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감옥에 갇혀 있었던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나온 이후의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현실인지 꿈인지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1절을 보면, 정신을 차리게 되고, 그리고 했던 일을 두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중에 이 일은 교회가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났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또한 보여줍니다.
두번째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고자 결심한 것입니다.
내일이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베드로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생명을 연장하고자 전전긍긍하지도 않았지만,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생각났던 사람들이 있었음에 주목할 부분입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그 사람들이 마가의 집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바쁜 일상을 마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정신을 차렸을 때, 함께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삶 가운데 폭풍이 불었을 때, 함께 기도를 요청할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베드로처럼,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함께 기도해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은 잘 못해도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해 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 입니다. 우리 삶에 아무리 큰 파도가 쳐도, 우리는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기도해 준 사람들, 그래서 항상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서로 기도해주는 것이 전통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프다고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집에 일이 있다고 기도해 달라고 하십니다. 어떤 분은 교회도 안 다니시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부탁을 받으면 ‘예’라고 대답하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가 중요하지요. 그것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슨 큰 능력이 있는 것 아니지만,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글학교에 다니던 한 사람이 엄마가 유독하다고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얼마나 위독한지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기도한대로 나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2.
우리가 기도하고 그 기도대로 될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비밀이 여러분에게 쌓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기쁨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로데 라는 여자 아이를 통해서 였습니다.
로데는 마가의 어머니 집에서 일하는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기도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기도할 때, 문을 열어 주러 가야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데의 행동을 보면 그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목소리만 듣고도 너무 기뻐서 문 열어줘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나면 로데처럼 기쁩니다. 그것도 죽을지도 몰랐던 사람이라 그 기쁨은 더 컸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로데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지도 알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교회에 나타났을 때,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기쁠까요? 슬플까요? 두말하면 잔소리 아닙니까.
멤피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의 가정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의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나중에 로데와 같은 기쁨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반면 로데의 이야기를 들었던 다른 기도하던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로데를 향해 ‘미쳤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로데가 사람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있었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아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자신들이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한 기도를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 했다면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기도했다면 우리 안에는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로데의 반응과 사람들의 반응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5절)’
“힘써 말하되” 진리를 아는 사람들, 진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남들이 미쳤다고 해도 힘써 말할 수 있습니다. ‘참 말입니다’ ‘진짜예요’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이렇게 힘써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미쳤다고 해도 말이지요. 사실은 사실입니다.
3.
오늘 본문에는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궁금한 게,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가 기도한대로 응답받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질문에 답을 주는 책들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 이런 식의 책들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책장에도 이런 류의 책이 한 권쯤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그런 비결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했지만, 야고보는 순교를 당했고, 베드로는 감옥에서 신비로운 방법으로 풀려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은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시험 잘 보는 방법과 비슷한 부분은 있을 것 같아요. 자세히 문제를 보고 문제가 요구하는 답에 정확히 대답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라는 대답과 비슷한 것이지요. 그러나 기도 응답을 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함께 일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무슨 일이든지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기도했다면, 그 기도에 대해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기도했다면 우리의 태도는 ‘로데’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했지만 여전히 믿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거절당했을 때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했지만 기도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거절당한 기도는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는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는 어떠했을까요?
첫번째 예는 바울의 기도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있는 질병이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었던 사람이, 진작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대답은 이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바울은 자신이 약함을 통해 주님의 강함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두번째 예로는 다윗의 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삼하 12:13,14)’
그래서 다윗이 아이를 위해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7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울면서 다윗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아이는 죽게 됩니다. 어쩌면, 다윗이 많이 실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신하들이 다윗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너무나도 열심히 기도했던 왕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어떻게 말해야 될 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더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다윗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의 행동이 매우 놀랍습니다.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삼하 12:20)’
신하들도 이런 다윗의 행동에 놀란 것은 당연하겠지요.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삼하 12:23,24).’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알자,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존종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윗은 온 힘을 다해 기도했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는 것입니다. 거절당했지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것은 참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로데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 처럼 또한 바울의 기도처럼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간절히 원해도 그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다윗처럼 바울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경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기도했다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