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려움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큽니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지혜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이렇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것 같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어떤 분은 쉽게 포기하십니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내 경험으로 되지 않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는 분들입니다. 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리시는 결정이라고 봅니다. 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 저기 도움을 요청해 봅니다. 전문가를 찾아갑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문을 열심히 두드리다 보면, 문을 열리는 경우가 있다고 믿고, 또한 어떤 경우에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 앞에서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을 잃었습니다. 믿고 따르던 지도자를 잃어 버렸습니다.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집행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무덤도 그들이 철통같이 지켰습니다. 여인들의 바람은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사랑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해 주시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옮겨 줄까?” 여인들에게는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따라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로마 군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자신들이 옮기려고 해도 도저히 옮길 수 없는 큰 돌입니다.
따라서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옮겨 줄까.” 라는 고백 속에서 여인들의 깊은 한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걱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 볼려고 시도는 해 보지만 여전히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지,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지, 무엇을 하면 될까” 이런 고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이 커다란 돌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커다란 돌이 하나 쯤은 있으실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이 바로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듣고 싶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을 가로막고 있는 돌이 벌써 옮겨졌다는 소식입니다.
미국 16대 대통령을 지낸 링컨이 젊을 때 이야기 입니다. 그의 삶은 고통과 좌절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업을 두 번 크게 실패 했습니다. 주 의원에도 두 번 낙선했습니다. 아내가 죽었습니다. 자신은 심한 심장 질환에 걸렸습니다. 하원 의원에 두번 낙선했습니다. 상원 의원 출마도 두번 실패 했습니다. 부통령 출마도 낙선했습니다. 아들 넷 중에 성인이 된 사람은 한 명 뿐입니다. 그의 삶에는 이렇게 수 많은 돌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그가 걱정되었습니다. ‘저러다가 링컨이 자살하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었습니다. 링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아질 기대도 없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한탄했습니다.
그랬던 링컨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그의 고백입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링컨의 삶 가운데는, 링컨 스스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수 많은 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링컨은 이 돌을 보면서 좌절하고 고민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를 일으킨 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자, 그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앞에 놓여 있던 돌도 그를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장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지혜로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돌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큰 돌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커다란 돌입니다. 그런데 그 돌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옮겨져 버렸다는 소식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돌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돌은 도리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크심과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돌, 우리가 예수를 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돌은 이미 옮겨졌습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기대와 믿음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여인들에게는 돌이 옮겨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커다란 돌은 그들의 걱정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예수의 권능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수 많은 이적을 보고, 듣고, 느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수 천명을 먹이셨음을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에 대한 소식도 들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어떤 일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가능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권위자보다 더 권위있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여인들은 주님의 최측근에서 주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믿음이 한없이 약해졌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보면서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도 약해지고 희미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빛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그들이 준비한 것이 향품이었습니다. 향품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것입니다. 여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의 권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인데, 예수의 말씀이 기억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하리라.” 주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주님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이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향품을 사는 헛된 수고를 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잔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기대하고 있었다면 말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가고 있는 여인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크신 은혜를 많이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빛이 보이지 않는 것 같으면 우리의 믿음은 연약해 버립니다. 주님의 약속은 쉽게 잊어 버립니다. 우리 삶에 찾아온 작은 어려움이 우리 믿음을 집어 삼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우리를 봅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만 보고 좌절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큰 돌을 옮겨줄까”라고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큰 돌이 옮겨졌다’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여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반면에 예수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철통같이 예수의 무덤을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귀 담아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주세요. 주여,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이미 돌은 옮겨졌는데, 우리도 쓸데없는 걱정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에게 안식일은 쉼이 있는 시간이 아니였습니다. 절망의 시간. 슬픔의 시간.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이 그들을 엄습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신지 그들이 다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에게 있는 걱정과 근심과 슬픔이 그들의 믿음도 약해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무게는 커져만 갔습니다.
우리 삶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매일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이 돌을 옮겨 줄까” “누가 나를 위해서 이 돌을 옮겨줄까.”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지헤도 부족합니다. 힘도 부족합니다. 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그리고 다시 한 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하신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미 돌이 옮겨졌습니다. 여인들이 들었던 가장 큰 소식입니다. 우리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우리가 슬픔 속에 있을 때, 우리에게 들려야 하는 소식입니다.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가 들어야 할 소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돌이 이미 옮겨졌다는 소식입니다.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을 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지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없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이 돌을 옮겨줄까요?
누가 우리를 위해 우리 삶에 있는 커다란 돌을 옮겨줄까요?
우리의 대답은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도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가 거기 계시지 않습니다. 그가 계셨던 그 곳은 빈 무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