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며, 주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내 기도를 모두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오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시는 알라딘의 ‘지니’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동전만 넣으면 뭔가가 나오는 자동판매기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과 필요를 아시지만, 우리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시는 분은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뜻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었던 영화가 2003년도에 발표되었던 ‘부르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입니다. 주인공인 부루스는 일 주일동안 하나님 역할을 대신한다는 내용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부루스는 사람들의 기도 모두를 응답해 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대로 복권에 모두 당첨이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지만, 금방 실망합니다. 상금이 너무 작아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모두 사람들의 기도를 다 들어주면 생기는 헤프닝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대로, 아니 우리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같으면 좋겠지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어제 한글학교 바자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건을 기증해 주셔서, 정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토요일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물건 파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몇 주 전부터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바자회 하는 날 날씨가 흐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토요일에 날씨가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0%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보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멤피스 지역에 비가 온다고 하는데, 바자회 할 수 있게 잠시 보류해 주시면 안될까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일은 매일 날씨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올 확률이 100%에서 80%, 60%,.. 이렇게 비올 확률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 내심 기대가 있었습니다. ‘오호라~ 비가 안 오나보다. 그럼 그렇지’ 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오전 10시까지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전 10시 이후에는 비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날씨만 흐리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스케쥴에 맞추실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 한 번 더 하라는 뜻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바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예상하신대로 손님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사겠다고 예약한 사람들이 왔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의 수입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천불 정도 수입이 있었습니다. 나쁘지 않지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또한 이것이 여러분의 고백이기를 바랍니다.
2.
사도행전을 통해서 초대 교회가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해 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생긴 이후에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땅까지, 나아가 이방인의 땅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열매 중 하나가 안디옥 교회의 탄생입니다.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멋진 교회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도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무렵에 예루살렘 교회는 또 다른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헤롯왕이 주님의 제자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 엄청난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살펴보기 위해, 주님의 제자 중에서 ‘야고보’를 먼저 죽입니다. 그러자 이 일을 유대인들이 좋게 여기자, 헤롯은 두 번째 타깃으로 베드로를 죽이려고 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상황들을 용인하셨을까요? 우리 이성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처럼 야고보도 살려 주실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고보가 순교가 아니라 조금 더 살아서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야고보를 세상에서 먼저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당분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다를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3.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그것이 5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교회의 기둥같은 사람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교회 지도자에게 어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여러움이 닥친 것입니다. 그 때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기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5절을 중심으로 좀 더 깊이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교회는 어려움에 빠진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교회 지도자 뿐 아니라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인들을 위해 교회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주를 믿는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교회가 기도했다는 것은, 성도들이 모여 함께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자 주님과 기도해야 할 때도 있지만, 성도들이 모여 함께 기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많이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함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셋째. 어려움이 찾아올 때 기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연한 말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본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기도를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도 안 될 것 같으면 일치감치 포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무엇을 기도했는지 잘 모르지만, 베드로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의 순교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생명을 지켜달라는 기도는 매우 어려운 기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려울 때 함께 모여 기도했다는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기도하는 이 시간, 그 때가 항상 즐겁다’ 이 찬양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건성으로 하지 말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도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이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열심이 있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간절한 기도.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실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많이 받았다는 조지 뮬러의 기도를 살펴봐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열심입니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모습이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이 세 번 기도하셨는데요. 그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 (마 26:39)’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예수께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절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나님을 뜻을 구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가 살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야고보처럼 순교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도전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열심히 기도할 수 있으세요?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으로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을 또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저의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안 될 것 같으면 일찌 감치 포기해 버리는 모습입니다. 기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기도해도 건성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간절한 기도’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절 당하더라도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의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러자 여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15:25-27)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것을 먹는다는 여인의 말에서 간절함이 느껴지시나요? 우리가 간절함을 담아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기대하라.
베드로의 생명을 연장시켜달라는 기도를 했던 예루살렘 성도들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한대로 된다는 기대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감옥에서 빠져 나왔지만 열심히 기도했던 교회는 그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행 12:13-15). 기도했으면 기대해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혹시 우리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