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아무 의미도 없었는데, 이름을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는 표현이, 저는 좋습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소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누구에게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 둘 다,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웨슬리 듀웰(Wesley L. Duewel)은,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이호진 답다. 좋은 말인가요? ㅎㅎ 저는 유명하지 않지만,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넣어보면,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답다. 박근혜 답다. 김정일 답다. 김정은 답다.’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의 이름인데요. 어떤 사람에게는 칭찬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욕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름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큰 칭찬은 ‘예수님 답다’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 답다’라는 말은 ,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긍휼하심, 예수님의 겸손,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예수님의 능력을 닮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미국 와서 제가 놀랐던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소개하면, 기억하기 어려울텐데 외울텐데, 무지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도, 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려고 하는 점입니다. 인사를 하면서 이름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이곳의 문화 같습니다. ‘안녕, 호진’ 이렇게 말이지요. 다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이름을 넣어주면서 인사하는 문화는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름 부르는 것을 조금 쑥스러워하거나, 어려워 합니다. 그래서 ‘어이, 거시기’ 이런 식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성만 부르기도 합니다. ‘김 씨, 박 씨, 최 씨, 정 씨’ . 성을 부르는 것이 편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꽃이 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누군가의 꽃이 된다고 하니까,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꽃이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만들어 불러줍니다. ‘꿀물, 귀요미, 오빠, 동생 ’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주는 나의 이름은, 듣기 좋은 경쾌한 음악 같습니다. 수 천번을 들어도, 아니 수 만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또 듣고 싶은 소리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부르는 내 이름은, 우리 몸의 온 세포가 춤을 추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 이름입니다. 아이가 생기면, 부모의 이름은 아이의 이름으로 바뀝니다. 누구 아빠, 누구 엄마. 이렇게 누구의 부모로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 엄마, 또는 거시기, 어이’ 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누구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편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구 누구의 아빠로 몇 십년 째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억울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 제 인생이 사라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 분들은 더욱 그러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 인생이 없어지고,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내로 살아가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결혼과 함께 사라진 이름 때문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엄마로 불리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남편도, 더 이상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시겠지요. 결혼 생활을 오래한 부부일수록,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너는 아직도 내게 꽃이다’는 의미이지요. 남편은 아내의 이름을, 아내는 남편의 이름을 불러줄 필요가 있습니다. 뭔가를 잘못하거나 실수 했을 때, 따지듯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남편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장면과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시는 장면을 보면서,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이 되고 싶어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들기 같이 내려 왔으며,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막 1:11).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내 아들이다’라고 불러주시는 장면입니다. 성경에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예수님은 이 때 기분이 상당히 좋으셨을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인정에 목마른 존재이지요. ‘과연 너는 내 아들이다!’ 평범한 이 한 마디가, 아들에게는 힘이 됩니다. 아들아! 아버지의 부름에 예수님은 무척 기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존경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불림을 받는다 라는 것은, 사랑 받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이런 소리는 듣고 싶어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라.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거듭남으로.
일 주일 내내,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그 장면인데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우리에게 임하고,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 우리 예배 가운데 이런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일이 우리가 기도할 때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는 우리를 설레이게 하고,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는 그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황송한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무리 지치더라도, 하늘이 열리면,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눈물은 웃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바라고 기도하기는, 이곳에 모인 분들에게 이런 신비로운 체험이 있으셨으면 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 눈에 보인 세상은 어둡고 추웠습니다. 교과서에 배운 내용과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을 보면서, 좌절했습니다.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깨 부셔야 할 세상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도, 외롭고 씁쓸했습니다. 손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깨끗해질 때까지 계속 씻었습니다. 사람들의 한 마디에 쉽게 상처 받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묵상하고, 묵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변하기 시작했지요. 성령이 제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제 안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아름답다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쓰여진 말들이 무슨 암호같았는데, 조금씩 풀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말씀해 주시는 것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를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
오늘 읽은 마가복음 1장 23-26절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후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시던 중에,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아들입니다’ 귀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금방 알아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습니다.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도리어 조용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귀신을, 예수님이 나무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미워함으로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것입니다. ‘잠잠하라!’ 예수님이 듣기 싫어하실 만 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이고, 이름은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조심스러운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부르는 이름은 듣기 좋은 음악이지만, 미워함으로 부르는 이름은 시끄러운 소음입니다. 우리를 알아주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불러줄 때, 내가 중요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불러주느냐가 중요하지요.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불러주세요. 잘 알고 계시고, 그렇게 하신다면 잘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이름도 소중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 불러주시길 사모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이름은 주님의 모든 것이고, 주님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의 모든 것을 믿는다는 말이 됩니다. 같은 원리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하나님의 모든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느냐 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녀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시편 기자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 8:1)’ 우리도 이렇게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2-3)’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고통 중에 있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이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기쁨 가운데 있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세요. 하나님이 함께 기뻐하실 것입니다. 슬픔 가운데 있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즐거울 때에, 주의 이름을 부르세요. 주님이 우리로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지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부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또한 존귀하게 여겨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