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교회는 하나다.
최근 몇 주 동안, 저희 교회에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첫번째, 지난 주에 테네시 서부 노회 (Western Tennessee Presbyterian) 청년들이 와서, 교육관 안팎을 칠해 준 일입니다. 언젠가는 교육관을 써야 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이 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또한 도와주는 청년들이, 자기 것처럼 정성을 다해 페인트 칠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저희 교회 아이들도, 저렇게 반듯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자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봤습니다.
두번째, 지난 주 부터, 교회 옆에 있는 중국 교회 사람들과 탁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첫 만남이라 조금은 어색했는데요. 그렇지만, 함께 운동할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았습니다. 비록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예배는 다른 공간에서 드리지만, 주 안에서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탁구’ 라는 도구를 통해서, 두 교회가 더욱 더 좋은 유대 관계를 맺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교단이 다른 교회들, 또는 언어가 다른 교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 안에서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실천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지역 교회들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가득해지기를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달력을 보다가, ‘부활절’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였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부활절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에 의미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는데요. 이를 위해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드리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된 복음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올해는 마가복음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누가복음. 내 후년에는 요한복음. 이런 식으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마가복음은 총 1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으실 수 있을만큼 짧습니다. 부활절까지 온 교인이 한 번 이상 마가복음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말씀보다는 예수님의 행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고난과 수치와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이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마가복음을 읽으시면서,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의 사랑을 좀 더 깊이있게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례요한,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은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의 등장은 말라기 3장과 이사야서 40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구약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례 요한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2-3절을 다시 보실까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세례 요한의 사명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등장을 알리는 메신저로 사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주는 선지자입니다. 온 인류가 오랫 동안 기다렸던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은 세례 요한이 택한 장소는, 요단강 근처 광야입니다. 그가 입은 옷도 볼품이 없고, 먹는 것도 이상한 것들이지요. 마가복음 1장 6-7절을 보시면,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사로 부르셨는데, 옷 차림도 이상하고, 먹는 것도 볼품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세례 요한과 같은 사명이 주셨다고 상상해 보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사람이 많은 시장이나 사람이 많이 사는 대도시로 가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사처럼,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을 것입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면,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광고도 냈을 것입니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광야에서, 메시야의 소식을 외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직무 유기처럼 보이지요. 사람도 없는데, 소리는 질러서 무얼 하겠습니까? 또한 세례 요한이 전했던 소식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였습니다 (막 1:4).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합니다. 이런 세례 요한의 행동과 말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는 커녕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이야기만 골라서 하기 때문입니다. 웃기는 이야기도 아니고, 심각하기 짝이 없는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이 한 일입니다.
놀랍게도, 세례 요한이 했던 일들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황량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볼 것도 없는 그곳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갔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신기하지 않으세요? 죄 를 고백하고 회개하라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신기합니다. 사람이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사람들이 어떻게 들었는지 모여드는 것도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모습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간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 건넜던 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가야 하는 강인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것처럼, 요단강 물 사이로 난 마른 땅을 밟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갔습니다. (여호수아 3:1-7).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켜주심을 경험했던 매우 특별한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요단강을 사역지로 선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메세지를 선포했던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요단강을 건넌 이후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풍요롭고 평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땅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가 원하는 신들을 섬기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풍요롭던 가나안 땅은 척박한 땅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당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요로운 땅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움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는 일 뿐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외쳤던 회개의 메세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가지고 있던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했던 세례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애굽의 모습, 세상의 모습을 물로 씻어서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세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정결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모습은 현대 교회가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 교회의 주된 사명이 무엇일까요?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처럼 다시 오실 것을 전하는 일입니다 (행 1:9-11). 교회의 주된 사명은 주의 재림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례 요한처럼, 교회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라고 촉구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회개의 메세지를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메세지를 전하지 않으면, 교회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교회가 죄를 회개하라고 선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교회의 광고 전략
하지만, 현대의 교회는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방법을 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촌스럽고, 거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한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교회에 사람들을 모을 방법들을 연구되고 실천합니다. 화려하게 교회를 꾸미고, 주차장을 넓힙니다.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애씁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곳,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분위기 좋은 곳이 우리 교회라고 광고하고 싶어합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곳이 우리 교회라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아하게 예배 드리는 곳이 교회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사람들의 심신을 만족시켜줄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고 우리가 광고하고 싶어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사람들의 입과 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우리가 광고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광고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교회의 사명이 프로그램에 묻혀서 잊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방법은 투박합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은 소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듣기 싫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가는 이야기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워졌습니다! ‘ 부드럽게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거칠고 때로는 매정하게 말합니다.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에베소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 계시록 2:4-5)”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회개의 메세지는 교회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회개를 선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립니다. 따라서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교회는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 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척박해 보이고, 화려하지 않습니다. 교회 프로그램은 아직도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광고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교회를 광고해야 한다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자랑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는 광야 같아도, 우리 교회는 나와 이웃과 교회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성령으로 정결하게 되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경험되는 요단강과 같은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돌을 빵으로 만드셔서 세상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만들어 놓은 일곱 개의 거대한 원형 극장과 경기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실존과 기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라고 말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메세지를, 예수님도 동일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이것만큼 중요한 메세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 메세지가 우리 교회를 살릴 것입니다. 이 메세지를 듣고, 회개한 현대 교회를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메세지를 듣고, 회개의 자리에 나아온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메세지를 세상에 선포하는 사람들이 바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 있는 지구 상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곳입니다. 회개는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비결입니다. 회개는 성도가 성도다워지는 비결입니다. 회개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정결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하나님 앞에 참되지 못한 것은 없는지, 하나님 앞에 선하지 못한 것이 없는지, 하나님 앞에 사랑스럽지 못한 것은 없는지. 하나님 앞에 경건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우리의 모습을 살피고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말은 듣기 싫은 소음같지만, 우리 영혼을 살리는 음악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세례 요한의 옷처럼 남루해 보이지만, 우리 영혼을 깨끗하고 빛나게 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귀 담아 들어 보십시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하면 천국이 가까워집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 가운데 주님의 용서하심이 경험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