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살펴볼 예수님의 비유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입니다. 이 비유는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과 기도의 내용과 이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들으시지 않으셨지만,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내용은 그 당시에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 비유는 지금도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를 지금 이야기로 바꿔보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성실한 목사와 부정한 공무원의 이야기로 바꿔보겠습니다. 어떤 성실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고 성경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목사이기 때문에 기도도 많이 하시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도해야할 때도 많아졌습니다. 이 분은 경건한 삶을 위해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시는 분입니다. 나아가 모든 수입의 십일조는 콩 갯수까지 정확하게 세서 내시는 분입니다. 또한 동네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으면 항상 도움을 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많이 받으시는 분입니다. 성실한 목사님은 사기도 안치시고, 교회 돈도 횡령하지 않으십니다. 간음이나 음란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아주 먼 분이십니다.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신 분입니다.
부정한 공무원은 이런 사람입니다. 교회는 가끔 나오고요. 성경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성경 공부는 당연히 안 하구요. 금식 기도는 평생 해 본적이 없습니다. 수입의 십일조는 해 본적이 없습니다. 헌금도 기분에 따라 왔다 갔다 합니다. 사기는 적당히 치는 편이구요. 공무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얻은 정보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도 합니다. 간음도 하구요. 약한 사람은 적당히 밟아주고, 힘센 사람들 앞에서는 비굴할 정도록 납작 업드리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에 기도한다고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다급한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우리의 생각에는 성실하게 살아온 목사님의 기도는 금방 응답될 것 같습니다. 반면 부정한 공무원의 기도는 응답이 되질 않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실한 목사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는데, 부정한 공무원의 기도는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뿐 만 아니라 부정한 공무원이 의롭다고 주님이 평가하셨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고, 부정하고 악을 행하며 살아온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의롭다라고 칭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9절에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2.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의로웠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을 비판하셨지만, 그들의 모든 것을 비판하신 것은 아닙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눅 11:42)’
바리새인들은 매우 도덕적인 삶을 살았고, 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기도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12절이 그 내용인데요.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따로 서서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처럼 사기꾼도 아니고 정직하지 못하거나 간음하는 사람도 아니며 또 이 세무원과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하고 기도했으나.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에는 그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뭔가를 요구하는 기도도 아닙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야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경건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거룩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하기 바쁩니다. 나는 세리같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했습니다. 나는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기도 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남들이 일년에 한 번 하는 금식 기도를 일주일에 두 번씩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위대한지 보십시오. 나는 위대합니다. 나는 찬양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칭찬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는, 나는..’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자기 자랑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같지만, 사실은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나의 위대함을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세리같은 인간하고 다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할수록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더욱 분명하게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즉 바리새인의 기도는 ‘나는 찬양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시는 위치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랑만 하다가 성전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찬양받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의롭다. 나는 대접 받아야 한다. 나는.. 나는… 나는.. ‘ 내 자아가 하나님 보다 높아져 버린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기도가 주님께 전해질리가 없습니다. 주님께 드린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랑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진다’라고 말입니다.
바리새인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목사하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습니다. 목사는 이슬만 먹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지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라는 말은 아무도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살아도 자기를 높이는 순간 하나님은 그를 낮추신다는 것을 본문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3.
반면 세리의 기도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가슴은 마음을 의미하지요. 그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나쁜 짓 많이 했으니 그럴 것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눈여겨 보신 부분이 바로 그의 마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낮추고 있습니다.
13절, ‘세무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세리는 자신에 대해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자랑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좀 착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면 자기보다 조금 더 나쁜 사람을 찾아보면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 속에서 악하디 악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회개기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무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다는 말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낮추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리는 자신의 삶이 어떤지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 하나님을 더욱 쳐다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세리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뿐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가장 큰 차이는 누구 앞에서 기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 들으라고 한 기도입니다. 반면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사람의 모습은 이렇게 한 없이 작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낮춘다고 표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 보셨는지 모릅니다. 바로 ‘투명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소재로, 영화의 소재로, 소설책의 소재로도 종종 등장하는 것이 ‘투명인간입니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다든지, 적군의 공격을 피하든지, 다른 사람의 비밀 이야기를 엿듣지 하고 싶은 상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서도 반지를 끼면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째든 여러분에게도 반지를 끼면 사라지고, 반지를 빼면 다시 사람들 눈에 보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투명 인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투명인간이라는 힘을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죄의 본성 때문입니다.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음란’, ‘도둑질’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이 가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신기한 힘이 생기면 자기가 옳은대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죄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다 들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세리가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본 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입니다. 죄로 가득한 자신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뵈었을 때도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될까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기도가 응답될까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의롭게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를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롭다 칭해 주시며, 한 없이 낮아진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초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 아래, 주님의 권위 아래, 주님의 영광 아래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비유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자랑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