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멤피스 한인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해 봤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우리의 초점이 어려운 일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교회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교회 지도자들은 감옥에 갇혀 버렸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그곳에 아닌 하나님께 맞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감사” 라고 저는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시편 100편의 고백처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 찬양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은 또한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간단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런 정체성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우리 교회의 자랑이고, 힘이고, 영광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데, 천지를 지으신 그 분의 것인데, 그의 백성인데, 그가 지켜주시는 양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의 목자 되시니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해졌다’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주일 아침에 성경 읽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주일 마다 30분 정도 읽었는데요. 신약을 꽤 많이 읽었습니다. 바라고 기도하기는 이 시간을 통해 ,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해 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의 말씀을 읽을 때에 즐거움이 넘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려봅니다.
말씀을 읽어가면서, 가끔은 놀랄 때가 있어요. ‘이런 말씀이 있었나?’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잘 잊어 버리지요. 이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차곡 차곡 쌓이면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명될 때가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고, 직장을 잡고, 공부를 할 때도, 우리의 모든 행동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옛날 것 보다 새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유독 교회는 옛날 것을 그리워하고 추구하는 것 같아요. 특히 현대의 교회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고 닮고 싶어합니다. 렇지요? 실제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모습은 충격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베드로가 설교하자 수 천명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교회에 헌금했고, 함께 모여 기도했고, 함께 교제했으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그 모임이 좋았으면, 사람들이 거의 매일 모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모임이 우리 공동체 모임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일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 (행 2:47)’
서로 사랑하고 돕는 교회, 서로를 배려해 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공동체 라면 당연히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주님 안에서 초대 교회와 같은 모습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 돕는 사람들이 친구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웃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 하지 않았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우선 순위가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작지만,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사명은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미국은 많은 민족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많은 민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록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멤피스에 있는 한국 사람은 약 1%정도 됩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0.01%도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사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길 원하십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얘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져 있습니다. 좋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리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한글학교, 선교사의 밥상, 오병이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주님의 복음이, 주님의 이름이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너무 작은 일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행전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주 안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대단하고,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면 나면 주님이 다 해 주십니다.
우리는 큰 불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잘 잊어버립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불꽃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불씨가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불씨가 사도들과 주를 따르던 120명의 사람들에게 심어졌고, 그 불씨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나아가 이방인들에게 퍼져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신 작은 불꽃이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작은 불꽃이 이방인인 안디옥 교회에 붙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이름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안디옥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운 최초의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은 놀리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술 먹고 놀기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술 자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노름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날 부터 노름을 안 합니다. 이런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 이유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기만 하면 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같이 술 마시고 노름하던 사람들이 변해도 너무 변했으니 사람들이 놀라서 한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입만 열면 욕이고, 음담패설이었는데, 이제는 입만 열면 예수이니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놀림이라면 우리가 받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작은 불꽃이 커져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도행전에도 사람들의 불꽃을 끄기 위한 노력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초대 교회 사람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불을 끄려고 사탄이 교회를 흔들었는데, 그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불꽃이 옮겨 붙었습니다. 빌립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를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의 박해가 하나님이 일으키신 불을 끌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하나님의 불꽃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불은 퍼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교회 지도자를 죽이고, 초대 교회를 흔들었던 인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잔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세와 영광이 영원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지요. 그리고 그의 권세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오늘 본문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호령하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한 사람의 죽음이 얼마나 허무한지 잘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교만한 자의 멸망이 어떤지도 잘 보시고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의 죽음은 참으로 허무했습니다. 왜냐하면 하찮아 보이는 벌레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벌레가 ‘이’ 또는 ‘회충’이라고 해석하는데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막강한 세상 권력을 가진 그도 벌레보다 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추구하는 영광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헤롯의 죽음을 잘 표현한 것이 찬송가 245장에 잘 요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의 은혜 내가 받아 시온 백성 되는 때, 세상 사람 비방해도 주를 찬송하리라. 세상 헛된 모든 영광 아침 안개 같으나, 주의 자녀 받을 복은 아무 근심 없도다’
세상 헛된 모든 영광은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헛된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주시는 복입니다. 주의 은혜입니다. 헤롯의 죽음 이후에 나온 기록이 24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해지고 더하여지니라’ 다른 번역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 보면, 교회의 핍박은 하나님의 말씀을 줄어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한 주목할 것은 누구를 통해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열심히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헌신을 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창립 기념 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회 공동체는,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은 열심히 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