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바울과 그 일행이 하나님의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에 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번째 마을인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크게 세 가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번째는 일은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루디아를 만난 것입니다. 두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일은 악한 영을 쫓아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일입니다.
이 세가지 일련의 사건에서 공통된 부분이 있는데요. 그것은 ‘기도’입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기도할 곳을 찾다가 만난 사람입니다. 점치는 귀실 들린 여종은 기도할 곳으로 가다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그 일행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기도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면 떠 오르는 것이 뭔가요? 응답받는 기도, 기도와 권능, 기도와 믿음,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예화를 잘 들어보세요.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기장이 꺼진 엔진을 다시 살려보고자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꺼진 엔진은 쉽사리 다시 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장은 기내 방송을 통해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타고 계신 비행기는 지금 추락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방송을 들은 한 승객이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 말을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서 ‘가능성이 없다. 거절한다’는 말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많은 분들이 기도는 하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신 분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일로 기도하다가 시험에 빠진 분도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만 안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기도를 하지 않거나 신앙 생활에 대한 열심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신학적으로 ‘기도하다 시험에 빠졌다’는 말이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말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삐졌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서운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니까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이유도 알게 되고, 제 기도를 안 들어 주셔서 감사했던 적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바울과 실라의 기도 생활을 살펴보면서, 우리 안에 기도에 대한 회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가 더 깊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뭘까요? 바울과 실라에게 기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본문을 통해 그들의 기도 생활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그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오해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 가는 이들에게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제가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지냈을까 하고 말입니다.
12절을 보시면,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 일을 유하다가’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수 일을 유하다가’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에 갔는데, 바울과 실라가 아무 것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 곳에는 그들을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전도지라고 나눠주고 다닐 것 같은데, 바울과 그 일행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말입니다.
‘수 일을 유하다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 갔지만 그 곳에서도 한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쉼표 같은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울과 그 일행에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 13절입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지금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는 ‘우리가 주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 다녔다’는 말로 바꿔볼 수 있을 겁니다. 기도할 곳이 찾아가는 그 길에서 바울과 그 일행은 ‘루디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기도가 무엇인가요? 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많은 경우, 무슨 일이 생기면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필요가 있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기도합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필요하겠지만, 바울과 그 일행의 기도는 그런 기도와는 좀 다른 기도입니다. 그들은 습관을 따라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꾸준히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꾸준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그것의 응답이 바로 루디아 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그 일행을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은 무슨 일이 없어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기도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관계가 우선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이렇게 되어 있지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5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7,8절)’
기도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보여드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상한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지켜주시는 시간이 기도인 것입니다. 꾸준한 기도. 아무 일 없어도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
16절을 보면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생긴 또 다른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납니다. 귀신들린 여종은 바울 일행을 보고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말입니다.
귀신도 알아보는 사람들인데 빌립보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 것이지요. 아니 귀신이기 때문에 알아본 것이겠지요. 그리고 여종이 얼마나 신통력이 대단하지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여종을 찾아가는지 아시겠지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 일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실 때 그렇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도 아무런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요? 여종에게 갑니다. 그리고 여종에게 묻지요. 앞으로 일어날 지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답답하면 점치는 여종에게 갑니다. 그러면 여종은 우리의 가슴을 뻥하니 뚫어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욱 누구에게 갈까요? 귀신 들린 여종에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점치는 여종의 말씀을 새겨듣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악학 영에게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한 사람, 하나님보다 더 믿음이 가는 사람이 여종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18절의 내용을 이해하면 됩니다. 왜 바울이 정답을 이야기하는 귀신을 해야 ‘그 사람에게 나오라’라고 명령한 이유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그냥 내 버려 두면 사람들은 계속에서 귀신에 현혹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귀신의 말이 중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악한 영의 음성은 크게 들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이 기도시간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시나요? 