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삶이 어렵고 힘들 때,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자 떠 올리는 이미지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어떤 사람은 자기 방의 침대와 이불이 주는 포근함을, 어떤 사람은 연인과 주고 받은 커플링을, 어떤 사람은 집에서 키우는 반려 동물의 이미지를 떠 올려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려고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빈센트 고흐 라는 화가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그의 마음 속에 떠 올렸던 이미지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들라크루아 라는 화가가 그린 예수님의 이미지였다고 합니다. 오늘 주보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요.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라는 사람이 그린 ‘게네사렛 호수 위의 그리스도 (1853년)’ 라는 작품입니다.
고흐는 힘들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면서 평강을 되 찾았다고 합니다.
그림을 한 번 보실까요?
그림은 폭풍우 속에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이 배경이라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하늘은 시커멓고, 바람이 거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파도와 싸우느라 겁에 질려 있고, 지쳐 있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예수님은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평안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무리 주변의 환경이 험악해서, 인류의 구원을 책임지신 예수님의 모습은 평안이고, 평강이다는 것을 작자가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고흐는 그림 속에 있는 보고 싶었던 이미지, 그리고 그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이미지도 바로 이것입니다. 일주일동안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셨는지요? 그렇지만, 만약 여러분의 삶이 그림과 같았다면, 폭풍우에서도 평안하셨던 주님의 이미지가 여러분에게 평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요한복음 20장에 나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사람들이 무서워서 숨어 있는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생각해 보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며칠 동안 삶의 폭풍우 속에서 살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평강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삶의 거센 풍랑 속에서 힘겨운 하루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시길 원하셨던 것이 평강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에게도 주님이 주시길 원하셨던 것도 평강입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삶의 거센 풍랑 속에서 평안히 주무시는 주님의 이미지. 그 이미지가 여러분에게도 평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자신이 부활했음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해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도 평강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주님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던 제자들의 마음에 평강을 주셨고, 이제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세상으로 그들을 보내시면서 하시는 기도가 바로 ‘평강’입니다. 세상의 넓은 길도 아니라, 거친 파도가 기다리고 있는 세상 속으로 보내는 제자들에게 주님은’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의 기도와 축복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 사도행전의 내용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예수 제자들의 삶에 평강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3
오늘 본문의 내용을 읽으면서 감옥이 갇혀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행동들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가 사형된 후에, 베드로가 잡혀왔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도 야고보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야고보처럼 죽게 된 신세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내일을 기다리는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주님이 제자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평강이 베드로에게 있었나요?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6절과 7절을 보면 베드로의 마음 속에 평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을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 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 12:6,7)”
베드로 주변에는 베드로가 도망갈까봐, 또는 다른 사람들이 베드로를 빼내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군인이 베드로와 같이 자고, 감옥 문 밖에서도 두 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는 깨우는 장면인데요. 7절을 보면 천사가 베드로야 일어나라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쳐서" 라는 말은 그냥 살짝 건들여 잠을 깨웠다는 말이 아니라, 죽을 정도로 세게 쳤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베드로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평강’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이미지가 떠 올랐습니다. 베드로의 삶 속에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베드로는 그 속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것처럼, 또한 축복해 주셨던 이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것이 ‘평강’입니다.
무엇 때문에 밤 잠을 설치셨나요?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무엇과 싸우시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나요? 누구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베드로에게 임했던 평강이, 동일하게 여러분의 삶에도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기도해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4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참으로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이런 신비로운 일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던 교회도 베드로가 이런 일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교회가 기도했지만, 베드로가 살아 올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방법은 모르지만 베드로의 생명을 연장 시켜달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들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누군가의 기도로 베드로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도로 베드로가 경험하게 된 일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누군가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녀의 기도가 부모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기도했던 것보다 더욱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나의 기도하는 것보다 더욱 응답하실 하나님. 나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했던 것 이상을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있는 장면이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했던 것보다, 베드로가 기도했던 것보다 더욱 이루시는 하나님을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가 경험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했던 것보다 더욱 이루시는 하나님을 여러분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5.
베드로는 감옥에서 아주 신비로운 방법으로 탈출했습니다. 감옥을 지켜던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베드로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막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 차려보니까, 감옥 밖으로 나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가 능력이 뛰어나서 생긴 일인가요? 베드로가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생긴 일일까요? 아닙니다.
베드로의 능력도 아니고, 베드로를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다렸습니다. 베드로가 조용히 마가의 다락방에 간 것과 그곳에서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베드로가 조용히 다른 곳으로 숨었다는 기록이 그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주실 새로운 사명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베드로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었다면, 이렇게 소란을 피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나를 다시 잡아 넣어봐라. 그래도 나는 다시 나올거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하지 않은 이유는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기에, 자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길 원합니다.
예수께서 폭풍우 속에서 누리셨던 평안, 베드로가 죽음의 문턱에서 앞에서 누렸던 평안. 그 평강이 여러분과 저에게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했던 것보다 더욱 응답하시는 주님을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