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한국 갔을 때,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제게 선물로 준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김요한 목사님의 ‘지렁이의 기도’라는 책인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세상에 기도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도를 미신 혹은 종교 현상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어떤 이들은 기도란 인간 욕망의 투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란 스스로 삶을 개척할 줄 모르는 의지박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동 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기도를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인간의 습관이나, 뇌 신경의 작용일 뿐 큰 의미를 둘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금방 읽어드린 것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도는 무가치한 행위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는, 그들에게 무가치한 일을 무한 반복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허송으로 보내는 바보 같은 사람일 뿐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주님께서 다시 부활하셨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바라기는 하나님과의 기도가 매일 이루어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는 게 바쁘더라도 말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숨은 쉬면서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지요!
성경에는, 기도에 대한 수 많은 가르침과 기도에 대한 체험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도는 그 사람이 기도한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그 사람이 기도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전자를 응답받는 기도라고 하고, 후자를 응답받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둘 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전자는 주님이 ‘그래’라고 하시면서 허락하신 것이고, 후자는 ‘아니야’라고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지 않으신 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기도 중에 응답되지 않은 기도는 하는 없는 셈입니다. 다만 기도가 신속하게 응답되었느냐, 아니면 시간이 좀 걸렸느냐로 나눌 수 있을 뿐이지요. 저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주님이 허락하신 일도 있지만,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2.
우리의 기도 중에서 가장 신나는 기도는, 우리가 주님께 구한 그것을 얻게 될 때 입니다.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얻는 기쁨은 참 큽니다. 이런 기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홍콩 단기 선교 여행을 가겠다고 등록을 했습니다. 3주 동안 홍콩에 머물면서 홍콩에 대해 배우고, 홍콩을 위해 기도하고, 홍콩 사람들을 전도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문제는 선교 여행을 가려면 등록비를 내야 하는데, 제 수중에는 그런 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배들이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 거야. 걱정마. 돈이 없어서 선교 여행 못 간 사람을 본 적이 없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선교 여행 못간 사람이 제가 될까봐서 그랬지요’. 그래서 금요일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단기 선교라는 걸 갈려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근데 방법이 없네요. 어떡하지요? ‘ 이렇게 기도했는데요. 제 삶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등록 시일이 가까워져서 이러다가 진짜 못가겠다 싶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식당을 기웃거렸는데요. 이유야, 식당에서 일해서 선교비로 사용하려고 그랬습니다. 물론 기도하면서 식당을 돌아다녔지만, 저를 써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너무 늦게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며 거절 당했기 일쑤 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과외하겠다고 여기 저기 전단지를 붙여 봤는데, 역시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안 왔습니다. 선교비 납입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돈은 생기지 않고, 그래서 걱정만 쌓여 갔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시겠지’ 하는 막연함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못하고, 대학 1학년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을 즈음이었는데요. 하루는 우연히 학과에서 일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저를 보더니, 과사무실로 와 보라는 겁니다. 어른이 오라고 하시는데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겁니다. 원래 다른 학번에게 줘야 하는 장학금이 있는데, 아무도 연락이 안된다며, 저 보고 받으라는 겁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가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는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주님이 믿음없는 제게, 선교 여행비를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주신 것입니다. 제가 상상도 못했던 방법을 통해 주님이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홍콩 단기선교비는 장학금 받아서 한 번에 다 낼 수 있었구요. 그렇게 비용을 모두 치뤘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남아서 다른 사람도 얼마인지 모르지만 후원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넉넉하게 주신다는 것을 그 때 배웠습니다. 이 후로도 하나님은 저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셨고, 가난한 시골 청년은 주님의 은혜로 풍족하게 대학 생활을 하다가 졸업을 했습니다. 물론 맨날 이렇게 신나는 일만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기도는 주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속상했지만, 나중에 보니 훨씬 좋은 것들로 하나님이 채워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추억 쌓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과 여러분 사이에 좋은 추억들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3.
성경에 기록된 것 중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는데요.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으러 가면서 했던 기도가 그것입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새번역 창 24:12)’ 이 기도 후에, 아브라함의 종이 만난 사람은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에게 이 일로 무척 기뻐했는데요. 종은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이야기를 녹음기처럼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한 것을 허락하시면, 이런 기쁨이 있습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아이를 주셨습니다. 한나의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 그래서 그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한나는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께 다시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를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다 (삼상 2:1)’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심을 알게 하는 말씀들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4.
하지만, 어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대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경우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지 명쾌하게 모두 다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책(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을 읽다보면, 하나님께 승인되지 않는 기도를 경험하시는 분들의 상담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목사님, 예수님도 구하라 얻을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지요?그런데 왜 제 기도는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실까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빌 목사님이 호기심에,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셨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자기가 기도했던 내용을 말해줬다고 합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남편이 술을 그만 마시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어젯밤도 술에 취해 들어왔습니다.
취업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쉰 살 먹은 중견 매니저를 쓰겠다는 사람이 도통 없습니다.
