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기대로 가득찬 길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사울 왕으로 인해 생긴 슬픔이 새로운 왕을 보러 가는 소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면목상 사무엘은 여호와께 제사드리려 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무엘은 이새의 가족을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사무엘의 초대를 받은 이새와 그의 자녀들은 가슴이 부플었을 겁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자,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가문의 역사에 길이 남길 일이지요.
이새와 그의 자녀들이 예배에 참석했고, 사무엘은 자연스럽게 이새의 아들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마음에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 누군지,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있었을 겁니다.
사무엘이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자 마자 속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10초 안에 한다고 합니다. 교회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도 이 교회에 다시 올지 말지를 10초 안에 결정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 결정은 옳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겠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 사무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새로운 왕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고 있는 사무엘의 눈에 엘리압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어 보였습니다.
단 1초도 걸리지 않아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1초도 안돼서 하나님이 바로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에, 하나님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라고 말입니다.
사무엘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깜짝 놀랬을 법도 합니다. 사무엘의 확신이 무참히 깨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믿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영이 충만했던 사무엘이 이 정도라면, 우리는 어떨까요? 기도의 사람 사무엘이 이 정도라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도 사무엘처럼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느낌을 믿고, 그 사람의 배경을 보면서 사람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몇 마디 말만 해 봐도 단번에 어떤 사람인지 아시는 분도 있기는 합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도서관에서 리포트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전도해라’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리포트를 써야 합니다. 리포트 다 쓰고 나갈께요’ 전도하는 것이 낯설었던 제게 들렸던 그 음성에 저는 쉽게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밖에 나가라는 마음이 커져서, 어쩔 수 없이 도서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전도를 하라는 것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봤더니, 한 사람이 벤치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인상이 어찌나 험상 궂게 생겼는지 말 붙이기도 힘들었습니다. 제가 한 마디 했다가 욕이라도 얻어 먹을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놀고 왔는데,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그 사람이 여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만나라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어쩔 수없이 두려운 마음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이렇게 시작된 대화로 그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수련회에 가고 이러면서 친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 험하기는 그 형제보다 제가 더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거울로 제 얼굴을 보다가 가끔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설교하는 저를 보자 마다,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이 다 도망갈까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10초도 안돼서 보이는 것을 보고 결론을 내립니다. 사무엘조차도 그랬으니 우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외모에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오해 받고 싶지 않아서 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대신 우리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항상 살펴봐야 할 것이 우리 마음 중심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중심은 어디에 있으신지요? 먹고 사는 것인가요? 입는 것에 있으신가요?
주님의 관심은 우리 마음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우리 마음 중심이 우리에게 있는지, 세상에 있는지, 하나님께 있는지가 주님의 관심입니다.
2.
하나님이 주목한 사람은 이새의 아들 중 ‘다윗’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음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아버지 이새조차도 관심 밖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사무엘과 같은 영적인 거인이 자기 집에 찾아왔을 때도, 이새는 다윗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막내가 보통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법인데,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이새에게 다윗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새의 영향 때문인지, 이새 가족들도 다윗을 차갑게 대했습니다. 가족들 한테도 외면 당한 막내, 다윗을 생각해 봤습니다. 참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슬픔이 그를 짓눌렀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시에 다윗의 이런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시편 69:3-5, 8)
이런 일들이 다윗의 삶에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면, 아마 우리는 모두 우울증에 걸렸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그를 하나님이 왕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다윗은 우울증으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곤할 때까지 부르짖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목동, 형제들에게도 낯선 사람이 된 사람, 무엇하나 내 세울 것 없는 사람, 첫 눈에 반하기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그를 하나님이 눈여겨 보셨습니다.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본다’
다윗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의 중심에서 나온 시라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많은 분들이 이 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다윗의 영혼이 지쳤던 기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살면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사자와 곰이 그와 그가 지키는 양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주목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처럼 다윗도 하나님을 바라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거시기 해도,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으면 된다고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목동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다윗의 시를 읽으면서 주님이 떠 올랐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남아 있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 말입니다. 또한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로했던 사도 바울이 떠 올랐습니다. 사람들 눈에 보기에 형편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중심을을 본다’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밤의 별과 낮의 해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주님이 만드신 놀라운 창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친구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아도, 주님이 우리를 주목해 주십니다. 그런 위로가 다윗의 삶에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런 위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신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본다면, 그의 순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거인인 사무엘이 이새의 집안을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다윗도 그곳에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양들을 지켰습니다. 남들 눈에는 형편없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양 떼를 지키는 다윗을 하나님이 눈여겨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양 떼를 지키는 것처럼 남들 눈에 보기에 별거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모두 다 싫어하는 일이고 궂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어떠하든지,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면,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기도해 봤습니다. ‘지금 제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들을 묵묵히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남들 눈보다 주님의 눈이 더 중요한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을 향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