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3년 공생애 동안,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많이 고쳐주셨습니다. 눈먼 사람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걷게 되었습니다. 귀 먹은 사람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눅 7:21-22). 이 기적들이 말해주는 공통된 메세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오늘은, 나병 환자가 예수께 치료하심을 받았는지 살펴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병 환자의 사진을 한 장 보여드리겠습니다 (한센병에 걸린 24세의 남성).
나병은 이 때 당시도 힘들었지만, 지금도 치료가 어려운 질병 중 하나입니다. 나병 또는 한센병으로 불리는 이 질병은, 원인균인 나균을 의하여 피부와 말초 신경을 주로 침해하는 만성 전염성 면역 질환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병환자들을 특별 관리합니다 (레위기). 전염성이 강해서, 나병 환자들은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을 때도, 제사장으로부터 확인 절차를 밝아야 치료가 되었다는 것이 확인된 후에야,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막 1:44).
따라서 문등병이라는 질환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저주스러운 못쓸 것입니다. 하늘의 천벌을 받은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몸에 생긴 질병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본 것 같은 얼굴로,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이그러진 얼굴로 자신을 쳐다 보는 사람들의 시선 말입니다. 나병 환자의 몸에 생긴 질환도 심각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마음에 난 상처였을 것입니다.
저주 받은 인생을 끊어 버릴 수만 있다면,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병환자 이겠지요. 얼마나 병이 낫기를 원했을까요! 그것을 보여주는 태도가 40절에 나옵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간절한 마음으로 낫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기도하는 모습이고, 예수를 경배하는 모습이 무릎을 꿇는 행동입니다. 나병 환자는, 인생에 찾아온 치명적인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첫번째 교훈은, 나병 환자의 태도 입니다.
그가 병 낫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의 병 낫기를 원하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의 용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병 환자의 모습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당연한 행동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병 환자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절망이 찾아오면 자포 자기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저주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스스로 이렇게 위로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때도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다 지나갈거야!’ 물론 이런 말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병이 낫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다 지나갈거야’라고 하면, 말장난 하지 말라고 화를 낼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는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온 위기의 순간, 절망적인 순간에 무엇을 하시나요? 나병환자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나요? 이 지긋 지긋한 상황이 끝나기를 바랄 때 무엇을 하시나요? 버림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 무엇을 하시나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 무엇을 하시나요? 나의 허물과 잘못이 소문 난 것 같아 부끄러울 때 무엇을 하시나요?
나병 환자는 낫기를 열망했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이 찾아올 때,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 올 때 우리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스스로 포기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입니다.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병 환자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그의 용기입니다. 그가 병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갔는데, 사실 이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슨 용기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들어낼 수 있는 용기입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엎드릴 때 예수님 주변에 누가 있었을까요?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 혼자 계시지 않았고, 예수님 주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 8:1-2). 무슨 이야기인가요? 나병 환자가 자신의 흉칙한 모습을, 자신의 허물을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들어냈다는 것입니다. 한 두 명도 아닌, 수 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나병 환자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들어냈습니다. 사람들에게 돌에 맞을 수 있지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어겼다고, 곤역을 치룰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들어내더라도, 자신이 병을 고치겠다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낸 나병 환자는 잠시 동안만 창피 당했지만, 결국 병이 나았습니다.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수치스러운 모습, 아픈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울지 않는 훈련을 하면서 자란 것 같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이렇게 힘든 일이 있어도 태연한 척하는 훈련을 하면서 우리는 자랐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아픔과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놀림 당하고, 이용당할까봐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허물을 보여주는 일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절망 가운데,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지 않는 용기는 결과적으로 우리를 살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질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잠시 창피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병 환자처럼, 우리도 용기를 내야 합니다. 거룩한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평안한 얼굴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허물과 치부를 들어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 앞에 나병 환자처럼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많은 위기들이 찾아옵니다. 절망스럽고, 위태로울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의 허물과 잘못이 온 천하에 들어나서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그래서 조용하게 숨어지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허물을 들어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창피 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무릎 꿇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낫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나병 환자의 믿음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이 당시 나병 환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생긴 믿음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나병 환자의 믿음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고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나병 환자의 믿음은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다면, 내 병도 예수님이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두 다른 사람 이야기, 그것도 아주 옛날에 일어났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 어떤 분들은 눈 먼 사람, 귀 먹은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죽었던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살아나는 이야기가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해서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 사람도 고침을 받았다면, 나도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믿음이 생기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읽은 나병 환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비록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키운 사람이지요. 