주님께 아내를, 남편을, 직장 싱사를, 손님을, 또는 자녀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모두 다 매우 심각한 내용입니다. 가정 문제, 취업 문제, 자녀 문제로 사람들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할 때나, 기도하지 않을 때나 별 차이가 얿을 때도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분석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 기도들에 반응하지 않으신 이유를 알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상담을 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동기가 잘못 되었거나, 부적절한 기도였거나, 욕심 또는 정욕을 위해 한 기도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이런 분석을 우리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우리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놓고 그냥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왜 자기가 물에 빠졌는지 분석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아무 논리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의 동기가 어떠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5.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 왕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바는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자기의 기도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망할 줄 알면서 했던 기도, 죽을 줄 알면서 하나님게 기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를 했더나 기도하지 않았거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망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순간에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할 지도 잘 모르고, 일단은 이런 기도를 하고 있으면 힘도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윗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들어야 할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이 시간 주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 왕은 금방 태어난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아픈 이유는, 다윗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간난 아이를 위해, 아버지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간절히, 절박하게 기도하고 있는지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이레 동안 다윗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러다 다윗이 죽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절실하게 다윗이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죽었습니다.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다면, 저는 아마도 많이 낙담되었을 것 같아요.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들로 생긴 낙담이, 여러분에게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싫어지고, 내가 왜 기도하는지 흥미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 기도를 저렇게도 열심히 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결과가 뻔한데도 기도할까 하고 말입니다. 혹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들려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이가 죽는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했던 다윗이 아이가 죽은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2절)”
다윗가 뭐라고 말하고 있냐하면, 기도하기 전에 속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나 기도하지 않나 결과가 똑같을 것이라고 단정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맞아요. 상식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해서, 다윗이 기도했다는 겁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까” 봐서 그가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망할 것 같을 때라도, 소망이 없을 때라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결과가 뻔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 누가 알아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망한다고 했는데, 금식하며 울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사례가 나옵니다. 바로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 백성들 이야기입니다. 요나가 무성의하게 니느웨 성에 전했던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라고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요 3:10)’.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살려주신 것입니다. 혹시 했는데, 그 혹시대로 된 것이지요. 우리가 망할 것 같을 때, 함께 모여 기도해야 이유를 이 말씀에서 찾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기 전에 속단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망하더라도 기도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은 최선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시늉만 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수 있고, 죄책감이 그에게 몰려 왔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혹시 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죽으면서 말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어짜피 결과가 바뀌지 않았는데, 시간 들여서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윗이 자기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만, 어짜피 죽을 운명이었다면, 기도한다고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헛고생 한 것 같습니다. 맞는 이야기 같아요. 기도하나 기도하지 않나 결과는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7일 동안 엎드려 금식하며 울며 기도한 시간들입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일이, 이 칠일 동안 다윗에게 일어나고 있었음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었을까요? 다윗은 기도하는 시간동안, 죄로 인해 막혀 있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고,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주심을 또한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망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기도했는데, 다윗이 경험한 영적인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24절과 25절인데요. 다윗이 밧세바에게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다윗이 평화롭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하십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윗이 엎드려 기도했던 7일 동안 일어난 일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가 망한다고 해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다윗이 경험했던 것들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를 해도 결과가 똑같지만, 기도하면서 다윗에게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윗에게는 회복이, 주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했던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망하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망할 수 있지만, 기도할 때 비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 안하시면 뭐할까요? 잠 자거나 텔레비전 보면서 놀아요. 제가 많이 해 봐서 압니다. 그러러니, 차라리 기도하면서 망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죽을 줄 알면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망할 줄 알면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습관을 따라,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 6:10). 망하게 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한 그의 모습이 인상 깊지 않나요. 그래서 결국 다니엘은 이 일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기도했더니 죽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설렁 사자굴에서 다니엘이 죽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었을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죽게 되었다 할지라도 주님께 무릎 꿇는 사람들은 주님과 깊이 있는 교제가 있음을 알게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았고, 주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도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죽은 아이를 붙잡고 큰 소리로 울며 더욱 슬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정도 기도했으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지 않나요?’라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소식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땅에 엎드려 있던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었습니다(20절)”
이런 다윗의 태도가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면 취해야 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그래서 후회함이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다”는 것을 다윗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했는데 망해도, 죽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했으면 된 것입니다. 기도를 안 한 것이 문제이지, 기도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기업의 사장이 살이 너무 쪄서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케익 전문점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커피케익 전문점 앞을 운전하다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가게 진열대 중앙에 있는 커피 케익 하나가 그렇게 먹음직 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의 뜻이어든 저 가게에 제 차를 세울 수 있는 자리를 주십시오. 그러나 자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8바퀴를 돌자 마침내 차 세울 자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해요. ‘주여 고맙습니다’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커피 케익을 사서 마음껏 먹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기어히 우리의 뜻을 이루려고 우리가 하는지 돌압봐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고 하나님이 명확한 대답을 주시자,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을 하고, 여호와께 경배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확인했고, 그 뜻에 따르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금요일에는 습관을 좇아 힘드시더라도 교회에서 오셔서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주님은 이미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서 인간이신 예수님의 이 짧은 구절에 녹아 있습니다.
고통의 순간, 고난의 순간,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야 하는 어린 양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온 힘을 다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죽을 줄 아셨지만, 예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십자가가 얼마나 힘든 결정이고,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순간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기도 후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과 다윗의 기도 모습이 공명을 일으킵니다.
망할 줄 알면서 기도한 사람들은 다른 듯 닮아 있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알았으면 슬픔의 얼굴 색을 벗어버리고, 일어나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주님께 경배하고 음식을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보여드려야할 순종의 모습입니다.
함께 찬양 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