아니면 아직도 귀신들린 여종을 찾아 다니시나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음성 듣기를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기 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종을 통해 돈을 벌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절에 여종의 주인들 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여종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이 그 일이 불가능해 버렸습니다. 주인들이 얼마나 화가 났을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이유로 바울과 그 일행을 고발합니다. 그 내용이 20-21절에 나오는데요. 내용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식민지인 사람인 유대인 주제에, 세계 최강의 로마 사람들이 사는 성에 들어와서 심히 소란하게 할 뿐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는 풍속을 전한다’는 죄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엉뚱한 죄목으로 바울과 그 일행은 매를 많이 맞게 됩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바울과 그 일행은 아무런 방황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깊은 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은 차꼬로 든든히 채워지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기도하다가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러 가는 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도하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말입니다. 기도하는 것과는 다른 일들이 생기면요? 예수 믿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면 참 당황스러울 것 같아요. 하나님이 보내셔서 고생하면서 왔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절망스러울 것같아요.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도 모자라서, 무시당하고, 매도 많이 맞았어요.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큰 죄를 지은 지었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에 차꼬도 든든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없던 길도 만들어 주실 때도 있지요. 홍해에 길이 날 때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도 그랬습니다. 기도하면 어떤 때는 없던 길이 생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때는 길이 자꾸만 막혀 버릴 때가 있습니다.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난한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영안을 열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길이 열릴 것에 대한 기대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이 드디어 미친 것인가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매는 맞아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을텐데 말이지요. 큰 죄를 지은 사람마냥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억울하다고 소릴 지를만 하지 않나요? 나도 로마 사람인데 이렇게 할 수 있냐고 미리부터 말할 수 있었다면 바울과 실라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될 법 했는데 말이지요. 사람들이 볼 때는 바울과 실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이곳에 보내시고 이게 뭐냐고 따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했다구요?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매를 맞다니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일수도 있어요. 기도하면 모든 것이 잘 된다 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요. 기도가 뭐지요? 기도 응답이 뭐지요?
바울과 실라는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감옥 문이 열리도록? 땅이 진동하도록? 아마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의 기도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 오늘 일어난 일을 말씀드린 것 뿐일 겁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과 실라가 보여준 기도의 실체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 하는 시간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기도의 응답에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 속에 들어가기 위함에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친해지려면 어떻게 하지요? 같이 시간을 보내지요. ‘오늘부터 친해집시다’. 이렇게 말하면 친해지나요? 아닙니다. 절대로 친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야 친해집니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일도 함께 하고, 성경도 같이 읽고, 봉사도 같이 하고, 기도도 같이 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내면 친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친해지는 방법은 어떨까요? 하나님과 시간을 같이 보내면 되지요. 그러면 친해집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이지요.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과 친해지는데 더 관심이 많았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다음 계획이 궁금한 것이지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무슨 일을 계획하실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묵묵히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지요. 그들이 기도와 찬양을 드리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죽으려고 했지요. 그 만큼 간수가 감당하기에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 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서 간수를 말립니다. 그리고 간수는 이 일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됩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간수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어난 것이지요. 바울과 실라가 고생은 했지만, 이를 통해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 일은 기도와 찬양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한 일은 기도와 찬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한 일이 뭘까요?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머지 일은 다 하십니다.
하나님이 바울과 실라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해 주셨을까요? 아마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면서 있는 곳에서,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기도와 찬양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힘든 일 뿐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힘들어요. 나는 선한 의도로 한 일인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엉뚱한 누명을 씌워서 나를 모독해요. 조롱해요. 그 때 우리가 할 일은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예요. 때로는 억울하겠지만, 그 시간을 견디어 내면, 이 일을 통해 엉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것이 바울과 실라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곳에 보내신 이유가 있음을 믿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지 기다리는 것이 바울과 실리가 한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함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해 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그것입니다. 친밀함.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주님이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기도의 목적입니다.
그들이 주님 안에 거하면서 기도와 찬양을 한 것 뿐인데 그 일을 통해 좋은 열매를 얻었습니다. 루디아와 점치는 여종과 간수와 그리고 그들의 모든 집안 사람들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힘들고 지쳐 있을 때도 말입니다. 우리에게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주님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분량이기도 합니다.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존재. 항상 푸른 존재. 인생에 바람이 부나 태양이 뜨거우나 한결같이 주님을 바라보는 존재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모습 이지요. 우리도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그들의 믿음을 가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