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 주일로 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어머니 라는 단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희생, 수고, 사랑이 생각납니다. 어머니 하면 떠 오르게 되는 이미지가 아닐까 합니다.
오월이 되면 제 어머님 생각이 자주 납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봤습니다. ‘상추쌈과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 입니다.
"봄이 되면, 아내는 집 한 쪽 구석 공터에 텃밭을 만듭니다. 올해는 한국 시장에서 사온 호박이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비록 밭은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어요. 상추, 깻잎, 토마토, 근대, 오이와 호박, 그리고 참외가 텃밭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법 자랐습니다. 며칠 안 본 사이에 야채들이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습니다.
‘대견한 녀석들!’
그런데 야채들이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날 잡아 잡수~’ 라고 말입니다.
제 식욕이 이 소리를 못 들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밥 한 공기와 쌈장을 챙겼고, 밭에서 뜯어온 야채를 물로 씻었습니다.
‘맛.있.겠.는. 걸~’ 얼른 먹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밥상이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어제부터 다이어트 한다고 했는데 글렀습니다. ‘오늘은 맛있게, 그래~ 내일부터 하자.’ 쌈장에 밥, 그리고 밭에 기른 야채가 전부지만, 고향의 맛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어머니도, 나처럼 드셨을거야~’
몇 년 전 일입니다. 이른 새벽에 동생이 다급하게 우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습니다. 비보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답니다. 앞이 깜깜해 졌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이메일로 생일상 먼저 받아 먹었다며 좋아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랬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어지질 않습니다.
급하게 미국에서 한국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찾아봤습니다. 다행히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을 경유해서 가는 바람에, 거의 하루가 넘게 걸려서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동생 친구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장례식장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큰 아들이 오고 있다며, 아버지가 어머님의 장례식을 잠시 미루고 계셨습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놀랬지!’ 하면서 걸어나오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어느 좋은 봄 날, 천국에 가셨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뒷 수습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집 구석 구석에 어머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냉장고와 부엌에도 내일을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흔적이 그대로 였습니다.
‘아들오면 이것 저것 해 주신다고 읍내를 다 누비고 다니셨을텐데... ‘
아들은 집에 와 있는데, 집이 텅 빈 듯 했습니다. 아버지는 오죽 하셨을까. 40년 넘게 함께 살던 아내를 먼저 보내셨으니 말입니다. 텅 빈 마음을 달래려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어릴 적 기억 속 풍경과 똑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여전히 허전했습니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만도 한데, 그 소리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나무와 풀 색깔이 진해지고 있었습니다. 집 안 한쪽 구석에 있는 텃밭이 생각냈습니다. 어머니가 뭔가 심어 놓으셨을 것 같아서 였습니다. 예상대로 밭에는 온갖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추, 상추, 고구마,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 텃밭에는 제법 먹을 만한 것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거 키워서 드실려고 했을텐데 .... 이젠 누가 먹지….’
어머니가 해 주셨던 소박하던 그 밥상이 생각났습니다. 봄이 오면 밭에서 막 뜯어온 상추에 밥 한 숟가락 얹고, 쌈장 조금에 입 안 가득 쌈을 밀어넣으면서 오물 오물 씹어서 어머니가 맛있게 드셨을 겁니다. 오늘 저도 엄마 흉내를 내 봤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대신 봄과 자연을 느껴 본 것입니다.
2.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교회에서 특송을 하시면 항상 불렀던 찬송가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 불렀던 ‘사철에 봄 바람 불어 있고’ 라는 찬양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가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갑니다. 이 찬양처럼 우리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의 바램대로, 저희 가정은 찬송가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비록 어머니는 기도 응답되는 것을 살아계실 때 보진 못했지만 말입니다.
사철에 봄 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웰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여러분의 가정도 이 찬송가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이 찬송가를 지으신 분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전영택, 구두히 장로님이 각각 작사/작곡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작사자인 전영택 목사님은 일제 시대 독립 운동을 하며 숨어 지내느라 단란하게 가정을 돌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구 장로님 역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단란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이런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해서 만들어진 찬양이 ‘사철에 볼 바람 불어잇고’라는 찬양입니다. 두 분의 간절한 소망이고, 기도인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부르게될 찬송가 ‘어머니의 넓은 사랑’도 구두회 장로님이 작곡하신 것입니다. 작사자는 주요한 선생님인데요. 이 분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찬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노래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면서 할머니로부터 성경 말씀을 듣고 신앙 교육을 받았는데,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어머니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이 찬양의 시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이 찬양처럼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3.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어머니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아닐까 합니다. ‘마리아’는 열 세살 쯤에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것이 마리아를 통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예수인데, 그 예수가 마리아라는 십대 아이를 통해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엄청난 사실에도 불구하고, 가브라엘 천사가 나타나 했던 말들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음을 성경에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처녀가 잉태하는 일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브라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더 큰 확신을 주기 위해 친척인 엘리사벳을 찾아가 보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마리아의 임신을 말하며 축복해 줍니다.
‘네가 복이 있으니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불렀던 찬양이 오늘 본문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자신의 상황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마리아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은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처녀가 임신했다고 사람들의 돌아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혼한 요셉도 파혼하자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주를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어머님. 그 어머님을 자녀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고백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마리아의 찬양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진정 기쁨으로 드렸던 찬양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리아가 자신의 삶에 일어난 일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메시야를 기대하고, 그 일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셔서 더욱 기뻤을 것입니다. 어쩌면 기뻐해야 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왜요? 그 이유가 그 다음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살아온 삶은 비록 짧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더욱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지켜주셨고, 은혜를 베푸셨듯이, 앞으로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자신을 인도해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나아가 그 이후에도 복된 사람이라는 명예가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미래를 향해 담대히 선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리로다’
나는 복된 사람입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선포하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해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가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면서 했던 고백입니다.
이 땅에서 복된 마리아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마리아는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후에는 애굽으로 도망가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사렛으로 돌아와 여러 명의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가장 힘겨웠던 시간은 자신의 몸을 빌려 낳으신 메시야가 십자가에 힘없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아야 할 때였을 것입니다.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참으로 아픈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 동안만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가 떠난 후에, 마리아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사도행전 1장에 마리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케 하는 단서가 있습니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적으로 낳은 어머니 마리아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복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어머니 날에, 모든 어머니들이 이 찬양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보라 이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주님을 찬양했던 마리아 처럼, 여러분도 그런 어머니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했던 마리아처럼, 여러분도 그런 어머니가 되시길 바랍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도했던 마리아처럼, 여러분도 그런 어머니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리아의 고백처럼, 우리의 고백도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라 이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