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들이 생기도 합니다. 이런 위기는 때로는 기회가 되고, 기회처럼 보이다가도 정말 위기로 변하면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사울 왕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강력한 왕으로 사울이 우뚝 설 수 있는 날이 왔습니다.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블레셋을 완전히 쳐 부술 수 있는 날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스라엘에는 완전한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사울 왕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날이라고 했는데요. 그 날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첫째. 사울 왕이 무찔러야 할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할 일이 태산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이스라엘 군대는 삼 천명이었습니다. 기회라고 말하기에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사울에게는 이런 일을 헤쳐나갈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군사라고 모인 사람들이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아주 먼 곳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사울 왕이 나중에 남아 있는 사람의 숫자를 세어 보니, 6백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울과 함께 있었던 이천 명 중에서 천 사백명이 도망가거나 숨어 버린 것입니다. 강력한 왕이 되기는 커녕 망하게 생겼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군대가 가진 무기는 농기구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도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날에 칼과 창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강력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냉혹했음을 보여줍니다. 제가 기회의 순간이라고 했나요? 아니요. 사울 왕에게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왕으로 서기는 커녕, 살아 남을 수 있을지 걱정을 해야 할 처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모습은 처참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위기의 순간을 잘 넘기면 기회가 올까요? 아니면 고생만 하다가 완전히 망해 버릴까요?
우리의 염려는 고생만 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날이 오면, 우리는 가슴이 답답해 질 것입니다. 수 많은 생각들과 걱정들과 우리가 해야할 일들로 우리를 짓누를 것입니다. 할 일은 많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는 순간이고, 공포가 우리를 엄습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셨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떨쳐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길 바랍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나요?
사울 왕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은 수 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걸려있고, 나아가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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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은 사울이 왕이 된 후, 2년째 되던 해에 벌어진 일입니다. 지난 2년 동안 평화로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오지 않는 이상 평안한 삶입니다. 저 같으면 이런 날에는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 대신 블레셋이 쳐들어 오지 않기를, 혹시 쳐들와 와도 우리가 그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큰 전쟁을 하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합니다. 미리 군대를 양성하고, 무기도 최첨단 철재 무기로 바꾸어 놔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무작정 전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무모한 전쟁은 누가 봐도 사울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울 사람이 절대 부족했고,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질 게 뻔한 확신만 드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준비 기간이 없습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숨어 버립니다. 대신 일은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 뿐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른 이유가 뭘까요?
왕이 되니까 힘 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강력한 왕이 되겠다는 욕망이 그를 움직인 것일까요? 그런데 이것들 모두가 사울이 군대를 모은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사울이 군대를 모은 이유는 아마도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정황상 그렇습니다.
8절을 보시면,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13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는 말들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이번 싸움은 하나님이 사울에게 명령하셔서 시작한 것입니다. 별 준비 없이 하는 싸움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는 싸움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매우 컸다는 것을 사무엘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이 말은 사울 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수도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들이 있어요. 우리는 하나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급하게 전쟁을 해야 하는 날 말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시작한 일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돕는 손길이 넘쳐나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많던 사람들이 굴로, 언덕으로 숨어 버립니다. 다른 곳으로 멀리 도망쳐 버립니다. 그에 비해 적군은 강하고 많아 보입니다. 우리의 적인 악한 마귀도 저렇게 강하고 숫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명하셨던 것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왜 그랬을까요?
무엇보다도 사울은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에 압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명하신 것들을 잊어버렸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의 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가 사울 왕의 믿음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행동에는 조급함이 묻어 납니다.
8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며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
사울도 인내심을 가지고 사무엘을 기다렸습니다. 7일을 기다렸다는 것은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인내심에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사무엘과 함께 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자신이 그 일을 수행합니다.
9절.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울 왕은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예배 드립니다. 삶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10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울 왕은 기다릴 만큼 기다리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이레 동안 기다리라고 한 약속을, 사무엘이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울이 성급하게 행동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데, 베냐민 지파 사람인 사울이 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한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드는 순간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무엘에게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것은 사울이 강력한 왕, 영원한 나라의 임금이 될 수 있는 절회의 기회를 날려버린 이유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사울이 성급했던 이유는, 그는 현실적인 문제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보고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백성들은 흩어지고, 사무엘은 정한 날에 오지 않았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적군은 수를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문제를 보다가, 그에게 있어야 될 믿음을 잊어버렸습니다. 사울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주변 상황을 보았습니다.
사울에게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사울의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지금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도망가는 백성들을 한 명이라도 붙잡아 두기 위한 도구로 예배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의 마음이 불안하니까 지프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겠지만,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두려고 하나님께 예배드린 척 했습니다. 십자가를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반응과 현실의 문제에 부딪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일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했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지는 싸움처럼 보일 때, 사람들의 반응이 차갑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은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사울을 망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반드시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 열세해도 이기는 싸움입니다. 무기가 없어도 이기는 싸움입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전쟁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겁고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행한 계획이 있단다. 이 싸움은 이기는 싸움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담대하라. 하나님만을 바라봐라.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들이 무모해 보이기도 합니다. 준비할 시간도 없고 재정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망하는 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사람과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시면, 우리가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현실의 문제에 조급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믿음을 주세요.
기다린다는 것은 그냥 시간을 때우면서 허송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다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사울에게 원하셨던 것이 바로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볼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시키신다면 ,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가사를 보시면 이렇습니다.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일평생 주만 바라면, 너 어려울 때 힘주시고 언제나 지켜 주시리. 주 크신 사랑 믿는 자 그 반석 위에 서리라’
2절. “너 설레는 맘 가다듬고 희망 중 기다리면서 그 은혜로신 주의 뜻과 사랑에 만족하여라 우리를 불러 주신 주 마음의 소원 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