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다 (구약).
우리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한 없는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도 사랑하시고, 죄인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수치를 감춰주시길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랑으로 우리의 수치를 감춰주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시고, 인도하시며, 그들의 불평과 요구를 하나님이 다 들어주셨습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주셨습니다. 배 고프다고 하자 매일 만나를 주셨습니다.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 할 때는 고기도 먹고 마늘도 먹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못 먹는다고 투덜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서 실컷 고기를 먹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투정을 들어볼까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 16:4). 우리의 투정이랑 비슷하지요.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출 16:13).
투덜대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을 주시나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들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 1:5).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가 주십니다. 지혜를. 사랑을. 복을 내려 주십니다.
2.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다 (신약)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다 구체화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가지려는 자가 아니라 주려고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대속물로 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러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주님이 무엇을 주시나요.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벌거벗은 몸을 감싸 주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목표를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연약함에서 강함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주시는 분입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보았던 것럼, 주님은 주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주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주실 것입니다. 지혜도 구하고, 신령한 복도 구하고, 사랑도 구하십시오. 우리의 필요도 구하고, 용서도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시는데, 우리가 그걸 몰라서 그렇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주십니다.
3. 주는 자로 사는 것이 행복의 열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시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는 삶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는 것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주는 삶을 통해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주님을 닮아갈 때 우리에게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신령한 것으로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주는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끊임없이 받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조건없이 주는 훈련을 합니다. 사랑을 줍니다. 관심을 줍니다. 용서해 줍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작은 행복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주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모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주는 인생이 풍성한 인생이고, 주는 인생이 감사한 인생입니다. 주는 자로 살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 20: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 바울이 선포했던 것처럼, 우리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말입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패스트 푸드점에 갔습니다. 주문이 끝나자 직원이 제게 말합니다. “한 번만 웃어줄 수 있겠습니까?” 순간 제가 당황했습니다. 왜? 주문을 하면서 제가 너무 심각했나 봅니다. 몇 초 후, 저는 직원의 부탁대로 웃어 주었습니다. 씨잇~ 하고 말입니다. 직원도 제게 씨잇 하고 웃어주었습니다. 짧은 몇 초 동안 이었지만, 큰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미소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미소를 띄워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족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시길 바랍니다. 매일 하신다면 잘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또 안아주십시오. 우리의 형제, 자매를 안아주시고, 특히 우리의 아이들을 안아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그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사랑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우세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한 번 웃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미소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미소가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자가 되십시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됩니다.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려리고 합니다. 제목은 만원의 행복입니다.
남편이 잠들고 뒤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무슨 돈이냐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기의 비상금이었는데....
당신의 핼쑥한 모습이 안쓰럽다며 내일 몰래
뷔페에 가서 소고기 실컷 먹고 오라고 주었습니다.
만원 짜리 한 장을 펴서 쥐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가에 물기가...
"여보...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어젯밤 남편에게서 만원을 받은 아내는 뷔페에 가지 못했습니다.
못 먹고 산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노인정에 다니시는 시아버지께서 며칠째 맘이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아내는 앞치마에서 그 만원을 꺼내
노인정에 가시는 시아버지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아버님...만원이에요.. 제대로 용돈 한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작지만 이 돈으로 신세지신 친 구분들하고 약주라도 나눠 드세요..."
시아버지는 너무나 며느리가 고마웠습니다.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을 힘겹게 끌어나가는 며느리가 보기 안쓰럽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만원을 쓰지 못하고 노인정에 가서 실컷 자랑만 했습니다.
"여보게들! 우리 며느리가 오늘 용돈 빵빵하게 줬다네~~"
그리곤 그 돈을 장롱 깊숙한 속에 두었습니다.
다음해 설날...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습니다.
기우뚱거리며 절을 합니다.
주먹만한 것이 이제는 훌쩍 자라 내년엔 학교에 간답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오냐..하고 절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놓은 그 만원을
손녀에게 세뱃돈으로 줍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외동딸 지연이는 마냥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세뱃돈을 받은 지연 이는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리는 엄마를 불러냅니다.
"엄마...책가방 얼마야??"
엄마는 딸의 속을 알겠다는 듯 빙긋 웃습니다.
"왜? 우리 지연이 학교 가고 싶니?"
지연 이는 엄마에게 할아버지에게 세뱃돈으로 받은 만원을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한테 맡길래".
"내년에 나 예쁜 책가방 사줘..어?"
요즘 남편이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 하던 잠꼬대까지...
아침에 싸주는 도시락 반찬이 매일 신 김치 몇 조각......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 양복 속주머니에 낮에 딸 지연이가 맡긴 만원을 넣습니다.
남편더러 내일은 맛있는 것 사 드시라는 메모와 함께..
그래서 그 만원 짜리는 가족들에게 사랑을 주고 다시 남편의 주머니에 들어왔답니다.
1만원으로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지요. 우리 가정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4. 섬김과 화.
오늘 본문에 나온 제자들은 화가 나 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화가 났는지 아시나요? 그들이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했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불 같이 났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님을 섬기느라 고생한 댓가를 받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고,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섬기는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섬김을 받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준이 제자들의 수준과 비슷합니다.
화가 난 제자들에게 주님은 불러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기 위해서다”라고 말입니다.
섬김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주님과 같은 수준의 섬김까지 우리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하면서 섬김을 받고 싶은 우리의 본능이 자꾸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
이 고백은 사도 바울 자신의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의 고백이며, 우리의 선포여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넘쳐 날 것입니다. 주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