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겠습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해도 그 내용이 다 이해되는 것은 은혜입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특히 필요한 주님의 은혜이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다함께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령 충만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다. 성령님이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실 일들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매일 매일 성령 충만함으로 사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공동체게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하나님의 큰 일이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의 큰 일.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보여주는 하나님의 큰 일들이 우리 입술을 통해 선포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그 말들이 각자의 귀에 들리고 이해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일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