여러분과 저에게도 나병환자가 가지게 된 믿음이 생기기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눈 먼 사람이 눈을 뜨고, 귀 먹은 사람이 듣게 되는 일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받아 들였습니다. 예수님이 저 사람도 고쳐 주셨다면, 나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게도 눈으로 보지 않았던 예수님의 능력을 믿은 나병 환자처럼, 성경의 기적을,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음으로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나병 환자은 자신의 병이 고침 받기를 원했지만, 주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40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그 다음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흉칙해진 모습이 치유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지금 사람들에게 자신의 허물을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율법을 어겼다고, 사람들에게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입니다. 흉칙한 얼굴을 보여주었다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손해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께 간구해야 할까요?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반드시 고쳐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 체면이 쓰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혹시 이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나요? 제가 이렇게 기도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주님, 빨리 들어주세요. 답답해서 창피해서 못 살겠어요. 지금 제 기도 안 들어 주시면, 저 금식합니다. 제 기도 안 들어주시면, 제가 삐질 겁니다. 저 삐지면 무서운 것 아시지요. 주님,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예? 라고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병 환자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고쳐주세요’ 자신의 입장을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장을 듣기 원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원하시면 고쳐주세요.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대답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참으로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
나병 환자의 요청에 주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가 41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민망히 여기셨다는 것은 그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무거운 인생의 짐을 온 맘으로 느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병 환자의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이 움직여서, 우리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의 말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 나병 환자가 했던 말 그대로 하십니다. ‘그럼, 내가 원하고 말고, 내가 네 마음을 잘 안고 있단다!’는 말씀입니다. 나병 환자의 말이 주님 생각에도 좋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를 만져 주셨고, 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가 크다
나병 환자를 짓누르던 인생이 무거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를 슬프게 하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사람들과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됩니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아주 평범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끼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꽃이 활짝 핀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내게는 평범하다 못해 너무나도 지루한 오늘 하루가,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부러운 하루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나병 환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범한 삶을 살게된 그가 얼마나 감사했을지를 말입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입이 근질 거립니다.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소문이 다 나 버렸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지요. 입만 열면 자랑입니다. 주님이 자기에게 얼마나 크신 은혜를 베푸셨는지에 대한 이야기합니다.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고. 100번도 더 이야기 해도, 지겹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에 무거운 짐이 벗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수도 없이 많은 위기들이 찾아옵니다. 우리 힘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나병 환자처럼, 포기하지 마시고, 낫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이런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사진).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삶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내일 당장 굶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자손들이 그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풍요롭게 된 이 세대는, 간절함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이 말이 우리에게 위로는 될지 몰라도,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나병 환자가 ‘잘 될거야’ 한다고 병이 나을 수 있나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때, 우리에게 치명적인 아픔이 있을 때, 우리는 나병 환자처럼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인생에 돌파구가 생깁니다.
그런데 다른 나병 환자들은 어디 갔나요? 친구가 나병이 나았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건 다른 사람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병 환자들은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저주 받은 인생을 한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주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에 부족한 것이 많지요? 우리가 무릎 꿇어야 할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지요? 주님 앞에 무릎 꿇을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간절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셔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병 환자가 주님의 뜻을 물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뜻대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에 마음이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원하노니 네가 깨끗하게 될지니라.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