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바로 적용을 합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부자다. 나는 성공한다.’ 실제로 말한대로 건강해진 사람도 있고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말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말입니다.
‘말한대로 이루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되고,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불평 불만의 마음에서 축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정적인 마음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로 삶의 주름을 펴 보라는 글도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도 있었습니다. 밥을 해서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은 후에, 한 쪽 그릇에는 감사의 말을, 다른 한 쪽에는 저주의 말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해 본 실험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실험 상황이었지만, 저주의 말을 퍼 부었던 밥이 더 쉽게 상했습니다. 신기하지요? 우리의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해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성경에는 말한대로 이루어진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을 기록해 놓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어떻게 되나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1장을 읽어봐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 기록은 당연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시면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땅 위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종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나무를 내라 하자,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끝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언제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그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일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을 걸, 광야에서 이 무슨 고생이냐며 불평했습니다.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민수기 14장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라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26-28).’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우리가 바로 깨달을 수 있지요. 우리의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의 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실 것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오늘 본문에는 한나의 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하셨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한나의 기도처럼 응답받는 기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나의 간증이 우리의 간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간증이 있으려면, 한나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한나는 어쩌면 세상 근심없이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사람입니다. 남들 눈에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세상 근심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의 마음에 슬픔이 가득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근심과 걱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나의 근심은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 당시 여자가 아이를 못 낳으면 죄인 취급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있었던 남편의 둘째 부인 브안나에게 한나가 멸시를 많이 당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부인 입장에서는 그럴만도 하지요. 남편의 사랑을 자식도 없는 한나에게 빼앗긴 것 같았으니 말입니다.
어째든 한나는 마음이 괴롭자, 남편에게 투정도 해 보지만 남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결국 한나는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근심과 원통함과 분함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괴로우신가요? 그러면 한나처럼 주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한나는 기도하면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 하나님이 제가 기도한대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여호와께 드리겠다’라고 약속을 한 겁니다. 이것을 보고,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서원 기도를 해야 된다고 적용하시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 약속해야,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경에는 한나의 기도 내용이 짧게 나오지만, 한나가 오랫동안 기도했다는 것을 12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괴로운 한나는 소리내서 기도하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입술은 움직이지만 음성은 나오지 않는 기도를 한 것이지요. 한나가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을까봐 소리내서 기도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으로 울어도 다 아십니다.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도 속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울면서 기도하는 한나와는 달리, 한나를 지켜보던 엘리 제사장은, 그가 취했다고 생각하고 혼을 냈습니다. 평신도는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목회자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과 같지요. 여러분, 저도 엘리 제사장 같을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무디어지면 성도들은 마음이 무겁고 슬퍼서 기도하는데,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영적으로 무디어지면, 여러분도 엘리 제사장 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으로 무디어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나가 이렇게 말하지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15,16절)’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제사장님. 저는 포도주나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큰 괴로움 중에 있는 여자입니다. 여호와 앞에 저의 마음을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쁜 여자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너무나 괴롭고 슬퍼서 기도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엘리가 한나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입니다. 영적으로 무디어 있던 엘리 제사장이 한 말이지만, 나중에 보면, 그가 말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끝까지 한나를 혼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반응이 18절에 나옵니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한나는 엘리 제사장이 말한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말한대로, 기도한대로 한나는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이 한나를 기억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4.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한나가 어떤 이유로 서원 기도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서원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더 빨리 응답해 주실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뭔가를 드려야,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하면, 우리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지고, 우리가 헌금을 조금하면 우리 기도를 조금만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무슨 이유로 서원 기도를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한나의 기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군의 주님, 주께서 주의 종의 이 비천한 모습을 참으로 불쌍히 보시고, 나를 기억하셔서, 주의 종을 잊지 않으시고, 이 종에게 아들을 하나 허락하여 주시면, 저는 그 아이의 한평생을 주께 바치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삼상 1:10-11)
한나는 자신의 문제로 오래 기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비천한 모습처럼 불쌍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어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던 것처럼, 그 당시 이스라엘의 시대적인 상황도 절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다른 사람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았던 시대였습니다. 한나는 기도하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나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았던 이유도, 어쩌면 한나가 이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분한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문득 한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았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게 된 기도가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을 허락하시면, 그가 주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겠다’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한대로 하나님은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셨고, 그도 그가 기도했던 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5.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위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말한대로, 기도한대”로 이루어졌다는 간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 단서가 붙지요. 내 욕심대로, 내 뜻대로 말하고 기도한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말하고 기도했더니 이루어졌다는 간증일 것입니다. 한나처럼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보세요. 그리고 기도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